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책(冊)

여자 그것은 태초의 깨달음이어라 / 정허스님 지음 / 해오름

물조아 2015. 9. 25. 18:05

여자 그것은 태초의 깨달음이어라 / 정허스님 지음 / 해오름

 

 

- 이정허 스님 저자에 대하여~

 

경남 남해에서 태어남, 중앙대학교 연극 영화학과에 입학하여 문예창작과로 전과 졸업 후 범어사로 출가. 저서로는 『영혼의 불꽃하늘 저만큼에서』 『떠도는 문서, 나의 역마살』 『그리워라 목련, 너 눈부시구나』 등 연극에 출연한 작품은 30여 편에 이르며, 93년 전국연극제 『동의보감』으로 남자 연기상 수상. 극단 하늘개인날 단원. 포교원 하늘개인날 원장.

 

- 무엇인가를 가슴으로 느껴 마음속에 오래도록 깊이 새겨놓고 싶어서 붉은색 볼펜으로 밑줄을 긋고 노트북에 메모를 해놓은 영혼이 담긴 글들은~

 

- 영혼의 작은 씨앗을 땅위에 남기기 위해서는 처절한 생의 경작을 해야 한다. 자기 삶을 거침없이 살 필요가 있다. 생명이 있는 한 열심히 사랑하고 또 생명을 불태워야 한다.

 

모든 어휘는 위대한 폭발적인 힘을 내포하는 견고한 껍질이다. 그 의미를 찾아내려면 인간은 내면에서 폭탄처럼 그것이 터지게 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안에 갇힌 영혼이 자유로워진다.

 

- 인생에는 ‘인연’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어떤 필연 또는 우연을 계기로 서로 알게 된다. 수없이 많은 아는 사람들 가운데서, 특히 마음에 드는 사람끼리 ‘정’을 주고받는다. 정을 나누는 사람들이 특히 남보다 잘 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서로 깊이 생각하고 깊이 이해하는 사이가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를 생각하고 나를 이해함에 있어서 다른 누구도 따르지 못하는 까닭에 그는 나에게 대해서 이 세상에 가장 귀중한 사람이 될 수 있다. p20

 

- 영원하고 싶은 사랑 사랑은 누구나 맹목적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사랑은 거의 없다. 결혼을 하고 아무런 비밀도 없이 서로를 너무 잘 알게 되었을 때부터 서서히 권태는 다가오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능은 무한히 새 것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권태는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매력이 얄팍하고 화려한 포장지만으로 되어 있고 속이 비어 있는 데서 시작된다. 이렇게 본다면 사랑이란 상호간에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여름에 만나 가을과 함께 시들해지기 시작했다면 그만큼 밑천 없이 사랑을 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p24

 

- 우리는 오히려 그 많은 고통을 의식할 줄 알고 그것을 또 극복할 줄 알기 때문에 위해한 문명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 어쩌다 슬픔이 밀려들어온다 하더라도 그 슬픔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p48

 

- 물에 사는 짐승과 나무들은 표층 위로 모든 걸 드러내 보이지만 바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작은 조개일망정 모래에 숨고, 해조처럼 물고기 떼들은 심층의 바다 밑으로 유영한다.

 

태풍이 바다의 표면을 뒤덮어 놓는다 할지라도 해저의 고요함을 흔들 수 없을 것이다. 그 고요 속에 닻을 내리는 연습을 하여라. 사랑을 한 다는 것은 바로 닻을 던지는 일과도 같은 것이니... p57

 

- 사랑은 사실 말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고백하고 행동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 눈동자의 언어는 사랑의 시요, 행동은 사랑의 원무이다. 그리고 참된 사랑의 기쁨은 이 시와 춤의 언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을 것이다. p60

 

- 씨 뿌리고 가는 인생 우리나라가 아닌 유럽의 이야기다. 스승과 제자가 만났다. 서로 같은 전선에서 같은 군복을 입고 만난 것은 아니다. 스승과 제자는 적과 아군으로서 만난 것이다. 서로 총부리를 겨눈 순간 저쪽에서 이쪽을 알아봤고 이쪽이 저쪽을 알아본 것이다.

 

요란한 총성, 포탄이 작렬하는 소리, 단말마의 비명 소리, 이 속에서 서로 만난 그들의 머리 속엔 순간적으로 그들의 학교, 그들의 교실, 그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던 교정의 벤취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서로가 총을 겨누지 않으면 안 될 적과 아군이라는 것을 알았다.

