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일러

  1. 프로파일러

‘프로파일(profile)’은 원래 사람의 옆모습을 지칭하는 단어다. 흔히 얼굴 정면 모습이 그 사람의 특성을 잘 나타내준다고 생각하지만 해부학에서는 옆모습이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고 믿는다. 프로파일이 사람의 특성을 뜻하는 용어로 쓰이게 된 이유다. 프로파일에서 파생된 ‘프로파일러(Profiler)’는 범행 수법과 흔적을 심리학과 행동과학을 근거로 분석해 범인의 특성과 범행 동기를 유추하는 전문가를 말한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선 ‘범죄수사분석관’으로 부르지만 영화 ‘양들의 침묵’과 TV 범죄 드라마 때문에 그냥 프로파일러로 통한다.

▷과거에는 용의자를 잡아놓고 고문하거나 잠을 안 재우는 방식으로 수사를 했다. 그러나 인권의식의 발달과 함께 증거 위주 재판과 수사과정의 적법성이 강조되면서 고문 수사는 설 땅을 잃었다. 요즘엔 현장을 누비는 수사관 외에 유전공학, 법의학, 심리학, 범죄학, 첨단 컴퓨터 기술 등 온갖 분야의 전문가들이 동원된다. 그럼에도 고도로 지능적인 범죄나, 사회통념과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무동기(無動機) 또는 이상동기 범죄는 과학수사 기법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안양 어린이 유괴 살해범 정모(39) 씨의 범행 동기와 여죄를 밝히는 데 프로파일러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알리바이가 거짓으로 드러나고 렌터카 트렁크에서 실종된 어린이들의 혈흔이 발견된 뒤에도 정 씨는 진술을 번복하고 오락가락했다. 프로파일러들은 정 씨가 성적(性的)인 범행 동기를 숨기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들은 정 씨가 부모의 이혼 후 혼자서 외롭게 살아온 과정을 털어놓도록 유도해 마음의 문을 열게 했고 결국 자백을 받아냈다. 과학수사의 개가였다.

▷경찰이 정 씨의 범죄를 밝혀낸 것은 다행이지만 초기에 현장 주변 탐문 같은 기초적인 수사에 실패함으로써 범인 검거가 늦어진 점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정 씨의 2년 전 성추행 범죄 피해자 신고를 소홀하게 수사했고 정 씨의 알리바이에 대한 초기 수사도 형식적이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과학수사 기법이 아무리 발달해도 현장 중심의 수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동아일보 권순택 논설위원

2. 범죄심리학자가 말하는 ‘무동기 범죄’

어린 시절 쌓인 분노·좌절 극복 못해… 사회 탓으로 돌려 분풀이,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범죄심리. 강화도 모녀 살인사건, 양구의 여고생 살인사건, 동해시 여공무원 피살사건… 올들어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범죄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범인들은 하나같이 사회를 원망하거나 사회로부터 소외당했다고 주장할 뿐, 피해자와 특정 원한관계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도 양구 여고생 살인사건과 동해시 여공무원 살인사건은 대낮에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아무 관계없는 사람에게 흉기를 휘두른 점에서 강화도 사건과 사뭇 다르다.

이러한 범죄는 최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무동기 범죄’ 또는 ‘묻지마 범죄’로 불릴 만하다. 범죄학에서는 ‘무동기 범죄’ 또는 ‘묻지마 범죄’를 증오범죄(hate crime)의 하나로 분류한다. 아무 인과관계나 동기 없이 막연한 적개심을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표출하는 범죄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 범죄보다 불안 심리와 두려움을 더욱 가중시킨다. 이런 ‘무동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공통적 특징은 결손가정과 같은 불우한 아동기나 청소년기를 보내거나, 아동학대를 당한 경우가 많고, 학교나 사회로부터 좌절을 겪는 과정에서 정상적 사회생활에 대한 애착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들은 빈부격차로 인한 좌절, 학교와 사회의 치열한 경쟁구조로부터의 좌절, 상대적 박탈감으로부터 오는 좌절 등 다양하게 경험하는 좌절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범죄를 선택하게 된다. 여기에 사회적으로 만연한 이기주의와 공권력의 무력화도 ‘무동기 범죄’를 유발 또는 용이하게 하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이러한 좌절을 극복하지 못한 경우, 그 분노의 표출을 스스로에게 돌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책임을 사회로 돌리고 그것을 잔혹한 범죄로 표출하는 사례가 많다. 조선일보 조성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