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책(冊)

님께서 沈黙하지 아니하시면 / 한용운 수상록 / 문학세계사

물조아 2015. 9. 12. 12:01

님께서 沈黙하지 아니하시면 / 한용운 수상록 / 문학세계사

 

 

- 고난의 칼날에 서라 무슨 일이든지 성공이나 실패보다 옳고 그른 것을 먼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하늘과 땅에 돌아보아 조금도 부끄럽지 않을 옳은 일이라 하면 용감하게 그 일을 하여라. 그 길이 가시밭길이라도 참고 가거라. 그 일이 칼날에 올라서는 일이라도 피하지 말아라.

 

고통을 피하는 자는 반드시 쾌락을 구 한다 하리라. 그러나 쾌락은 또한 고통을 피하는 자를 피하니 어찌 하리요.

 

목적을 위하여 정당하게 전진하는 불굴불요(不屈不撓)의 인물은 순경을 만난다고 경희작약(驚喜雀躍)하여서 분외의 속력을 가하는 것도 아니지마는, 역경을 만난다고 공축퇴굴(恐縮退屈)하여서 방향을 고치는 것도 아니다.

 

깊으면 깊을수록 뚫어야 되는 것이요, 높으면 높을수록 올라야 되는 것이다. 모든 일은 크면 클수록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시일과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 1879년 충남 홍성 출생, 1884년 향리의 사숙에서 한학에 정진하다. 1905년 설악산 백담사에서 金蓮谷師에게 득도. 1919년 민족 대표 33인 중의 한사람. 신간회 발기. 1944년 심우장에서 입적.

 

만해 한용운은 젊은 나이에 불교에 입교하여 종교를 뛰어 넘어 오직 님을 향한 독실한 愛國愛族으로 기나긴 어두운 밤을 지새웠을 것이며, 우리의 젊은이에게 띄우는 글 한마디 한마디가 자유에 대한 비분강개함이 서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인가를 가슴으로 느껴 마음속에 오래도록 깊이 새겨놓고 싶어서 붉은색 볼펜으로 밑줄을 긋고 노트북에 메모를 해놓은 좋은 글들은~

 

-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을 갔습니다 ~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 나의 길 나의 길은 이 세상에 둘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님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죽음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 服從(복종)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만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 당신 가신 때 나는 영원의 시간에서 당신 가신 때를 끊어 내겠습니다. 그러면 시간은 두 도막이 납니다. 시간의 한끝은 당신이 가지고 한끝은 내가 가졌다가 당신의 손과 나의 손과 마주 잡을 때에 가만히 이어 놓겠습니다.

 

- 躍動(약동) 인생의 逕路(경로)는 쾌락도 아니요 비애도 아니요 활동뿐이다.

 

- 半九十里 백리를 가려면 구십 리가 반이라네, 시작이 반이라는 우리들은 그르도다. 뉘라서 열 나흘 달을 온달이라고 하더뇨.

 

- 禪(선)은 마음을 닦는 즉 정신 수양의 대명사다. 선에 있어서는 나쁜 생각만 망상이 아니라 좋은 생각도 망상이다. 나무를 무성케 하기 위하여 뿌리를 북돋우는 것과 같이 사람의 행사를 정돈하기 위하여 먼저 마음을 닦는 것이다.

 

- 사람다운 일은 선이라 할 것이요, 사람답지 못한 일은 악이라 할 것이니, 악이라 함은 무고(無故)히 사람을 구타하고 물(物)을 상해(傷害)하는 것만 악이 아니라 열자(劣者) 되고 패자(敗者) 되어 남에게 불쌍히 여기는 자가 되고 물(物)에게 심부름하는 자가 되는 것이 더 큰 악이 되느니라.

 

- 勇者(용자)가 되라 쌓인 눈 찬 바람에 아름다운 향기를 토하는 것이 매화라면, 거친 세상 괴로운 지경에서 진정한 행복을 얻는 것이 용자니라. 곤란 속에 숨어 있는 행복은 스스로 힘쓰는 용자의 품에 안기느니라.

 

- 자기를 가난케 하는 것은 다른 부자가 아니라 자기며, 자기를 약하게 한 것은 다른 강자가 아니라 자기며, 자기를 불행케 한 것은 사회나 천지나 시대가 아니라 역시 자기다.

 

반성하는 자는 새로운 각오가 있는 것이요, 자책하는 자는 향상의 노력이 있는 것이다. 자각과 노력은 만사 성공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 공익 자기의 사익을 희생하여 가면서 공익을 위하는 것을 적극적이라 할 것이요, 다만 공익을 해(害)치 않는 것을 소극적이라 할 것이다.

 

즉 자기의 재산과 심력을 들여서 학교나 자선 기관 같은 것을 시설하는 것은 적극적이요, 공원의 화초를 훼절치 않는다든지 도로나 우물에 오예물을 버리지 않는 것은 소극적이 될 것이다.

 

사회도 한 배요 국가도 한 배다. 사회인과 국민은 같은 선원이다. 그러므로 사회 국가의 운명은 곧 개인의 운명이다.

 

그러므로 사회를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자기의 행복을 위하는 것이요, 국가를 위하여 진췌하는 것은 자기의 자유를 위하는 것이다.

 

- 약 20여 년 전에 조선 사람 누가 독일에 유학을 가서 여관에서 자는데 전등을 끄지 아니하고 잤더란다. 식전에 여관의 심부름하는 여자가 방을 치우러 들어와서 전등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전등을 켜고 주무셨어요?” “예” “왜 끄고 주무시지 아니하셨어요?” “댁에 계량기를 쓰셔요?” “아니오, 계량기는 없어요.” “그러면 불을 켜고 잔들 어떻습니까?”

 

그 여자가 무끄러미 쳐다보더니, “당신도 나라가 있소?” 하고는 조소 비슷하게 묻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