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책(冊)

데칸쇼 논술(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가 깜짝 놀란) / 이경호 / 도서출판 성림

물조아 2017. 1. 29. 18:20


 

- 이경호 저자에 대하여~

 

이경호 서울 출생.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경제기획원 근무 재정경제부 근무 산업자원부 무역위원회 서기관. 중앙일보사 독서감상문 행사 5회 수상.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철학 역사 문학 서적 등 3천 권 독파. 한국의 보르헤스가 되기 위해 독서 중~

 

- 무엇인가를 느껴 마음속에 새겨놓고 싶어서 붉은색 볼펜으로 밑줄을 긋고 노트북에 메모를~

 

과거나 지금이나 나는 독서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책은 밥이었다. 밥 먹을 시간이 되면 밥을 먹듯이 나는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이 책 저 책 가리지 않고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읽어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렇게 무턱대로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나도 한번 써보자

 

논술고사나 독서감상문 구성은 서론 본론 결론으로 짜여 있다. 내용에 있어서는 논술문은 주장을 적은 글이고, 감상문은 느낌을 적은 글이다. 그러나 주장에도 느낌이 들어가고 느낌에도 주장이 들어간다.

 

음악의 삼박자가 리듬, 멜로디, 하모니라고 한다면 논술의 삼박자는 읽기 생각하기 쓰기라고 할 수 있다. 즉 논술은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야한다.

 

독자는 이렇게 생각하기를 바란다. 글을 끝내주게 잘 쓰는 이양하도 글쓰기가 힘들었는데 글쓰기 초보자인 내가 힘든 것은 당연하다. 고 말이다. 그러면 마음도 편해지고 위로도 될 것이다.

 

독서량은 글을 쓸 때 적절히 이용될 수 없다면 그것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괜히 읽느라고 고생만 했으니까 말이다. 이용할 수 없는 독서량은 쓰레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사색(思索)은 어떤 것에 대하여 깊이 헤아려 생각하는 것이다. 사색은 천성적으로 사색하는 두뇌를 가진 사람에게만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사색하는 일이 호흡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다.

 

독서는 다른 사람의 사상을 마치 도장을 찍듯이 강제로 정신에 찍어 준다. 그러나 스스로 사색하는 정신은 독서하는 정신과는 달리 자신의 충동에 따라 움직인다. 우리 주위에 많은 독서를 하였음에도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 꽤 존재하는 것도 이들이 사색의 길을 걷지 않았기 때문이다.

 

헤밍웨이의 ()와 빈()이 책의 주인공은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도 열심히 노력하며 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를 한몫 잡으려는 순간에 죽고 만다. 그렇다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다 무상하다는 것이다.

 

앙드레 지드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부러워하는 것은 분별없는 짓이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내가 써먹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행복은 기성복이 아니라 맞춤복 같은 것이다.”

 

플라톤은 흔히 서양철학의 시조라고 부른다. 플라톤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의 대화편을 직접 읽어보아야 한다. 이 안에는 소크라테스의 변명 파이돈, 크리톤, 향연, 프로타고라스, 소피스트, 고르기아스 등의 내용이 들어있다.

 

그런데 철학 책을 읽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플라톤 철학의 개요나 밑바탕을 공부하지도 않고, 아무 철학 책이나 읽으려고 한다. 아무 준비도 없이 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 등과 같은 골치 아픈 철학자에게 덤벼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무모하게 돌진하는 것이다.

 

- 설 명절 사촏들과 게 눈 감추듯한 만남이 있고나서 헤어져서는 책 읽기를 마치고~

 

공부는 확실하게 사용 되는 것이어야 한다.

 

첫째 일신 일일신 우 일일신(日新 日日新 又 日日新), 하루가 새로워지려거든 하루하루를 새롭게 하고 또 매일 매일을 새롭게 해야 한다.

 

둘째 사람의 배움이 하루라도 나아가지 못한다면 곧 하루만큼 퇴보하는 것이다. 우리가 인간이 된다는 것은 무지와 허물을 수치로 아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배움이 없으면 , 돼지와 같은 짐승(禽獸)이 되는 것이.

 

셋째 공부는 반드시 필요에 의해서 확실하게 꼭 사용되는 것이어야 한다. 만약 공부를 해두면 언젠가 쓰일지 모르는 막연한 준비를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살아서 할 수 있는 일만 하는 것이다. 즉 무익한 학문을 여러 가지 배우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전문화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