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스] 세계 3대 장수 마을 탐방 에콰도르 빌카밤바· 중국 바마· 프랑스 엘리스 … 절제와 소박함이 비결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늙게 마련이지만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것은 모든 사람의 욕망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비결은 무엇일까. 이원종 강릉대 교수가 해법을 찾기 위해 세계의 장수 마을을 다녀왔다. 우리가 이들이 사는 곳으로 이사 갈 수는 없지만 건강한 삶의 방법을 배울 수는 있을 것이다.
18년 전 나는 아내와 함께 당시 초등학교 5학년과 유치원에 다니던 두 딸을 데리고 농촌 마을에 터를 잡았다. 1000㎡의 텃밭에서 나오는 푸성귀가 우리 가족의 식탁을 채워주었다.
빨간 함석 지붕, 창호지 문으로 된 낡은 농가주택에 살면서 토종닭을 키우고 텃밭에 채소를 가꿔 왔다. 그러면서 ‘오염되지 않은 채 거칠게 자란 음식으로 우리의 식탁을 채우고 소박한 삶을 유지하자.
그러한 삶이란 현대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장수 마을의 노인들이다’라는 주장을 해왔다.
하지만 세계적인 장수 마을을 직접 가 보지도 않고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 학자로서 항상 마음에 걸렸다.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 마을을 찾아가 100세 이상 노인들의 식생활을 직접 돌아보고, 많은 사람에게 ‘생명 연장의 건강한 밥상’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겨울, 시간을 내 아내와 함께 세계적인 장수 마을을 돌아보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에콰도르 빌카밤바 마을, 텃밭 가꾸며 사는 106세 할아버지.
첫 번째 찾아간 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 마을인 남미의 빌카밤바. 빌카밤바는 남미 대륙의 북서쪽 에콰도르에 있다. 빌카는 인디언 말로 ‘신성한’이라는 뜻이며, 밤바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마을은 해발 1500m 고지에 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 가운데 있다.
마을에 들어서니 한낮인데도 너무 조용하다. 한 손에는 보따리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노인들이 한두 명 눈에 띌 뿐이다. 마을 이름처럼 전체가 성스러운 기운이 흘러나오는 느낌이 든다. 시계가 느리게 가거나 멈춰버렸다고나 할까?
만나는 사람마다 느긋해 보이고,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모두가 한 템포 느려 보인다. 우리는 마을 최고령자인 106세의 아고스틴 할아버지 집을 찾았다. 할아버지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집 안에 있는 텃밭 사이를 직접 걸어 나와 문을 열어 주었다.
할아버지의 부인은 이미 세상을 떠나 가족 없이 혼자 살고 있다. 외로워 보이는 할아버지 곁을 새끼 고양이가 지키고 있다. 할아버지는 특별한 수입 없이 텃밭에서 나오는 신선한 채소로 직접 요리를 해 먹는다. 마당에는 레몬, 오렌지, 아보카도 등 과일 나무가 있어 수시로 신선한 과일을 따 먹는다.
할아버지는 건강하고 활동적이며 친절하고 다정다감하다. 106세라고 하기에는 너무 건강하다. 얼굴에는 검버섯도 없다. 혼자 사는 노인들은 우울증에 시달리기 쉽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부인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가난하게 혼자 산다고 우울해 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건강의 비결을 묻자, 그는 텃밭을 일구며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한다.
중국 바마 마을, 욕심 버리고 관조하며 산다.
두 번째 찾아 간 곳은 중국의 바마 마을. 세계 5대 장수 마을 중 하나로 중국 남부의 난닝이라는 도시에서 300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인구 24만 명 중 100세 이상 노인이 86명이나 된다.
그중 최고령자는 110세 황부신 할아버지. 3층 정도의 계단을 올라가고서야 그의 집에 도달했다. 자그마한 키에 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의자에 앉아 있다가 활짝 웃으며 우리 일행을 맞아준다.
집은 낡았지만 풍경이 절경이다.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나지막한 산이 바로 앞에 놓여있다. 그다지 높지도 울창하지도 않은 산. 산에서 불어오는 맑은 공기, 남쪽을 향하고 있어 따스한 기후.
