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책(冊)

남한산성 / 김훈 장편소설 / 학고재

물조아 2013. 11. 22. 12:16

                   

 

후금 누르하치의 여덟 째 아들 홍타이지는 아비가 죽자 형들을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 국호를 청(淸)이라 내걸었다. 명령을 칙이라 하였으며, 가르침을 조라 하였고, 스스로 짐을 칭하였는데, 그의 백성들은 종족의 말 그대로 칸이라고 불렀다.

 

청의 칸은 명의 숨통이 거의 끊어져 갈 무렵 칸은 조선 임금에게 국서를 보내어, 명의 연호를 버리고 명에 대한 사대를 청으로 바꿀 것과 왕자와 대신을 인질로 보내 군신의 예를 갖출 것을 요구했다.

 

/ 대저 천자의 법도는 무위를 가벼이 드러내지 않고 말 먼지와 눈보라는 내 본래 즐기는 바가 아니다. 내가 너희의 궁벽한 강토를 짓밟아 네 백성들의 시체와 울음 속에서 나의 위엄을 드러낸다 하여도 그것을 어찌 상서롭다 하겠느냐.

 

그러므로 너는 내가 먼 동쪽의 강들이 얼기를 기다려서 군마를 이끌고 건나가야 하는 수고를 끼치지 말라. 너의 좁은 골짜기의 아둔함을 나는 멀리서 근심한다....... /

 

 

조정은 얼어붙었다. 아무도 두려움을 말하지 않았다. 침묵은 얼어서 편전 땅 밑으로 깔리고, 그 위에서 언설은 불꽃으로 피어올랐다.

 

/ 전하, 적의 문서는 차마 읽을 수 없고 옮길 수 없는 것이옵니다. 짐승을 어찌 교화할 수 있으며, 오랑캐를 어찌 예로써 대할 수 있겠습니까. 적의 사신을 목 베고 그 머리를 국경에 효수하여 황제를 참칭한 죄를 물으시고 대의를 밝히소서 /

 

그러나 어가행렬은 수구문으로 도성을 빠져나와 송파나루에서 강을 건넜다. 강은 얼어 있었다. 나루터 사공이 언 강 위를 앞서 걸으며 얼음이 두꺼운 쪽으로 행렬을 인도 했다. 임금은 새벽에 남한산성에 들었다.

 

그해 바람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습기가 빠져서 가벼운 바람은 결마다 날이 서 있었고 토막 없이 길게 이어졌다. 칼바람이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눈 덮인 봉우리에서 회오리가 일었다. 긴 바람 속에서 마른 나무들이 길게 울었다.

 

 

김상헌은 대청마루로 올라왔다. 선영이 있는 남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몸의 깊은 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몸이 울음에 실려 출렁거렸다.

 

- ... 가자, 나는 인간이므로, 나는 살아 있으므로, 나는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성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삶 안에 죽음이 있듯, 죽음 안에도 삶은 있다. 적들이 성을 둘러싸도 뚫고 들어갈 구멍은 있을 것이다. 가자, 남한산성으로 가자.

 

... 버티지 못하면 어찌 하겠느냐. 버티면 버티어지는 것이고, 버티지 않으면 버티어지지 못하는 것 아니랴....... 죽음을 받아들이는 힘으로 삶을 열어나가는 것이다.

 

아침은 오고 봄은 기어이 오는 것이어서 성 밖에서 성 안으로 들어왔듯 성안에서 성 밖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 어찌 없다 하겠느냐....... -

 

 

칸은 망월봉 꼭대기에서 - 너희는 내가 여기까지 온 것과 오지 않은 것의 차이를 깊이 생각해라. 너희들끼리라면 성을 깨뜨려서 취하는 쪽이 용맹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미 왔으므로 군사를 몰아서 성을 취함은 아름답지 않다.

 

내가 저 춥고 가난한 성을 얻기 위하여 군사를 보내 성벽을 타 넘어야 하겠느냐. 그것을 황제의 위의라 할 수 있겠느냐. 저들이 완강하고 편벽할수록 제 발로 걸어 나와야 황제의 존호는 빛날 것이다. 하나, 바싹 조여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

 

 

최명길은 먹을 갈았다. 남포석 벼루는 매끄러웠다. 붓을 적셨다. 젖은 붓을 종이 위로 가져갔다.

 

소방의 군신들이 들불처럼 휘몰아오는 황군의 위무를 차마 영접하지 못하고 우선 몸을 피해 산성으로 들어왔으나 어찌 감히 대국에 맞서려는 뜻이 있겠나이까. 쫓기는 작은 짐승이 굴속으로 숨어든 일을 황제께서 기어이 군사를 움직여 꾸짖으신다면, 소방은 황제의 은덕에 닿지 못하여 오직 죽음이 있을 뿐이옵니다.

