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출판사 / 니체는 공산주의를 주창한 마르크스,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와 함께 20세기를 만든 3대 사상가로 꼽힌다. 1844년 독일 레켄에서 태어난 그는 5세 때 목사였던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누이동생과 함께 할머니 집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고전문헌학을 전공한 그는 25세의 나이에 스위스 바젤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비극의 탄생’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을 발표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던 그는, 데카르트, 칸트 등 근대 사상가들과는 전혀 다른 사상의 기틀을 다졌다.
니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이 순간을 긍정하면서 충실하게 살아나가는 것이다. 니체는 자기에 대해 사유하기를 그리고 삶을 항상 스스로 극복해야만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요구한다.
현대의 가장 위대한 사건은 신이 죽었다는 것이다. 기독교적 신에 대한 믿음이 믿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신이 죽은 자리에 자신의 생명의지를 영원히 회전시킬 자가발전의 원리가 필요했다.
니체가 추구했던 초인은 신이 사라진 자리에 신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을 내세우고자 했다. 니체가 가르치는 초인은 극복되어야할 존재라고 쓰고 있다. 여기서 극복이란 이겨내고 살아남는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교육으로 가능한 작업이요, 이는 끊임없는 자기반성에서 비롯되는 깨달음의 계기요, 나아가 자기 삶의 일상성에 대한 새로움의 확보이며 자기 생명현상의 확충이요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주체적 자기 변혁이다.
이것은 한번 태어나 그대로 있다는 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명력의 발휘를 위해 상황에 맞게 변화되어야 한다. 이 변화는 습관의 변화, 생각의 변화, 행동의 변화를 포함하고 있어 삶에 대한 지속적 변화이다.
시작도 끝도 없는 세계 이 세계는 태초와 종말을 거부하는 세계이다. 시간의 시작이 있어야 할 이유도 없고 종말의 심판이 있어야할 까닭도 없다. 이것은 인간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추론한 결론이다.
불변하는 것을 앎의 대상으로 삼는 서양과는 달리 동양인에게는 변하는 것만이 진리라는 공리가 자리 잡으며 이 점에서 동서양의 사고의 차이를 드러내 주고 있다.
니체의 가치전도와 초인사상을 우리의 필요에 맞게 우리 사회에 통용시킨다면 신선한 충격과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가 살던 시대적 상황은 산업혁명 이후 일반 시민의 생활양식이 급속히 달라지고 시민의식이 크게 향상되는 시기였다.
현대인의 삶은 끊임없는 선택과 결단의 연속이고 하나의 희망은 곧 실망으로 변화하고 다시금 새로운 희망을 설정하며 새로운 가치를 찾아나서는 방랑자의 모습을 띠고 있다. 니체는 인간을 미리 규정적으로 있지 않고 변화 속에서 생성되어가는 존재로서 파악한다. 인간 삶은 여기서 하나의 과정 즉 자기 자신에 주인이 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힘에의 의지로서 사유된다.
니체는 이제 인간은 허위적 가치로부터 해방된 것이고 이 세계는 가치의 충만의 세계이다. 진리와 도덕적 신에 대한 믿음을 포기할 것을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에 긍정하기를 우리들에게 요청한다. 한편으로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며 항구적 자기 극복과 최종적 자기완성을 추구하고 가치의 투쟁의 이 세계에서 자신을 주장할 수 있음에 세계 긍정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각각의 삶은 필연적으로 실존의 의미를 제시하는 가치와 목적을 필요로 한다. 스스로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한 자기 극복의 가능성만이 마침내 허무주의 극복의 가능성을 결정하게 된다.
니체의 철학은 니힐리즘과의 대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니힐리즘의 다른 형태들은 종교와 도덕이다. 니힐리즘의 형태들의 공통점은 모두 현실적인 삶의 세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그와는 다른 가치를 설정하고 그것을 위해 삶을 희생시킨다는 점이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와 욕구에 의해 창조한 범주들은 세계 안에 존재하는 진리인 것처럼 추구하다가 좌절한 것이 니힐리즘이라면, 그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은 인간 위주로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버리는 것이다.
삶을 유지하고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데 사용된 이성의 범주들이 도리어 진리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구 때문에 삶의 가치를 박탈하고 인간을 병들게 해버린 역설적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그러한 역설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이성의 범주들이 가진 성격을 간파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예술적, 창조적 태도를 지니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이 니체의 결론적 메시지이다.
니체가 보기에 본래부터 의미와 가치가 없는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은 의미와 가치에 대한 예술적 창조인 것이다.
니체는 니힐리즘을 극복함으로써 인간에게 자유로운 삶과 해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던 형이상학자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로운 삶과 해방은 인간이 만물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러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깨달음으로써 삶을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니체의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다수, 생성, 순수한 긍정의 대상이라는 것이 니체 철학의 의미이다. 비판적 서술을 통해 니체가 노린 것은 인간적, 이성적, 관점의 절대화를 비판함으로써 보다 자유로운 삶과 삶에 대한 능동적 태도를 촉구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니체를 인간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인간의 진정한 해방 즉 목표와 이상으로서의 절대적 도덕이나 가치로부터의 해방을 말하고 있는 휴머니스트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중국의 노자라는 사상가는 도의 작용을 소유 없는 생산, 자기주장 없는 행동, 지배 없는 발전의 세 마디로 압축해 놓았다. 서양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인식하는 가치관은 소유, 자기주장, 지배 등은 가치의 규범들이다.
니체는 이런 가치관을 근원에서부터 폭파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니체는 만약 춤을 출 수 있다면 그대가 곧 신이다. 춤을 출 줄 안다는 것은 창조자가 되는 것이며 이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보았다. 끝. '1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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