 

“쏴라!” 스승이 말했다. “먼저 쏘십시오.” 제자가 말했다. “같이 쏘자.” “같이 쏩시다.” “하나 둘 셋” 요란한 총소리, 그러나 쓰러진 것은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었다.

 

스승이 쓰러진 것이었다. 제자는 쓰러진 스승에게로 달려갔다. 제자의 팔에 안긴 스승은 그대로 마지막 숨을 거두고 말았다. 스승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제자의 목소리만이 골짜기에 메아리쳐 나가고 있었다.

 

한 전선에서 적과 아군으로 만났지만 이데올로기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제자의 가슴에 심어 준 것이다. p85

 

- 문화는 현실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려 할 때 꽃핀다. p107

 

- 인생이란 서론도 본론도 결론도 없는 것인데 인위적인 서열로써 분할하고 전개하고 매듭짓는 인생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생의 식탁에 한꺼번에 차려놓아진 것, 그것이 진짜 인생이 아닐까. p130

 

-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보면 어떻게 그들이 오늘날과 같은 경제 대국을 이룩했는가 믿어지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한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보면 어떻게 이 유능한 민족이 일본인들에게 지배를 당해야만 했었는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p106

 

- 모든 고뇌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넉넉함을 아는 것은 부유하고 즐거우며 안온하다. 그런 사람은 비록 맨땅 위에 누워 있을지라도 편하고 즐겁다. p178

 

- 사람에게 절실한 것은 철학이 아니라 생활이다.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보다는 어떤 삶을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가 백 배, 천 배는 더 심각한 것이다. p185

 

- 4월 초파일!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날이다. 부처님이란 말뜻이 ‘깨달은 이’이다. 초파일 절에서는 두 가지 큰 기념행사가 있다.

 

하나는 탄생의 시각인 정오에 부처님을 목욕시키고 불공을 드리는 일, 그래서 이날을 욕불일이라고도 한다. 또 하나는 밤에 등불을 밝히는 연등이 그것이다. p190

 

- 우리는 미워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서로 믿고 사랑하며 함께 길을 가기 위해 만난 것이다. p191

 

- 강의 흐름은 따로따로이지만 일단 바다로 들어가면 이미 강 이름은 없다. ~ 불법에 있어서는 모두 평등일미이다. p193

 

- '삶이란 자그마한 촛불, 쉽게 꺼지지. 죽음이 깨우기 전에 눈을 떠야 한다.’ 니코스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 p232

 

- 순수한 용기와 힘은 처절한 진실을 바탕으로 고통과 갈등 속에서 위대한 생의 걸작을 꽃피워 왔다. p233

 

- 모두들 바쁘게 살아가는 탓인지, 시간에 쫓기고 일에 시달리고 돈에 추격당하면서 정신없이, 그야말로 두 눈이 기계벨트처럼 핑핑 돌아가도 살지말지한 다망다사한 세상이지요. p269

 

- 진리의 실천은 현실적으로 개미가 굴러오는 자동차 바퀴를 멈추게 하겠다고 대드는 무모함에 비유될 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p278

 

- 지금 그 마을에는 악성 전염병이 휩쓸어 전 마을의 인명을 다 앗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해는 저물고 배까지 고픈데 스님은 자못 아찔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죽음의 벼랑에 다다른 듯 두려움으로 마음이 떨리자.

 

그는 지금까지 배워온 지식에 희의를 느끼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배워온 문자라는 것이 결국 생사해탈을 목적으로 했던 것인데 지금 이렇게 두려움을 금치 못하고 있으니 문자라는 것도 실상은 큰 힘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p307

 

- 책장 앞에 있는 것을 잘 생각하거나 따져 보지 않고 그냥 마구 꺼내어서 읽기를 마치고~

 

경허스님의 임종게(臨終偈 ) - 마음의 달이 오직 둥금에 그 빛이 모든 것은 삼키다. 빛도 없고 빛의 대상도 없으니 다시 또 무엇이 있을까 - 라는 글에서 미래 여행을 떠날 때의 기대감을 느낀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을 덮고 버릇처럼 표지의 정허스님의 모습을 보면서, 내용 글에서 느낄 수 있듯이 자유로운 영혼의 깨달음에 대하여 많은 고뇌에 찬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미친 척하고 세상이 미칠 정도로 책이나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라고 하였을 때에는 저자의 세속적인 솔직한 심정에서 그래도 거짓이 없이 참되고 순수하다는 생각이 든다.

 

삶을 거침없이 살아야 한다. 생명이 있는 한 열심히 사랑하고 또 생명을 불태워야 한다. 우리는 미워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서로 믿고 사랑하며 함께 길을 가기 위해 만난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