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의 강가에서 ⑪ 저놈 사람도 아니여! 한겨레
학교 운동장 가에 있는 아름드리 벚나무 숲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던 딱새, 딱따구리, 물새, 박새들이 새끼들을 길러 떠났습니다. 아침에 참새가 몇 마리 방정맞게 까불거리며 울기는 하지만 하루 종일 잠잠한 편입니다. 작은 새들이 떼를 지어 아침부터 지지고 볶으며 자글거리기 시작해서 해가 질 때까지 어찌나 오두방정을 다 떨며 지랄들을 떨어대던지 어쩔 때는 정말 신경질이 나서 “조용히들 좀 안 해!” 하고 고함을 꽥 질러 새소리들을 잠재우기도 했지요. 자기들도 그렇게 울 일이 있겠지만 나로서는 짜증날 때가 더러 있어서 고함을 지르면 뚝 그쳤다가 참새가 먼저 슬그머니 울기 시작하면 다른 새들도 덩달아 울기 시작합니다. 참새들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살기 때문에 눈치코치가 어찌나 빠르던지 하는 짓을 보면 ‘아휴, 저걸 그냥’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너무 조용해서 새들이 은근히 그립기도 합니다. 내가 앉아 있는 방 앞 탱자나무에 달린 탱자는 2학년 아이들 부랄만하게 커졌습니다. 탱자는 사실 꼭 그것같이 쭈글쭈글하게 생겨서, 무슨 일에 앞뒤 모르고 덤벼드는 사람을 보고 ‘뭣도 모른 것이 그것 보고 탱자라고 간짓대(장대) 갖고 덤벼든다’고 나무라기도 합니다.
아침부터 날씨가 푹푹 찝니다. 이른 더위가 찾아와 어찌나 덥던지 학교 밑 마을 할머니들이 이른 아침부터 학교 운동장 앞 벚나무 아래를 찾아와 앉아 놉니다. 벚나무 밑이 동쪽과 남북으로 멀리 툭 터진 곳이어서 바람결이 한결 시원하지요. 할머니 두 분은 일찍부터 학교를 찾아오시는데, 한 분은 내 동창 어머니고 한 분은 내 선배 어머니입니다. 내 동창 어머니는 허리가 기역자로 굽으셨습니다. 기역자로 굽은 허리를 받치는 지팡이를 짚고 땅이 꺼질세라 어찌나 가만가만 조심조심 천천히 걸으시던지 내가 동창을 만나면 “야, 어머니가 집에서 학교로 오시면 한나절은 걸려서 아침밥 드시고 학교에 오자마자 바로 점심 때가 되어 도로 집으로 가신다”고 하며 웃곤 합니다.
나무아래 그림처럼 앉은 두 노인네, 사는게 금방인데 왜들 그리 험하냐
두 할머니는 참으로 신기하게도 아주 긴 시간을 말없이 보냅니다. 사람들이 말을 안 하고 가만히 마주 앉아 있으면 서로 눈치를 보다가 어색해져서 무엇인가를 만지작거리며 무슨 말인가를 자꾸 하려고 멈칫거리기도 하는데, 이 두 할머니는 그냥 아주 자연스럽게 각자의 방향을 바라보며 긴 침묵 속에 빠져 있습니다. 한 분이 강 건넛마을을 바라보고 계시면 한 분은 학교 뒷산을 바라보고 앉아 있지요. 목적을 가지고 무엇을 바라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눈길이 그곳으로 갔으니 그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따금 바람이 불거나 또는 매미가 울면 그냥 무심히 “바람이 부는고마인-” 아니면 “매미가 우네” 하고는 또 각자 생각에 빠져 한가하고 잠잠합니다. 나는 이따금 나뭇잎에 바람 지나가는 것 같은 할머니들의 말을 들으며 정신이 퍼뜩 들기도 하지요. 80평생을 살아오신 삶의 무게가 담기고 얹힌 무심한 말들의 무게는 내게 그냥 지나가는 말로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마디 말 속에서 세계를 읽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게 시인이 아니던가요. 얼치기 시인인 내가 세계를 새로 해석하든 말든 할머니들은 아무렇지 않은 말 한마디를 지나가는 바람결에 실어 보내 놓고는 또 긴 침묵 속으로 들어갑니다. 말이 필요 없는 저 적막이 나를 압도하기도 하고 편안하게 하기도 합니다.
