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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조 여왕 신수지? 김연아 욕심만 닮을 수 있다면

물조아 2009. 5. 17. 20:55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리듬체조계의 김연아를 꿈꾸는 '9등신 소녀' 신수지. 먹는 욕심이 많은 열여덟 소녀는 피자 한판을 다 먹고 올림픽 공원 다섯바퀴를 돈다는데…. 다음은 중앙SUNDAY 기사 전문.


“신이 내린 재능을 가진 선수.”

 

 

국제체조연맹(FIG) 비너르 부회장은 신수지(18·세종대)의 연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9등신에 육박하는 가늘고 긴 몸으로, 신수지는 나비처럼 매트 위를 날아다녔다. 그의 예술성에 사로잡힌 비너르 부회장은 “이런 선수를 잘 키우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며 러시아의 엘레나 니효도바 코치를 소개해 줬다. “잘 커서 자주 만나자”는 덕담과 함께.


신수지는 8일부터 12일까지 프랑스 코르베유 에손에서 벌어진 FIG 월드컵시리즈에서 8위를 기록했다. 지난달 포르투갈 포르티망에서 무릎을 다친 뒤 채 한 달도 되기 전에 출전한 대회였다. 그는 “무릎에 물이 차 한국에 와 빼내고 출전했다. 다행히 큰 영향은 없었다. 리듬체조 톱 랭커가 출전한 이번 대회에서 한 자릿수 등수를 기록해 기분이 좋다. 앞으로 숫자를 하나하나 더 줄여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체조인들은 “리듬체조는 큰 키와 작은 얼굴 등 신체조건을 갖추고, 아주 어려서부터 혹독한 유연성 훈련을 통해 기본을 다져야 한다. 리듬체조 저변이 넓지 않아 꿈나무 발굴 자체가 어려운 한국에서는 국제 무대 진출이 무리라고 생각했다. 아시아에서 신수지 같은 선수가 나왔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신수지는 “내가 특별하다는 생각은 안 해 봤다. 홀로 독하게 훈련해 피겨스케이팅의 위상을 ‘국민스포츠’로 끌어올린 김연아(19·고려대) 언니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내년에 열리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반드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며 당찬 각오를 밝혔다.


신수지가 오금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체육교사는 신수지의 어머니 문광해씨에게 “수지가 평균대 위를 걸어오는데 나비가 걸어오는 줄 알았다”며 체조 입문을 권유했다. 딸에게 힘든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았던 문씨는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신수지의 마음은 달랐다. 나디아 코마네치의 체조 비디오를 보는 등 꿈을 모락모락 키워 온 신수지는 4학년 2학기가 되자 “체조를 하고 싶다”며 졸라댔다. 그는 막대기에 줄을 묶어 이리저리 돌리며 체조선수 흉내를 그럴듯하게 냈다. 딸이 2년간 쌓아 온 꿈 앞에서 문씨는 고집을 접었다.


시작은 했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제대로 된 체조경기장은커녕 훈련을 할 장소도 많지 않았다. 체육관은 너무 추웠고, 리듬체조를 할 때 발목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딱딱한 매트(약 3000만원가량)’가 깔린 훈련장은 거의 없었다.


훈련도 쉽지는 않았다. 180도 ‘다리 찢기’, 똑바로 서서 허리를 뒤로 젖혀 머리를 발목에 붙이기 등 유연성 훈련이 너무 고통스러워 매일 얼굴의 실핏줄이 다 터지도록 울었다. 신수지는 “그때는 너무 울어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하지만 결실을 봐 다행이다. 얼마 전 태릉선수촌에서 유연성 테스트를 했는데, 다리 벌리기를 하니 각도가 180도짜리 각도기를 넘었다. 측정하신 분이 ‘그냥 200도로 기록하자’고 하더라. 참 뿌듯했다”고 말했다. 최근 FIG는 기술 점수만 측정하던 리듬체조에 피겨스케이팅처럼 예술 점수를 추가했다. 신수지의 유연한 몸은 새 채점제 아래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신수지가 앞으로 더 성장하려면 넘어야 할 고비가 있다. 신수지를 지도하는 김지희 코치는 “수지가 지금 성장기라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키가 5㎝가량 자란 데다 체중도 7㎏이나 불었다. 다행히 3㎏ 정도 줄였고, 이제 2㎏ 정도 더 빼야 한다”고 말했다. 체중이 1g 불 때마다 발목에 가해지는 힘은 세 배씩 늘어난다고 한다. 체중이 몇 g만 불어도 착지 자세가 달라진다. 그래서 리듬체조 선수들은 대회가 임박하면 체중과 전쟁을 치른다. 신수지도 마찬가지다.


