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책(冊)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 ★ ★

물조아 2007. 4. 13. 19:08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장백일/ 홍신사상신서


인간의 본성에 있어서 으뜸가는 특성은 첫째는 사회성이다. 둘째는 육체를 사로잡는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능력이다. 셋째는 경솔하게 판단하지 않고 쉽사리 기만당하지 않는 능력이다

 

아우렐리우스는 기독교를 미신적인 것, 유해한 것, 부도덕한 것으로 여겼다. 신들은 절대적인 능력이 있거나 없건 둘 중의 하나이다. 만약 신들에게 능력이 없다면 당신은 무엇 때문에 기도를 하는가? 만약 신들에게 능력이 있다면 무엇을 해달라고 애걸하거나 원하는 것을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하기 보다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두려워하지 않는 힘을 그리고 욕망을 억제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라.

 

그렇다면 그런 식의 기도는 모두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러므로 노예와 같이 비굴한 태도로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보다는 자유롭게 당신의 능력을 활용하는 편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당신이 종사하고 있는 직업을 사랑하고 그것에 만족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당신의 여생을 보내야 한다.


자기의 현세적인 덧없고 끝없는 욕망을 절제함으로써 세상을 관조하게 되면 자연히 마음의 평정을 얻게 되어 자연의 일부인 자기의 본성을 되찾게 된다. 괜한 일로 방황하지 말고, 이리저리 쓸데없이 방황하며 자신의 삶을 낭비하는 사람즉 모든 행동에 이렇다할 분명한 목적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당신에게 허용된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이 시간을 사용하지 않으면 곧 흘러가 버리고, 이윽고 존재 자체가 사라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나의 생애는 오직 한 번뿐이다.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바로 이 순간에 죽음이 다가왔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라.


머지않아 당신은 순식간에 한줌의 재로 변하고 단지 이름만 남게 된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그 이름조차도 잊혀지게 된다. 당신이 후세 사람들의 평판에 신경을 소모하고 있다면 당신은 자연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현재를 잘못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분노로 말미암아 일시적으로 흥분한 사람은 잘못된 행동을 할 때 적어도 무의식적인 양심의 가책과 고통을 받지만, 욕망으로 말미암아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쾌락에 압도되어 더욱 무절제하고 나약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쾌락이 따르는 잘못은 고통이 따르는 잘못보다 더 심한 비난을 받아야 한다.

 

전자는 우선 피해를 입고 그 고통 때문에 분노한 것이고, 후자는 욕망 충족을 위해 자진하여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영혼이 자신을 괴롭히는 경우는 어떤 사람을 무시하여 외면하거나 분노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엔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괴롭힌다고 할 수 있다.

 

오로지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장차 닥쳐올지도 모르는 장애물 따위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언제나 명심하라. 이웃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하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오직 자신이 해야 할 일에만 관심을 쏟고 그 일이 정당하고 신의 뜻에 합당한가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은 시간과 수고를 절약할 수 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타락한 모습을 돌아봄이 없이 곧장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뿐이다. 남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을 갖지 말고 남은 생애를 본성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라.


본성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생각하고 그 밖의 일로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 오로지 현재 당신이 하고 있는 것과, 그 일을 잘 이행하기 위한 수단에만 유의하라. 무지한 사람이나 자연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쓸데없는 대화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은 모든 학파에 공통된 원칙이다.

 

참된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원하는 대로 행하는 데에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항상 평온을 유지하는 일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하려는 일을 직시하여 그 정체를 파악하는 일이다.  감각을 통해 느끼는 감정이나, 욕망에 이끌려 행동하는 것이나, 이모든 것들은 마치 음식물의 찌꺼기를 배설하는 행위와 다를 것이 없다.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가?자신의 본성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만이 참된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성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이야말로 진정한 가치를 지닌 것이다.


참된 본성에 힘입어 마음속에 깃들여 있는 쓸데없는 야망을 모조리 던져 버리도록 하라. 자신의 본성보다 보잘것없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자유롭지도 않고, 행복할 수도 없으며, 고뇌에서 벗어나지도 못할 것이다.


여럿이 모여 토론할 때에는 하찮은 제안에도 귀를 기울이고 행동할 때에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토론할 때에는 요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면 행동할 때는 그 행동이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선행을 베풀고 상대방이 그 도움을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선행의 대가로 칭찬이나 보답을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무엇에도 상처받을 수 없는 안전한 지대에 올라서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했을 때에만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잘못일 경우도 적지 않다. 즉 그것은 의무를 태만히 하는 경우이다.


인간의 성실한 행동은 굳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눈만 보면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모든 것은 눈을 통해서 단번에 알 수 있다. 진실이나 선은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좋든 싫든 그 향기를 맡게 된다.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사람일수록 더욱 강한 힘을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분노는 무력함의 증거이며 비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화를 내는 사람은 스스로 굴복했음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의 몰상식한 행동 때문에 화가 났을 때에는 즉시 다음과 같이 자문하라. “무례한 자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가 있을 수 있을까?”내 앞에서 교양이 없는 사람이 몰상식한 행동을 했다면 그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 것이다.


나쁜 사람이 죄를 짓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무화과나무에서 무화과 이외의 열매가 열릴 수 없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다.

 

염치없는 자도 이 세상에는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당신은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를 미리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잊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에 당황한 것이다.

 

인간은 자기에 대한 대중의 평판을 자기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보다 훨씬 더 중요시하고 있다. 인간은 어느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 그런데도 자기 자신을 평가할 때는 자신의 의견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더 존중하고 있다. 이 점은 매우 큰 모순이다.  끝. '09.9.17 / '11.3.8 / 2012.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