장수하려면 매일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절경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앞을 바라보고 있으니, 잠시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망각한 상태에서 모든 욕심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110세임에도 아주 정정한 모습이다. 우리가 인사하고 말을 걸자 귀를 가리키면서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는 몸짓을 한다. 할아버지는 2000년에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마을에서 100세 이상 노인을 모아 잔치를 벌이며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에는 황 할아버지를 포함한 100세 이상 노인 7명이 있다. 각 사람 앞에는 음식이 놓여 있다. 황 할아버지는 사진 속의 노인들을 가리키며 “이젠 이 사람들도 다 죽고 나만 남았어”라고 한다.
“친구들마저 모두 세상을 떠났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그리 슬퍼 보이지 않는다. “친구들이 모두 떠났다”고 한탄하기보다는 “그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즐거웠다”고 회상하는 듯하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가 매일 3층 정도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온 동네를 돌아다니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누워 있으면 일찍 죽는다”고 덧붙인다. 시종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우리를 처음 볼 때에도 그랬지만 아주 밝은 표정으로 유쾌하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봐서 근심 같은 것은 저 멀리 두고 살아온 것 같다.
아내와 다섯 명의 자녀는 모두 저세상으로 갔고 젊은 시절 다리를 다쳐 불구가 된 아들을 돌보며 살아가면서 스트레스도 받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근심과 걱정을 다 떨쳐버리고 아들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세 끼 밥을 해 주면서 인생을 관조하는 것 같다. 인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
황 할아버지가 나에게 준 커다란 선물이다. 황부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어렵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에게 삶의 버팀목이 되었으면 한다.
프랑스 엘리스 마을, 닷새에 와인 한 병, 하루 커피 한 잔.
2006년 프랑스 여성들의 평균 수명은 84세로 일본 여성의 85.6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지금까지 공인된 세계 최장수 인물은 장 칼망이라는 프랑스 여성으로 122세까지 살았다.
프렌치패러독스. 프랑스 사람들이 육류 등 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하는 데도 포도주를 많이 마셔 심장질환에 걸리는 사람이 적은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 부부는 프랑스 남부지역에서 육류 위주의 식사를 하고 있는데도 100세 넘은 부부가 있다고 하여 그 비결을 알아보고자 노부부를 찾아 나섰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프랑스의 남부 휴양도시 몽펠리에에서 70여km 떨어진 엘리스라는 작은 마을이다. 겨울임에도 날씨가 화창하고 나무에는 꽃이 피어 있다.
노부부가 살고 있는 곳은 양지바른 언덕 위에 있는 양로원이다. 양로원이라기보다는 의사가 있고 식사를 제공하는 고급 아파트나 호텔이라고 부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다른 나라 장수 마을에는 노인들이 혼자서 살든가 아니면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데 이곳은 조금 다르다.
노부부는 5년 전까지 20여 가구의 조그마한 시골 마을 주택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했다. 방에는 침대가 두 개 가지런히 잘 정돈되어 있고, 목욕탕도 시설이 아주 좋다. 침대 옆에는 두 자녀의 어렸을 때 사진이 놓여 있다. 식사는 양로원에서 제공하며, 그들의 방에서 둘이 식사를 한다.
부부가 모두 100세로 할머니가 생일이 조금 빠르다. 할아버지의 형님은 102세로 파리에 살고 있고, 여동생은 99세로 프랑스 남부지방에 살고 있는 장수 가족이다. 아들과 딸이 시내에서 따로 살고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요즘에도 할머니와 함께 시내에 나가 수퍼마켓에서 과일을 사 오기도 하고, 산책을 하고, 아침이면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가 신문을 가져온다.
할아버지는 인터뷰 내내 큰 목소리로 쉬지 않고 혼자서 이야기한다. 물론 귀도 잘 들리고 치아도 틀니가 아니다. 할머니 역시 아직도 미니스커트를 입고 단정한 모습을 유지하고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할머니를 보는 순간 ‘90세만 넘으면 대부분의 노인의 건강이 안 좋다’고 생각해 왔던 기존의 내 생각이 확 바뀌어 버렸다.
