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책(冊)

한비자 하

물조아 2007. 3. 11. 09:35

한비자 하 / 한비 / 자유문고

 

왕이란 자기 혼자의 힘으로 실행하는 것을 왕이라 부르는 것이다. 임금이 간직해야할 도는 조용하게 몸을 뒤로 물리고 일체의 재능과 세력을 밖으로 나타내지 않는 것을 으뜸으로 삼는다.


신하가 임금을 업신여기면 임금의 권위가 상실되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넘보면 임금의 지위가 위태로워진다. 또한 준마 같은 말이라도 좌우로 마음껏 부릴 수가 없다면 죽일 수밖에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임금의 권세로서도 통제할 수 없는 신하가 있다면 그를 제거해 버려야 한다. 자기만이 세상에서 뛰어난 현자로 자처하지만 임금에게는 소용이 없고 그 행실이 아무리 뛰어나도 임금에게는 쓸모가 없으니, 현명한 임금이라면 신하로 삼지 않을 것입니다. 


임금이 그 좋아하고 싫어하는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면 신하들은 곧 임금의 마음에 드는 말만 하여 임금을 홀릴 것이고, 임금이 신하의 말을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게 되면 여러 신하들은 할 말이 있어도 진언하지 않게 되므로 임금은 신묘한 위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무릇 까마귀를 길들이고자 하면 그 날개깃을 자른다. 날개깃을 자르지 않으면 제멋대로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구하지만, 날개깃을 잘라놓으면 반드시 먹이를 사람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으니 어찌 길들여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대가 지혜롭다는 것을 밖으로 드러내면 사람들은 모든 일을 숨기려 들 것이고, 그대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안다면 남들은 그대에게 능력을 보이려 할 것이다.


따라서 오직 이쪽이 잠자코 있으면 상대의 실정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며, 그대가 항상 말을 삼가면 남이 그대에게 화합하려 할 것이고 또 그대가 항상 행동을 삼가면 남들이 그대를 추종하려 할 것이다.


임금이 현명한가를 결정적으로 헤아리는 방법은 상벌의 경중에 달려 있다. 이러한 적절한 법술을 터득하여 다스리면 몸은 묘당에 앉아 처녀와 같이 아름다운 얼굴빛을 하고도 세상을 다스림에는 아무런 장해가 없다.


나라가 작으면서 무례하고 신하의 간하는 말을 듣지 않으면 곧 그 나라는 멸망하고 대가 끊어진다.


현명한 임금이 상을 주는 모습은 몽롱하게 스며드는 알맞은 봄비와 같이 모든 백성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고, 처벌할 때의 모습은 두렵기가 뇌성벽력과 같아 어떤 성인의 변명으로도 그 노여움을 풀 수 없다.


함부로 상을 주지 않으며 죄인은 덮어놓고 용서하지 않는다. 아무에게나 상을 주게 되면 참으로 공을 세운 사람은 그 맡은 일을 게을리 하게 되고 함부로 죄를 용서하면 간신은 그것을 이용하여 쉽게 못된 짓을 저지른다.


옛말에 이르기를 “간단한 것보다 큰 이로움이란 없고, 편안한 것보다 더 오래 이어지는 복은 없다.”라고 했다. 넓은 바다는 아무리 작은 시냇물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넉넉해진다.


사람은 심신의 힘을 아껴야 한다. 아껴야 한다는 것은 곧 그 정신을 아끼고 그 지혜를 소중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는 정신을 아끼는 것 만한 방법이 없다.


재미를 비유하건데 물과 같아 물에 빠진 사람은 이것을 지나치게 마셔 죽게 되고, 목마른 사람은 적당하게 마셔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道(도)라는 것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지만 사람들은 도가 나타난 흔적을 들추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기 몸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감히 법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사람의 몸은 360마디의 뼈와 네 개의 손, 발과 아홉 구멍이 그 중요한 기관이다.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뿌리이고, 조용한 것은 서두르는 것의 주인이다. 가벼우면 뿌리인 신하를 잃고, 서두르면 반드시 임금의 자리를 잃는다.


유약한 태도를 지키는 것이 참으로 굳센 것이다.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으니 그것은 이롭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써 상처가 없는 것이다.