 

황제의 깃발 아래 만물이 소생하고 스스로 자라서 아름다워지는 것일진대, 황제의 품에 들고자 하는 소방이 황제의 깃발을 가까이 바라보면서 이 돌담 안에서 말라 죽는다면 그 또한 황제의 근심이 아니겠나이까. 하늘과 사람이 함께 귀의하는 곳에 소방 또한 의지하려 하오니 길을 열어주시옵소서.

 

-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못할 짓이 없고, 약한 자 또한 살아남기 위하여 못할 짓이 없는 것이 옵니다. -

 

 

임금은 새벽에 성을 나섰다. 대열은 행궁을 나와 서문으로 올라갔다. 성 안에 남는 사대부와 궁녀들이 서문 앞에 모여 통곡하며 절했다. 임금은 돌아보지 않았다. 서문은 홍예가 낮았다. 말을 타고 홍예 밑을 지날 때 임금은 허리를 숙였다.

 

서문 밖은 내리막 경사가 가팔랐다. 말이 앞쪽으로 고꾸라질 듯이 비틀 거렸다. 말은 힝힝거리며 아나가지 않았다. 임금은 말에서 내려 걸었다.

 

대열은 삼전도 청진 안으로 들어왔다. 조선 왕이 말에서 내렸다. 조선 왕은 구층 단 위의 황색 일산을 향해 읍했다. 멀어서 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조선 왕이 구층 단 위를 향해 절했다. 세자가 왕을 따랐다. 청의 군장들이 여진말로 함성을 질렀다.

 

조선 왕은 오랫동안 이마를 땅에 대고 있었다. 조선 왕은 먼 지심 속 흙냄새를 빨아들였다. 볕에 익은 흙은 향기로웠다. 흙냄새 속에서 살아가야 할 아득한 날들이 흔들렸다. 조선 왕은 이마로 땅을 찧었다.

 

 

칸의 군사들은 세 방면으로 나누어 철수했다. 임금이 길에 나와 돌아가는 칸을 전송했다. 끌려가는 세자와 빈궁과 왕자들과 호행들이 칸의 뒤쪽 수레에 실려 있었다.

 

칸은 말했다. 슬퍼마라. 너희의 성심을 본 후에 돌려보내마.

 

 

김훈 선생님은 “병자호란,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 인조가 청나라에 백기를 들기까지 풍전등화의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에서 벌어진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의 주장에 인조의 갈등과 번민 그리고 고통 받는 남한산성 백성들의 비참한 생활의 치욕스런 조선의 역사라고 하였다.

 

김훈 선생님은 “특히 서문은 치욕의 문이라고도 했다. 인조가 청의 침략에 피해 남한산성에 들어 올 때는 어가를 타고 남문 즉 정문으로 들어 왔지만, 청에게 항복하고 남한산성을 나올 때는 굴욕의 서문으로 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루하루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과 심장이 터지도록 견디기 어렵도록 애가 타는 애절함이 쌓여가는 요즘!!!

  

혹자는 요즘 세상에는 ‘Greedy talk(탐욕의 언어)’와 ‘Blame talk(비난의 언어)’만 난무하는 것 같다고 하였다.

  

우리는 과거 5,000년 역사와 전통을 넘어서고 6.25의 동족상잔의 폐허를 재건하였고 그리고 짧은 60년의 민주주의 역사를 통해서 반민주 시대를 거쳐, 민주 시대를 지난 후, 탈 민주 시대에 진입하였다고 한다.

 

특히 우리들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자리 잡았고, 또 금융위기 이후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명분이나 체면을 초월한 실용주의화가 뿌리 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혹자는 옆집 악당들이 우리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는데, 그들을 잡기보다 그와 친했던 우리 집 식구 족치는 데 힘을 다 썼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남한산성의 그 좁디좁은 행궁에서 차가운 겨울을 보내고 서문을 통해서 항복해야만했던 과거 불운했던 역사의 굴욕과 치욕을 돌이켜보면서

 

제발 희망이 샘솟는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대립과 투쟁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이어지는 개인과 당을 위한 셈법이 아닌 사랑하는 대한민국을 위한 정치 다운 정치를 보여 주었으면 좋겠으며,

 

그래서 윗집 3대 독재 주체주의 북한과 앞집 사회주의 중국과 옆집 왕정 제국주의 일본 그리고 이웃동네 민주주의 미국보다 제발 잘 살아 보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