집을 나간 책(冊)

폭력과 상서러움

물조아 2007. 7. 30. 20:37

“ 폭력과 상서러움 ” / 푸른숲엑스 리브리스(~라는 책에서)는 과거에 저자가 남의 책을 인용할 때 사용하던 관용구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 체계 속의 어휘들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표현을 가지고 구체적인 상황들 속에서 놀이를 할 수 있는 능력의 획득을 말한다.


‘잡 글’은 대개 우연한 계기로 쓰여 진다. 먼저 우연히 사건이 발생하고, 이어서 청탁이 들어오고, 거기에 반응함으로써 비로소 ‘잡 글’이 탄생한다. 잡 글은 촉각적이다. 대중을 자극한다. 논리적 설득의 문제가 아닌 적나라한 힘의 표출을 볼 때가 있다.


삶에 의미를 줄 사회적 가치관이 없는 상태에서 이기적 목표가 좌절하는 순간, 외로운 개인은 삶의 모든 의미를 잃고 결국 목숨을 끊는다는 것이다. 제 목숨이 가벼운 자에게는 남의 목숨도 가벼운 법이다.


오직 자신의 이익만 위해서 사는 사내들은 후세에 잊혀질 것이나, 자신의 행복을 포기한 영웅들은 명성을 누릴 것이다. 지식인은 ‘자기’를 배려해야 한다. 자신을 망가뜨리지 말고 조여 오는 권력의 망 속에서 자기를 보호할 줄 알아야 한다.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책임감’을 가진 지식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집단에 함몰되는 것은 봉건적 주체의 특성이다. 근대적 주체가 되려면 먼저 쓸데없이 자신을 원소로 포함시키려 달려드는 크고 작은 집단으로부터 자기를 지켜야 한다.


나이 몇 살 더 먹었다고 건방지게 ‘인간’이 되라는 둥, 말라는 둥 충고를 하며 제 개인적 인생관을 막 남에게 강요한다. 도덕이 그렇게 좋으면 자기만 지키면 될 일이지, 왜 자기 도덕을 남에게 강요하는 걸까?


‘동양정치의 이상은 나를 닦아 천하를 다스리는 수양의 정치다.’ 나를 닦는 건 좋은 일이다.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닦은 인덕은 웬만하면 혼자 간직하시라. 그걸로 천하를 다스리려 드는 순간, ‘철인 정치’는 곧 바로 전근대적 도덕 깡패들의 철권정치가 되니까.


근대 철학은 의식철학 혹은 반성철학이었다. 즉 내면성의 철학이라는 형태로 발달한 서구의 근대 철학은 외적 강제가 아닌 내적 규율에 의해 사유하고 행동하는 ‘자율적 주체’를 인간의 이상으로 내세웠다.


‘死者 崇拜(사자 숭배)’는 전통이나 기성체제에 복종하라는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의 종교적 표현이다. 죽음의 정치에서 실제로 80년대와 90년대의 운동 과정 속에서 ‘열사 인플레이션’현상이 나타났다.


진짜 자유주의라면 ‘자유’라는 말로 경제적 자유 이상의 것을 의미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교양이다. 또 시장을 만능 ‘해결’로 보는 수준을 넘어 동시에 그것을 ‘문제’로 볼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게 상식이다.


학교는 신화적 폭력의 세계이다. 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유일한 정의는 폭력이다. 서로에게 행하는 폭력의 잠재력을 오직 한 명의 약자에게 집중적으로 투사하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무리 집단과 하나가 되는 한에서만 개체는 안전하다. 그리하여 부조리한 실존들은 괴상한 집단주의 속에서만 구원을 찾는다.


아직도 자기의 종교적 신념을 사회 일반이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제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일단 광신도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즉 과연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일방적으로 죄인으로 간주할 자유가 시민 사회 내에서 허용되어야 하는가? 과연 아무 이유 없이 사회의 한 집단을 죄인으로 낙인찍는 것이 과연 민주 사회의 질서에 부합되는가?

 

민주주의는 이견의 존재를 인정하는 관용의 정신일 뿐 아니라 동시에 그 이견에도 불구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실천적 능력을 말한다.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도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여러 계급, 계층, 집단들이 존재한다. 이들을 모두 만족시켜주는 절대적 보편성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시대와 불화를 일으키는 데에는 두 경우가 있다. 하나는 예술적, 철학적 측면에서 시대를 앞서감으로써 자기보다 뒤처진 사회와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이고, 즉 시대를 앞서가는 고독한 천재들이고, 다른 하나는 급변하는 사회를 따라잡지 못해 시대착오적 행위를 반복하며 시대의 발목이나 붙잡고 늘어지는 경우이다. 즉 시대에 뒤떨어진 돈키호테들의 방식이다.


가끔 글을 쓰면서 이성의 스위치를 내리고 머리를 스치는 헛소리들을 떠오르는 대로 받아 적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미친 것이 정상적인 곳에서 정상적이려면 미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이 범상함의 시대에 위대해지려는 자는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고 말게다. 우리가 싸우고 망가지고 고통 받고 난리굿을 피우는 이 더럽고 짜증나는 현실이란 장소에서 말을 바로잡고 말길을 열고 말을 다듬고 새로운 말의 생을 구축해가는 진짜 창조자이다.  끝.

 

사진출처:   '10.1.21   '11.7.21  /  201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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