할아버지는 감자와 치즈를 혼합해 만든 음식, 그리고 흰콩을 자주 먹는다. 아침에는 빵과 버터로 식사하고 커피를 즐긴다. 내가 궁금했던 점은 “과연 그가 고기를 좋아하는데도 100세까지 살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내가 궁금해 하자 그는 “젊었을 때 매일 고기를 먹었으며, 금요일에만 종교적인 이유로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그는 고기뿐 아니라 생선도 좋아한다. 그는 가톨릭 신자로 지금도 매주 일요일이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다.
“건강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대답 대신 “와인 한 잔 마시자”며 냉장고에서 와인 한 병을 꺼낸다. 그가 꺼낸 포도주의 이름은 파인루비 적포도주로 알코올 19%짜리다. 와인치고는 독한 편이다. 그가 따라 준 독한 와인 한 잔으로 나는 금방 취해버렸다. 우리는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는 다른 100세 노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동안 내가 만나 본 100세 이상의 노인 중 말을 잘 하지 못하거나 귀가 먹어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할아버지 부부는 다르다.
그는 양로원에서 보낸 한 달 청구서를 보여준다. 한 달 생활비로 두 사람에게 청구된 돈은 450만원이다. 프랑스에서도 적지 않은 돈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돈이 있어야 여유롭게 살 수 있다는 점을 배우는 날이었다. 그의 1개월 청구서에는 커피 64잔, 와인 6병의 값이 청구되어 있다.
적포도주가 몸에 좋다고 해서 매일 적포도주를 취하도록 많이 마시는 것은 아니다. 5일에 한 병 정도를 마시는 셈이다. 커피 역시 한 달에 두 사람이 64잔. 한 사람이 하루 한 잔꼴로 마신 셈이다.
가끔 아들과 함께 파리의 유명한 레스토랑에 가 식사를 한다면서 유명한 식당 두 군데를 전화번호와 함께 소개해 준다.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는 테니스, 축구 등 운동을 좋아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유방암 수술을 받았으나 지금 100세가 되도록 건강하게 살고 있다. 기억력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취미생활로 하고 있는 글자 맞추기 때문이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잠시 동안의 대화로 우리 부부와 친해졌고 헤어질 때는 나의 아내 얼굴에 뽀뽀를 하며 행복해 한다. 할아버지의 가족 모두가 장수하는 것으로 봐선 건강 비결이 유전적인 요인도 있지만 절제하는 노력 덕분으로 보인다.
고기를 좋아하지만 와인을 적당하게 마시며, 쉬지 않고 운동한다는 점, 기억력을 유지하기 위한 글자 맞추기를 하는 등 쉬지 않는 노력이 돋보인다. 할아버지의 생활습관은 우리나라 도시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원종 강릉대 식품과학과 교수: 서울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다코타주립대에서 식품공학 박사를 취득한 뒤 현재 강릉대 식품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강릉 교외의 농가주택에서 지난 18년 동안 1000㎡의 텃밭을 가꾸고 있다. 『위기의 식탁을 구하는 거친 음식』『가난한 밥상』 등의 책을 펴냈다.
장수 마을에서 배우는 지혜
음식 거칠면 건강이 부드럽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척박한 땅에서 살다 보니 아껴 먹을 수밖에 없고 몸을 움직여 일을 해야만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다.
자신들이 재배한 곡물과 채소, 깊은 바다에서 자연적으로 자란 자연 식품을 먹고 있다. 도정하지 않은 곡물, 과일과 채소 등 거친 음식을 많이 먹다 보니 식이섬유와 생리활성물질을 많이 섭취하고 있다.
그들의 삶을 살펴보면 배울 것이 많다. 그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나오는 음식을 먹고 있으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령임에도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다.
적포도주가 몸에 좋다고 과음하지 않는다. 채식이 좋다고 야채와 과일만 먹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고기도 먹는다. 그러나 절대로 지나치게 먹지 않는다.
장수 마을을 탐방하고 느낀 점은 우리도 그들의 지혜를 배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제철에 나오는 음식을 먹고 오염되지 않은 음식을 먹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공식품을 피하고 소식하며 많이 움직여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 마을처럼 좋지는 않지만 열심히 노력한다면 그들처럼 건강하게 100세까지 살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 9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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