책은 옛사람의 말을 기록해 놓은 것인데 말이란 다만 지식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옳게 아는 사람은 책 따위를 간직할 필요가 없다. 지식인은 말로만 가르치지 않고 또 지혜 있는 사람은 책을 쌓아두고 배우지 아니한다.


항상 뒤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무릇 말을 부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의 몸과 수레가 일치해야 하고, 또 부리는 사람의 마음이 말과 잘 조화될 때 비로소 빨리 달릴 수 있으며 먼 곳까지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께서는 뒤지면 저를 앞지르고자 초조해하고, 앞지르면 또 제가 뒤쫓아 오지나 않을까 걱정을 했습니다. 무릇 말을 달려 먼 곳까지 경주하려면 앞설 수도 있고 뒤질 수도 있는데, 당신께서는 앞설 때나 뒤질 때나 늘 마음은 저에게 쏠리고 있으니 그래서야 어찌 말과 일치되어 조화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까닭에 당신은 저에게 뒤진 것입니다.”


때에 순응하여 일을 행하고 자연을 바탕으로 공적을 세우며 만물이 갖추어 있는 능력을 상용하여 이익을 얻는다.


먼 곳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알게 되는 것은 점점 적어진다. 사람의 지혜는 눈이 눈썹을 보지 못함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항상 순간적 쾌락만을 추구한다면 재앙을 초래하게 된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현명한 사람의 헤아림을 듣지 않으면서 천리 밖의 사람의 말을 더 잘 듣는다. 사랑해야할 사람은 가까이 하지 않고 미워해야할 사람은 멀리 하지 않는 것이다.


한번 회오리바람이 불어 닥치면 먼 곳의 사람이 구원할 틈이 없으니 이보다 더 큰 화는 없을 것이다.


☞ 세(勢)가 없으면 사람을 통제 못한다. 아무리 재능이 있더라도 세가 없으면 비록 현명한 사람이라도 어리석은 사람을 통제하지 못한다.


만약 한 자 밖에 되지 않는 얕은 나무를 높은 산 위에 세워놓으면 천 길이나 되는 깊은 골짜기를 내려다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나무가 높아서가 아니라 그 나무가 서있는 자리가 높기 때문이다.


천 균(鈞)이나 되는 무거운 물건도 배에 실으면 물위에 뜨지만 좁쌀만큼의 치수(錙銖)라도 배를 잃으면 곧 가라앉고 마는데, 그것은 천균이 가볍고 치수가 무거워서가 아니라 세(勢)가 있고 없는 것에 따른 것이다.


☞ 옛날 이름 있는 의사들은 중병을 치료할 때는 칼로 환자의 뼈를 찔렀다고 한다. 충신은 위태로운 나라를 구할 때는 임금의 귀에 거슬리는 충언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뼈를 찌르므로 몸에 큰 고통은 있었겠지만 일신에는 오래도록 이로움이 있고, 귀에는 거슬리는 말이기 때문에 당장에는 마음이 언짢겠지만 나라는 오래도록 복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단적으로 사리를 정하는 것을 밝다고 하며,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사물을 들어 판단하는 것을 총명하여, 홀로 사물을 판단하는 사람은 능히 임금이 될 수 있다.


무릇 수양버들은 옆으로 심어도 살고, 거꾸로 심어도 살며, 꺾어 심어도 또한 잘 자라는 나무입니다. 그러나 열 사람이 심더라도 한 사람이 이를 뽑아버린다면 살아남을 버들은 없을 것이다.


무릇 열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쉽게 잘 자라는 나무를 심더라도 한 사람의 방해자가 있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심기란 어려운데 뽑아버리기란 쉬운 것이기 때문이다.


천하를 사양한 허유, 요 임금이 천하를 현인인 허유에게 물려주려하자 허유는 이를 사양하고 도망가 어떤 사람의 집에 숨어 지냈는데, 그 집 주인은 혹시 허유가 가죽으로 만든 갓을 훔쳐가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그 갓을 감추어 버렸다.


허유는 천하도 버린 사람이었는데 겉모습이 초라하다 하여 그 집 주인은 도둑으로 오해하고 가죽 갓을 감추었으니 이는 그 주인이 허유의 사람됨을 몰랐기 때문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어떤 일이든 작은 징조라도 보이면 우물쭈물 하지 말고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끝. '09.9.12 / 2012.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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