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죽음' 실천하는 웰다잉 관심 커져, 관에 들어가기 등 체험 프로그램·강좌 인기, 자기 성찰 기회… "되레 죽음에 집착" 우려도
꽃으로 덮인 제단 앞에 수의를 입은 김민구(39·개인사업)씨가 섰다. 자신의 몸에 꼭 맞는 관(棺)을 앞에 두고 떨리는 목소리로 유서(遺書)를 읽기 시작한 김씨 옆에는 저승사자와 천사 복장을 한 사람들이 서 있다."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 나라면, 내게 제일 중요한 사람은 내 가족입니다. 그 동안 당신들과 안 좋았던 일들도 모두 용서하고 가렵니다.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부디 너그럽게 용서해 주세요. 사랑하는 나의 아내, 당신은 다른 남자와 재혼하길 바랍니다. 여생이 외롭지 않고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씨가 30여명의 '조문객' 앞에서 유서 읽기를 마치고 관에 들어가자 저승사자와 천사는 흰 국화꽃을 놓아주고 관 뚜껑을 덮었다. 김씨는 5분 동안 관 속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명상을 하다 나왔다.
지난 5일 전문 임종체험센터인 코리아라이프컨설팅센터(KLC)의 전남 나주 체험관에서 진행된 임종체험의 한 장면이다. 2004년 설립된 KLC는 유서쓰고 발표하기, 관에 들어가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놓고 있다. 김민구씨는 "임종체험에 다녀온 후 나를 돌아보고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 응어리진 것이 많이 풀어졌다"며 "잘 죽자고 관에 들어갔다 오니 오히려 잘 살게 됐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죽음, 준비된 죽음'을 실천하는 '웰다잉(well-dying)'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웰빙의 최종 목표가 결국은 '잘 죽는다'는 데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KLC처럼 기업형으로 운영되는 곳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복지관·종교단체 등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웰다잉' 강의를 속속 개설하고 있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과 기독교계인 각당사회복지재단 등에서는 '웰다잉 전문강사 교육과정'까지 개설했다. 영국의 경제신문인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도 지난 22일 우리나라의 임종체험을 소개하며 한국의 웰다잉 열풍에 대해 보도했다.
◆웰다잉=잘 사는 것의 완성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의 완성'이라는 웰다잉은 '웰빙(well-being)'의 진화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죽음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해하고 준비된 죽음을 맞이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아름다운 재단에서 '아름다운 죽음교육'을 수강한 노기화(여·50)씨는 "남편과 사별한 뒤 떠밀리듯 살아온 삶을 정리하고 다시 살 의지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노씨는 수강생들과 각자의 '죽음에 대한 경험'을 나누면서 비로소 남편을 따라 죽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교육을 받고 난 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봉사활동에도 더 열심히 참여하게 됐고, 사후(死後) '1% (재산) 나눔 운동'에도 동참하기로 약속했다.
'자살 시도'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사람이 돌아서는 경우도 있다. 장모(여·43·서울 방배동)씨는 1997년 가정에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자 두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다 2007년 웰다잉 강의에 참여해 수많은 '자살 시도 동지'들을 만났다고 한다. 장씨는 "나 혼자만의 외로움과 고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털어놓으니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자살시도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잘 죽자, '웰다잉' 열풍
웰다잉 프로그램이 노년층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한림대 오진탁 교수는 매년 학부과정에 자살예방교육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서울 오산고교에서는 김용관 교목이 2년 전부터 '죽음 이해하기', '묘비명·유언장 쓰기', '죽음 체험하기' 등 4시간으로 구성된 '죽음준비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막상 죽는다고 생각하니 삶에 대한 애착이 생겼다"는 반응을 많이 보인다고 한다.
KLC에 따르면 삼성전자·삼성중공업·교보생명·현대자동차 등의 기업들이 정기적으로 직원들을 임종체험 프로그램에 참여시켜 '자기성찰을 통한 역량 향상'의 기회로 삼게 한다고 한다.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웰다잉 교육은 죽음에 대한 비현실적인 공포감이나 환상을 줄여주고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게 해 우울증 개선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대 심리학과의 곽금주 교수는 "수명이 연장되며 죽음에 대한 관심과 준비는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나라는 이 새로운 조류에 과잉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입관체험과 같은 죽음에 대한 의식적인 행사는 오히려 죽음에 대한 집착을 불러일으키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김경화 기자 조예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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