나는 그렇게 그림처럼 앉아 있는 두 할머니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때가 많지요. 글을 쓰면 뭐 하고 책을 읽으면 뭐 하나.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생은 바람 같은 것인데, 사는 것이 금방인데, 사는 일이 덧없고 허망한 일이 아닌가. 인생은 저 벚나무 한 잎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깜박 정신을 놓을 때도 있습니다. 아등바등할 일이 아니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여든이 다 된 분들이 무슨 말을 할 필요가 있겠으며 힘주어 무슨 주장을 또 어디다가 하겠습니까. 무심하고 또 무심하게 앉아 있는 두 노인의 그 목석 같은 모습이 나는 좋습니다. 인생이 몇백 년을 사는 것도 아니지요. 사람들이 일생 동안 하는 짓들이 쓰고 남을 일보다 소용없는 헛짓이 더 많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물밑같이 가라앉은 마음으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들여다보입니다. 생각들이 다르다고 한 나라 안에 살면서 저렇게 서로 원수를 대하듯 험한 얼굴로 살 일이 아니지요. 적군을 대하는 것처럼 서로 앙갚음질을 하는 정치, 경제, 문화, 종교, 교육의 일도양단된 ‘판’이 참으로 무섭고 슬픕니다. 독 오른 독사 새끼들처럼 고개를 번듯 쳐들고 살벌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무섭습니다. 의견이 서로 다를지라도 사람들이 조금, 제발 저 말 없는 할머니들 모습들처럼 ‘온화’하고 평화롭고 너그러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불가피하게 국민들을 혼낼 일이 있으면 나랏일 하는 아랫사람들을 이웃도 모르게 질타하시고 당신들은 이따금 시골 논길을 지나시다가 차를 세워 논일하는 농부들과 농도 하시고, 구두와 양말을 벗고 논에 들어가 지심(풀)도 뽑아보고 정자나무 밑에서 수박이라도 같이 먹으며 파안대소하시는 그런 정답고 다정한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나라님들이 하시는 일에 감동 없이 사는 백성들이 정말 너무 불쌍합니다.
오늘도 그 두 분이 아침 일찍 오셨습니다. 더워도 너무 덥습니다. 더위를 부추기며 매미가 웁니다. ‘일추개 일추개’ 하며 우는 매미가 있지요. 할머니 한 분이 그 일추개 매미소리를 귀로 잡은 모양입니다. “저 매미는 일을 빨리 추리라고 ‘일추개 일추개’ 하며 운다만” 하니, 그 말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잊어버릴 만한 시간이 지난 후 다른 할머니가 “날이 뜨거우니 해 뜨기 전에 논매라고 매암애맘 하며 우는 매미도 있어” 하십니다. 그러고는 한참 후에 다른 한 분이 “해 넘어가니 얼른 들에서 나오라고 뜰람 뜰람 하고 우는 매미도 있어” 하십니다. 그러자 아까 일추개 매미 이야기를 했던 분이 “이울 양반 뿡알, 이울 양반 뿡알 하고 우는 매미도 있어” 하며 가만히 매미 우는 나뭇가지를 올려다봅니다.
평생을 자연으로 살아온 저분들께, 지도자들은 도대체 뭔짓을 하는지
‘뿡알’이라는 말을 듣고 하도 궁금해서 밖으로 나가 나도 그 할머니들과 합석을 했지요. 그리고 ‘이울 양반 뿡알’ 하고 우는 매미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옛날에 이웃면 이울리에 이울 양반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마을 회의를 하면 어찌나 혼자 차치고 포치며 자기 이야기만 막무가내로 해대던지 도저히 회의가 되지 않았답니다. 그 양반이 싸우듯이 목청을 높여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 누구도 말리지 못해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며 “이울 양반 때문에 오늘 공사(회의)는 글렀네” 했대요. 그 이울 양반이 하도 미워 ‘이울 양반 뿡알 이울 양반 뿡알’ 하며 매미가 운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내 방에 들어와 이 글을 쓰다가 밖을 보니, 어쩐 일인지 두 할머니가 학교에서 만들어 놓은 시멘트 탁자에 턱을 고이고 아주 멋지게 현대적인(?) 여인들의 폼을 잡고 마주앉아 계십니다. 그래도 두 분이 바라보는 방향은 전혀 다른 방향입니다. 잘 그린 그림처럼 조용하고 담백하고 담담하고 깨끗한 침묵입니다. 침묵이라기보다는 나무와 나무가 서로 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두 분은 평생 저런 자연이었지요. 매미가 울고, 바람이 불고,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지만 그 모든 소리들이 그 할머니들의 침묵을 간섭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세상에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두 분의 저 평화로운 표정과 모습을 보며 신선이 있다면 아마 저런 모습이겠거니 합니다. 공부를 많이 하고 아는 것이 많아야 세상의 이치와 순리를 터득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지요. 다 나름대로 산 세월이 저분들을 저렇게 큰 나무 같은 자세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갖은 풍상을 다 겪으며 삶의 잔가지를 치고 또 온갖 세상살이의 풍파 속에서 아픈 옹이를 다듬고 상처를 끌어안으며 저런 무심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말도 마라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로 시작되는 저분들의 일제 식민지와 배고픔과 6·25 전쟁 속에서 살아온 일상을 우리가 어찌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아무 힘없는 사람들이 겪어왔을 역사적인 격동과 격변기의 그 모진 세월을 누가 다 말로 하고 글로 쓰겠습니까. 어떤 역사도 이념도 어떤 주의도 저분들의 편이 되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분들은 그냥 다 견디고 살아왔지요. 그래도 그 지긋지긋한 세상 세월 속에서도 저분들이 늘 입에 담고 사는 말은 “저놈은 징헌 놈이여, 그놈 사람도 아니여”입니다. 사람을 제일 중요시했던 것이지요.
우리가 사는 세계는 지금 낡은 것들을 벗어던지며 저만큼 성큼성큼 앞서 가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냉전적 사고방식으로 나라의 틀을 고수하며 우왕좌왕 허둥대는 모습들이 참으로 누추하고 불쌍해 보입니다. 이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은 도대체 지금 저 할머니들 앞에서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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