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책(冊)

나의 어머니 육영수 / 박근혜 / 도서출판 사람과 사람

물조아 2010. 11. 13. 22:01

1999년으로 어머니 25주기를 맞았습니다. 50세도 채 못 사시고 이 세상을 뜨셨지만, 참으로 굵게 사셨다고 느껴집니다. 인간에게 소중하기 그지없는 생명을 포함해서 모든 ‘얻는 것은 버리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리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은 사람들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고 결국은 잊혀지고 말지만, 지극한 성실성과 사랑 - 이것은 계속 존재하게 된다는 진리를 어머니의 삶을 통해 저는 배우고 있습니다.

 

1. 어머니의 가장 소중한 선물

 

사랑하는 한 남자의 아내로 / ~ 학교에서 저희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꼭 아버지에게 알려 드려 기쁨을 나누고,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해결하면서 남편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것이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바쁜 스케줄에 쫓기는 아버지를 언제나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대통령은 스케줄과 씨름하기를 업으로 삼아야 한다고 안쓰러운 마음을 표현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청와대 생활을 시작한 첫날부터 밥을 짓는 쌀에서 한 줌씩을 절약하여 따로 모아두었습니다. 굶는 동포가 있는 한, 나라의 번영은 바랄 수 없다는 생각을 마음에 두고 첫날부터 절약하는 습관을 실천한 것입니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을 위하여 / 지금 그때의 어머니 모습을 생각하면 ‘여성들의 무대가 한결 넓어진 오늘날에 어머니가 살아 있다면 어떤 여성의 역할을 맡았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예상치 못한 어머니의 모습이 기대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을 통해 느끼듯이 우리가 생각하는 여성상은 참으로 나 아닌 타인을 위해 희생과 사랑의 덕을 쌓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여성에게 주어지는 역할은 거기에 더하여 한 가정의 경영자로서, 자녀들의 산 교육자로서, 또한 민주사회의 참여자로서, 세계를 행한 변화의 한 주체자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선택하고 또 실현해내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화두는 ‘성실’ / 어머니 생전의 모습은 성실, 노력, 인내였습니다.

 

~ 제가 어머니에게 여쭈어본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그런 슬기와 지혜는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어머니는 “자기가 문제를 절실히 느껴야지, 절실하면 알게 되는 거야”하고 말씀했습니다. 성실한 마음으로 인내하며 노력한 어머니의 모습이 녹아 있는 대답이었습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매일매일 깨끗한 거울에 비쳐보면서 한 곳이라도 흠이 없을까, 남의 모범이 되는 데 행여 부족함이 없을까,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시던 마음가짐은 돌아가시던 날까지 변함이 없었습니다.

 

~ “남을 위해 항상 모든 것을 자제해” 어머니의 이 말씀이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나가는 우리들에게 희망임을 믿습니다.

 

대통령의 ‘밝은 귀’가 되어 / 어머니는 출생지나 혈연에 관련된 청탁에 대해서는 무자비할 만큼 엄격했습니다. 누군가가 부탁을 하면 “혁명이 왜 일어났느냐, 우리들이 사적인 것을 앞세우면 혁명 전의 상황과 똑 같이 된다.”고 단호하게 거절 했습니다.

 

어머니는 민원을 해결하실 때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손수 해결하며, 일단 손을 댄 일이라면 철저하게 마무리 지어 중간에 물러서거나 그만두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국민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는 못할망정 중간에 포기해서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상처를 입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갖가지 민원을 대하면서 “민원은 사무적인 것이 아니라 국민과 나누는 따뜻한 대화이다. 내가 가진 능력이 부족하여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대로 성실하게 답해 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 국민과의 따뜻한 대화를 나누는 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1974년 8월 15일의 기억들 / ~ 그렇게 조국을 떠나고 식구들을 떠나 프랑스에 머문 지 얼마 지난날이었습니다. 한국 대사관을 통해 연락이 왔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차마 말할 수 없었는지 그저 어머니께 급한 일이 생겼으니 빨리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지방에 있었는데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밀려드는 두근거림과 불길함에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서울행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에 도착한 저는 신문 가판대에서 어머니에 관한 기사가 실린 신문을 보았습니다. 그 외국 신문은 자세하게 한국 소식을 전하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사진과 함께 싣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다니…’ 청와대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채로 접견실에 조용히 누워 있었습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 내 앞에 놓여져 있었던 것입니다.

 

2. 그때 그 시절의 짧은 필름

 

~ 육여사는 가족들의 점심을 콩나물죽으로 때우거나 저녁 식사로 콩나물밥을 지을 때가 허다했다. 그리하여 일선에서 연락병이 불시에 오게 되면 ‘우리 집 명물 콩나물죽’하고 콩나물죽을 대접하거나 따로 밥을 지어 준다고 해도 그것은 콩나물밥이었다. 그만큼 알뜰했다는 뜻도 되고 어려웠다는 뜻도 된다.

 

3. 눈부신 사랑, 눈물겨운 아픔

 

“그분은 남의 말을 늘 들어 주시는 편이었어요. 대통령이 들어두셔야 할 말을 대신 들어두자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쪽에서 탁 터놓고 어떠한 얘기를 해도 화를 내시는 것을 보지 못했어요. 항상 미소를 띠며 고언과 충언에 대하여 고맙다는 말만 하셨어요.” 1970년대 후반에 육 여사가 비교적 자주 접견했던 모 대학 교수의 말이다.

 

~ “아버지를 닮아 너도 구두쇠로구나” 어머니가 말로는 딸을 원망하는 듯한 표현을 했지만, 딸의 그와 같은 행위가 무척 믿음직스러웠다.

 

“영수는 어딜 가나 귀염 받고 잘살 거야, 재산이 넉넉한 집안으로 시집가면 그대로 허세를 부리지 않고 더욱 충실하게 잘살 거고, 넉넉하지 못한 집안에 가도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 초라하지 않게 불평 없이 잘살아 갈 거야.” 그 시절에 어머니가 둘째딸을 두고서 누구에게나 자랑삼아 하던 말이었다.

 

4. 그리고 못다한 말은

 

추억의 흰 목련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산천초목도 슬퍼하던 날

당신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는

겨레의 물결이 온 장안을 뒤덮고

전국 방방곡곡에 모여서 빌었다오

가신 님 막을 길 없으니

부디부디 잘 가오

편안히 가시오

영생극락하시어

그토록 사랑하시던

이 겨레를 지켜주소서

불행한 자에게는 용기를 주고

슬픈 자에게는 희망을 주고

가난한 자에게는 사랑을 베풀고

구석구석 다니며 보살펴드니

이제 마지막 떠나니

이들 불우한 사람들은

그 따스한 손길을

어디서 찾아보리

그 누구에게 구하리

극락천상에서도

우리를 잊지 말고

길이길이 보살펴주오

우아하고 소담스러운

한 송이 흰 목력이

말없이 소리없이

지고 가 버리니

꽃은 져도 향기만은

남아 있도다.

 

이 시는 박정희 대통령이 1974년 8월 31일 쓴 것임.

 

▲ (서울=연합뉴스) 정부가 공식적으로 촬영한 사진을 연대별로 모아 발간하는 '대한민국 정부 기록사진집' 제10권(1973~1977)과 제11권(1978~1982)이 발간됐다.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부터 1953년까지의 사진집을 1권으로 시작해 계속 발간해오고 있다. 사진은 77년 12월 육영수여사 기념관의 좌상 앞에 선 장녀 박근혜의 모습. 2010.11.4/2010-11-04 15:30:13/  '10.12.31  '1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