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책(冊)

희랍(헬라스) 철학 입문

물조아 2007. 3. 16. 20:21

희랍(헬라스) 철학 입문 - W.K.C 거스리 / 박종현


사람이 자신에게 있어서 최고의 것에 따라서 사는 것은 그의 의무이니 그것은 사유의 힘이다. 인간의 행위의 철학 - 우리의 행동을 지식과 이론의 체계적인 통합에 근거하게 하려는 시도.


일체의 것을 버리고 오로지 이 높은 철학적인 이상을 따르는 것에 대해 옳다고 여기지는 않았으니 그것은 실상 그와 같은 삶이 인간에게 있어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일에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는 신일 것이다.


철학은 플라톤의 대화편들에 있어서의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리면, 죽음을 위한 준비인데 그건 철학이 하는 일이 혼으로 하여금 죽음을 면치 못하는 구조의 한계로 다시 한 번 되돌아가도록 저주받는 대신에 이데아의 세계에 영원히 머물도록 적응시켜 주는 것이라는 점에 있어서이다.


첫째 일정한 할 일을 가지는 데 달려 있고, 둘째 그 일이 무엇이며 그것이 달성하고자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저한 앎에 달려 있었다.


박학이 분별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드리는 것은 적지만 충심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정신이 세계를 지배하고 혼돈 상태의 세계에 질서를 가져다주었다. 지성의 활동은 삶이다. 지성은 가장 높은 단계에 있어서 나타나는 삶이다.


덕(德)은 앎(知識)이다.(일을 배우려고 애쓰지 않으면 유능해질 수 없다.) 덕이 앎(지식)이라면, 악덕은 오로지 모름(無知)에 기인한다. 그러나 절대적인 올바름이나 덕이 실제로 존재합니까? 


이오니아 사상가들의 그 후의 원자론자들은 질료에 의하여 응답했고, 피타고라스 학파와 소크라테스, 플라톤 및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에 의하여 응답했다. 물질론 자들과 목적론 자들 즉 질료철학자들과 형상 철학자이다.


생존 경쟁에 있어서 생존을 위해 부적합한 생물은 소멸되고, 구성원이 실제적으로 함께 모여 살게 된 생물만이 생존하게 되었다. 투쟁은 삶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요 그래서 좋은 것이다. 싸움은 만물의 아버지요, 다툼은 정의이다.


균형의 기본은 투쟁이요, 따라서 싸움은 그 자체에 있어서 좋은 것이니, 이는 그것이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싸움의 한 면이나 단계는 좋다고 하되 다른 한 면이나 단계를 나쁘다고 함은 불합리하다.


사람은 만물의 척도이다. 어떤 한 사람에게 사물이 보이는 대로의 것이 그에게 있어서의 진리이고 또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대로의 것이 또한 그 사람에게 있어서의 진리라는 것이다. 어느 쪽도 다른 쪽을 틀렸다고 단정할 수가 없다.


변화는 잠시도 멎는 일이 없었으며 어떤 것도 단 두 순간동안엔들 계속해서 동일한 것은 없었다. 인식의 대상은 불변의 것이며 영원한 것이어서 시간과 변화를 벗어나 있는 것임이 틀림없는데 반해 감각들은 우리를 변화하고 소멸하는 것들과 접촉하게 만들뿐이다.


육신적인 죽음은 혼에게 있어서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된 삶의 회복이다. 육신은 감옥 및 무덤에 비유되고 혼은 이 지상에서의 삶에 앞서 친히 지내던 이데아들의 세계로 되돌아갈 수 있기 위해서 이 육신에서 풀려나오기를 갈망한다.


용기는 지혜가 아니라 일종의 대담함이라고 가정해 보게, 어떤 사람이 지성은 없이 대담할 경우에는 해를 입게 되지만, 지성이 있으면서 그럴 경우에는 이롭게 되는 게 사실이 아닌가? 이러한 성질의 것들은 모두가 지성과 더불어 습득되고 단련될 때에는 유익하지만 지성이 따르지 못할 경우에는 해로우이,


신들 자신도 인간의 고안의 산물이요 곳곳마다 다른 관습들에 따라서 창작된 것들이다.  끝. '09.9.13 / 2012.7.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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