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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돈 많이 벌지만, 돈 모아놓은 건 외벌이와 비슷

물조아 2009. 5. 16. 10:26

[이경은 재테크팀장의 알뜰 리포트] 조선일보 이경은 기자. 자녀양육비·회식비 '펑펑' 수입 많지만 씀씀이도 커, 부부 중 한 사람 소득은 꼭 저축한다고 생각해야


금융회사 입사 동기인 김 과장과 박 과장.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고, 비슷한 시기에 아이 아빠가 되었다. 그런데 입사한 지 8년 지난 지금, 김 과장은 박 과장이 모은 자산이 자신보다 무려 3배나 많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박 과장네는 혼자서만 돈을 버는데, 어떻게 해서 맞벌이인 우리 집보다 자산이 더 많은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김 과장은 어리둥절해했다.


맞벌이 부부 400만쌍 시대. 맞벌이는 둘이 버니까 두 배로 여유 있겠다고? 모르시는 말씀. 재테크 전문가들은 "외벌이 가정이 맞벌이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넉넉한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맞벌이 가정은 재정적으로 탄탄할 것 같지만 이는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과연 '1+1=2'? 남는 게 없는 맞벌이


맞벌이 부부는 외벌이 부부보다 두 배로 벌지만 남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은 통계 수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신용정보가 최근 20~40대 맞벌이·외벌이 부부 5012명을 상대로 소득과 총자산(부동산 포함)을 비교해 봤다.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예상대로 20~40대 맞벌이 가정은 연평균소득이 7000만~1억원인 경우가 전체의 17.1%, 1억원 이상인 경우는 전체의 6.2%로, 외벌이 가정에 비해 그 비율이 각각 두 배 가까이 높았다. 소득이 이렇게 두 배씩 차이 나니까 자산도 당연히 두 배 이상 격차가 벌어질 것이라 예상하기 쉽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자산이 5억~10억원인 맞벌이 가정은 전체의 10.3%였는데, 외벌이 가정 역시 전체의 9.5%나 되어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았다. 자산이 10억원 이상인 맞벌이와 외벌이 비중도 각각 전체의 3.3%와 3%로 엇비슷했다. 이정헌 나이스알앤씨 팀장은 "맞벌이 가정은 외벌이에 비해 월등히 높은 소득 분포를 보이지만, 지출 규모가 크기 때문에 결국 자산을 외벌이 가정만큼 모으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수입 두 배지만 지출도 두 배


맞벌이 부부들은 "아이까지 남의 손에 맡겨가면서 부부가 함께 열심히 일하는데도 이상하게 만날 돈 걱정만 한다"고 하소연한다. 도대체 맞벌이 가정의 재정난은 어디에서 출발하는 걸까?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는 "맞벌이는 외벌이 가정보다 소득이 많다 보니, 돈을 쓸 때 절박감이 떨어져 씀씀이가 커지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긴장감 없이 여유롭게 지출하다 보니, 많이 벌고도 쪼들리게 사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제 대표는 "외벌이 가장은 직장을 잃어버리게 되면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치열하게 고민하고, 최악의 위기 상황에 대비해 저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맞벌이들은 어느 한 쪽이 직장을 잃어도 다른 쪽에서 충분히 커버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느슨한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 특히 고소득 전문직 여성을 아내로 둔 남편들은 가정 경제를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외벌이 가장에 비해 덜한 편이다.


자녀와 관련된 비용 역시 고정 지출을 크게 늘리는 요소다. 가족이든 보모든 아이를 남에게 맡기면 양육 비용으로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적잖은 비용을 써야 한다. 특히 맞벌이 엄마는 아이를 남에게 맡긴다는 죄책감 때문에 아이가 사달라는 장난감 등은 다 사주고 싶다는 유혹에 시달리고, 결국 지갑을 열게 된다. 잡다한 비정기 지출(경조사, 명절선물 등)이 많은 것도 맞벌이 가정의 재정난을 부채질한다. 제 대표는 "가족 모임을 해도 '돈을 두 배로 버니까 음식값은 너희가 내라'는 식으로 맞벌이 가정은 각종 지출을 요구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맞벌이는 씀씀이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둘이 벌어서 네 배로 만들려면


지출이 계속 늘어나더라도 맞벌이 상태가 계속 유지되어 소득도 덩달아 늘어나 준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어느 한 쪽이 실직해서 소득 변동이 생겼을 때 터진다. 맞벌이 시절의 소득을 근거로, 은행 빚도 많이 끌어다 쓰고, 아이 학원도 보내고, 카드도 긁어 왔기 때문에, 갑자기 소득이 절반으로 줄어들어도 지금까지의 고정적인 소비를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던 씀씀이를 유지하기 위해 은행 빚을 끌어다 쓰는 악수(惡手)까지 두게 된다. 이는 가계 재무 상태의 악순환을 초래해, 결국 개인 파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강우신 기업은행 PB팀장은 "소비는 하방 경직성을 갖기 때문에 한 번 크게 늘어난 걸 줄이기는 매우 어렵다"면서 "맞벌이 가정 역시 실업 등 위기 상황에 취약한 만큼, 맞벌이일 때 미리 미래의 위험을 따져보고 차근차근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은정 신한은행 PB팀장도 "맞벌이 가정의 경우, 부부 중 한 사람의 소득은 무조건 저축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며 "부부가 각자 월급을 따로 관리하면서 비자금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 역시 가계 재무 상황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