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가족 위한 희생이 아닌 ‘건강한 마무리’ 추구 ㆍ남은 삶 준비·차분한 성찰… 자살예방 효과도
지난 21일 대법원의 존엄사 확정판결이 이뤄지자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웰다잉(Well dying)은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넘어 ‘아름답고 편안한 죽음을 준비할 권리’를 뜻한다. 죽음에 대한 준비는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존엄사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품위있게 죽을 권리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 존엄사는 웰다잉이 선행돼야 = 오진탁 한림대 생사학(生死學) 연구소장은 “웰다잉은 한마디로 행복한 죽음, 건강한 죽음을 말한다”고 말했다. 오 소장은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존엄사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데 다들 죽음에만 집착하고 있다”며 “ ‘사(死)’를 얘기할 게 아니라 ‘존엄(尊嚴)’을 뜻하는 웰다잉 개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 소장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인식이 가장 중요한 바탕”이라며 “이를 통해 사회적 문제인 자살도 예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경 죽음준비교육 전문강사(47)는 “존엄사라는 말을 쓰면 자칫 대의를 위한 모든 죽음을 범주에 포함시키는 오류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존엄사라는 단어에 자기 희생의 이미지가 덧붙여지면 자칫 환자로 하여금 가족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죽음을 선택하도록 강요할 위험성이 있다는 뜻이다.
존엄사 인정 판결에 대한 관심이 죽음 문화를 성숙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진다.
오 소장은 “관련 법 제정은 죽음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초·중·고교에서도 죽음에 대한 교육 과정이 생겨서 젊은 시절부터 죽음을 준비하고 차분히 성찰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 죽음 준비교육 = 품위있게 죽을 권리에 대한 관심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시립동작노인종합복지관에서는 죽음 준비학교인 ‘하늘소풍 준비하기’ 프로그램이 1년에 두 차례씩 열린다. 복지관 관계자는 “존엄사에 대한 대법원 판결 후 6월에 개강하는 프로그램은 정원을 늘렸다”고 말했다. 2006년부터 죽음 준비학교인 ‘아름다운 생애 마감을 위한 시니어 죽음준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에는 9월 시작하는 하반기 프로그램 문의가 벌써부터 들어오고 있다.
죽음 준비교육 프로그램에는 유언장 작성, 자서전 쓰기, 역할 즉흥극인 ‘소시오 드라마’ 공연 등이 포함된다.
특히 ‘소시오 드라마’는 죽음을 앞두고 처할 수 있는 여러 상황을 연극으로 체험함으로써 이에 대한 대처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이를 통해 삶의 우선 순위도 바뀐다. 유 강사는 “수년 동안 강의를 하면서 노인들에게 유언장을 쓰게 했는데 단 1명도 맨 앞에 ‘돈 많이 벌라’는 얘기를 쓰지 않았다”며 “모두들 건강, 화목, 사랑 등의 가치를 맨 앞에 두더라”고 전했다.
◇ 죽음준비는 삶의 준비 = 죽음에 대한 준비는 남아 있는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 노원복지관은 지난해 하반기 프로그램에 참석한 박모 할아버지(75) 부부의 사례를 소개했다. 젊은 시절 사업 실패 이후 인생의 대부분을 경제적 어려움 속에 살아온 부부는 죽음 준비 프로그램에서 작성한 유언장으로 화해했다고 한다.
박 할아버지가 “고생시켜서 정말 미안하다. 사랑한다”고 유언장을 읽자 할머니(73)가 눈물을 펑펑 쏟았다. 할머니는 “40년 넘게 함께 살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남은 생이나마 서로 사랑하면서 살겠다”고 말했다.
유 강사는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죽는 방법을 연구하는 게 아니라 죽음을 떠올리면서 지금 잘사는 방법을 깨닫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이용균·정환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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