신수지의 별명은 ‘식신(食神)이다. 피자·스파게티·만두·떡볶이 등 ‘살찌는 음식’을 좋아한다. 그러나 움직임이 많아서인지 체중 변동이 심하지는 않다. 그는 “먹을 것 앞에서는 머릿속이 하얘진다. 나는 차라리 먹고 빼자는 주의다. 피자 한 판도 혼자 다 먹어 치우는데, 그럴 땐 집에서 약 5㎞ 거리에 있는 올림픽공원까지 뛰어가 공원을 크게 다섯 바퀴 정도 돌고 다시 집까지 뛰어온다”고 말했다.


신수지는 ‘먹고 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코치의 생각은 다르다. 그래서 전지훈련 때마다 코치와도 신경전을 벌인다. 신수지는 “음식 숨기는 데 달인이 됐다. 전지훈련 갔을 때 음식을 비닐에 싸 화장실 변기에 숨긴 적도 있다. 환풍구가 있는 천장을 주먹으로 쳐 그 위에 음식을 올려 두기도 한다. 체조할 때 쓰는 6m짜리 리본 3~4개를 묶어 1층에서 4층까지 음식을 공수하기도 했다. 비행기에서는 기내식을 담요 밑에 숨기고 먹는다”며 ‘노하우’를 공개했다. “다 공개하면 앞으로는 어떻게 음식을 숨기느냐”는 질문에 “달인은 달리 달인이 아니다. 또 개발하면 된다”고 익살을 부렸다.

 

신수지는 ‘체조 김연아’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다.

그는 “김연아 언니와 나의 차이는 ‘욕심’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욕심에 끝이 없는 김연아가 혹독한 자기 관리와 훈련을 통해 세계 정상에 섰지만, 자신은 욕심이 부족해 아직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좀 더 욕심을 내 보지 그러느냐”고 묻자 “그래서 항상 훈련이 끝나면 ‘조금만 더 욕심 부리자’고 혼잣말을 한다. 타고난 성격이 느긋한 까닭에 자꾸 되뇌는 수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성격은 둘째 문제일 수도 있다. 체조는 동구권의 텃세가 심한 종목이다. 김 코치는 “리듬체조나 피겨스케이팅처럼 ‘강대국’이 있는 종목에서는 주도권을 잡은 국가들의 텃세를 넘기 힘들다”고 말했다. 신수지도 FIG 월드컵시리즈를 마친 뒤 “상위권 선수들의 연기를 보면 그다지 특출 난 게 없는데도 나보다 점수가 높은 경우가 많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하지만 텃세를 이기는 방법도 실력뿐이다. 그것도 압도적 점수차로 이겨 내야 한다. 김연아의 무기는 ‘정확한 점프와 예술성’이다. 신수지는 “내 경우 ‘9회전 백 일루션’ 같은 나만의 무기를 가다듬고 수구(손에 드는 기구:공·리본·후프·곤봉) 숙련도도 높여야 한다. 예술 점수가 추가된 만큼 배경음악을 잘 이해하고 전체적인 연기의 완성도도 높이겠다”고 다짐했다.


신수지는 6월에 러시아로 전지 훈련을 떠난다. 그때까지 국내에서 훈련한다. 태릉선수촌 농구장에서 훈련하던 신수지는 농구대표팀이 입소하면서 훈련장을 내줘야 했지만 배구대표팀이 자리를 비워 그곳에서 훈련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방 빼라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중앙일보(4월 17일자) 보도가 나간 후 밖에서 훈련하던 리듬체조 선수들도 태릉에 들어갔다고 하더라. 어찌나 고마운지”라면서 환한 웃음을 지었다.

 

앞으로 남은 대회는 7월에 열리는 여름 유니버시아드와 9월에 일본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그는 “태릉에서 훈련도 할 수 있게 됐으니 발전한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다.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종합 17위를 했는데, 그때보다 높은 순위에 오르고 싶다”고 목표를 밝혔다. 그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10위 안에 못 들어 결승을 관중석에서 봤다. 이번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며 각오를 단단히 했다.


*** 신수지는?


● 생년월일=1991년 1월 8일

● 체격=1m68㎝·48㎏

● 학력=서울 오금초교-오금중-세종고-세종대

● 경력=2006 전국체전 고등부 금메달, 2007 세계선

수권대회 종합 17위(아시아 1위), 2008 베이징 올림픽

종합 12위, 2009 FIG 월드컵시리즈(프랑스) 8위, 2008 대

한민국 인재상

● 가족=신병욱(54)·문광해(54)씨의 2녀 중 둘째

● 취미=음악 감상, 노래 부르기

● 별명=식신·팔방위인(위가 여덟 군데로 뻗쳤다는 뜻) 온누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