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스] 안철수씨와 닮은꼴 부인 김미경 KAIST 교수
▲안철수·김미경씨 부부는 의사에서 출발해 교수에 이른 경력뿐 아니라 웃음도 닮았다. 이들은 “신록다운 신록을 오랜만에 느껴 본다”며 환하게 웃었다. 대전=최정동 기자
지난주 KAIST 부교수로 일을 시작한 김미경(45)씨는 9월부터 담당할 ‘지적재산권’ ‘생명윤리’ 과목 커리큘럼을 짜느라 분주하다. 기자가 KAIST의 연구실을 찾은 20일, 김씨는 대전에서 살 집을 알아보면서 마치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대 의대 졸업 이후 처음으로 남편 안철수(46)씨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게 됐기 때문이다. 남편 안씨는 KAIST 석좌교수로 2027년까지 ‘창업가 정신’ ‘기술경영’ 과목을 가르칠 예정이다. 김씨는 그동안 언론 접촉을 하지 않다가 처음으로 중앙SUNDAY와 인터뷰했다.
그는 참 특이한 내조자다. 남편이 의사→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교수로 도전을 거듭하는 동안 김씨는 흔히 ‘내조’라고 부를 만한 것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내조는 도맡아했다. 1997년 안씨가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한 이후 직원 월급을 줄 수 없을 정도로 자금난에 쪼들릴 때 자신의 봉급을 슬며시 건넸다. 당시 김씨는 성균관대(삼성서울병원) 병리학 부교수였다.
안씨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 MBA를 하러 떠난 95년에도,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97년에도, CEO 자리를 그만두고 또다시 유학길에 올라 돈이 궁할 때도 전셋집에 살면서 불평 한마디하지 않았다.
“평소 노벨 의학상을 꿈꾸던 남편이 딴 길로 갈 줄은 몰랐지만 일단 믿었죠.” 김씨는 남편을 이해하고 배려했으나 ‘동행’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2년 법적·사회적 안목을 갖추고 싶다며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대 법대에 입학했다. 중학생 딸을 데리고 가면서, 남편은 3년간 기러기아빠로 한국에 방치(?)했다. 방학 때도 귀국하지 않고, 연방법원에서 서기 생활을 하며 사법체계를 익혔다. 2005년에는 스탠퍼드대 법대에서 생명과학 연구 과정을 수료했다.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주의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2006년 스탠퍼드대 의대에서 조교수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
김씨는 2002년 미국으로 떠날 때만 해도 법적 지식으로 무장한 의사가 돼 귀국할 것으로 스스로 예상했다. 그러나 스탠퍼드 의대 연구실에서 근무하던 지난해 말 병리학 교수에 대한 미련을 놓아 버렸다. 꼭 의사 가운을 입어야 의사 노릇을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그가 변화무쌍하게 자신의 모습을 바꿀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남편도 저도 근본적으로는 의사란 직업을 사랑해요. 누군가를 보살핌으로써 마음이 따뜻해지는 행복한 의사 말이에요.” 자신의 전문 영역을 중심 축으로 하고, 다른 분야의 지식을 소유한 도요타의 T자형 인재에서 한발 더 나아가 팀워크까지 갖춘 ‘A자형 의사’가 돼 사람들을 보듬는 것이 목표다.
“젊은이는 다양한 경험 필요”
어떤 계기로 KAIST에 왔을까.
“이광형 교무처장실에 TV가 거꾸로 놓여 있는 거 보셨어요? 그걸 보고 반했어요. 서남표 총장과 면담하면서 시각이 넓고 자율적인 학풍을 느꼈죠. 아무도 안 해 본 것을 시도하기에 좋은 학교라는 생각이 들어 흥분이 되더라고요. 제 공부가 공대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과학 실험에서의 윤리의식은 앞으로 점점 중요해질 거예요.”
그는 공학과 의학·법학이 뒤섞인 학문 분야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이 꿈이다. 많은 돈을 들여 치료하는 게 과연 효율적인지, 그런 치료를 선택하도록 권유하는 게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등을 연구하는 것이다.
김씨는 의사·판사·공무원 등 획일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20대 학생들에게 다양한 사고와 경험을 하도록 돕는 것도 ‘의료 행위’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치료란 사고의 범위를 확장하도록 ‘치료’하는 것이다. “안정성은 죽음 이후에만 찾아와요. 살아 있는 동안은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게 생명이죠. 미국에서 열정적인 교수의 역할(롤)모델을 많이 발견했지요. 그 교수들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20대는 실수를 해도 허용되고, 이 실수는 성공의 거름이 될 수 있잖아요. 안정성만 추구하는 학생들이 따라할 만한 롤모델을 되도록 많이 만들어 주고 꿈을 이룰 때까지 애프터서비스를 해 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여기서 올해 미국의 아이비리그에 입학한 외동딸(19)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이야기가 자녀교육에 미쳤다. “솔선수범이 가장 좋은 교육 방법이에요. 좋은 부모가 되려면 우선 좋은 사람이 돼야죠. (김씨는 딸아이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성명과 학교를 밝히지 않았다).”
김씨가 국내 유명 사립대학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KAIST에 안착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이 많다.
“한국 사회에서 구호로만 융합이다 어쩐다 하는데, 두 분야를 전공한 사람이 설 자리는 없어요. 고용하는 입장에서는 의학과 경영학, 또는 의학과 법학을 함께 공부한 사람을 별로 대우해 주지 않아요. 모두 50%씩밖에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시너지 효과는 감안하지 않는 것이지요.”
진료 봉사하며 사랑 키워
김씨는 서울대 의대 본과 2학년 때 1년 선배인 안씨를 처음 만났다. 가톨릭교우회 동아리 회원으로 토요일마다 서울 구로동으로, 경북 산골의 무의촌으로 봉사 진료를 다녔다.
“여자 화장실에서 선배들이 ‘우리 랩에서 같이 일하는 안철수씨는 천재’라고 쑥덕대는 걸 자주 들었어요. 소문 속의 그 남자가 어느 날 도서관에서 제 자리를 맡아 놓고 기다려서 깜짝 놀랐어요. 매일 아침 자리도 맡고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까지 뽑아 주며 애정을 표현했어요. 봉사도 열심히 하면서 차분히 공부하는 제 모습에 반했다나 봐요.” 김씨가 깔깔 웃는다. “나 같은 의대생 누가 데리고 살까 고민하던 중에 잘된 일이었죠.”
공부 욕심이 유난히 많았던 김씨 부부는 도서관에서 연애했고, 결혼 20년이 되도록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 있을 때는 주말에 가족 세 명이 모두 학교 인근 공립도서관에 가 함께 책을 펼치고 각자의 공부를 했다. 요즘은 둘 중 한 사람이 학회에 참석하러 가면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온 가족이 함께 학회가 열리는 도시로 떠난다.
“애석하게도 휴양지에서는 학회가 열리지 않아요.”
남편 안씨는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뽑는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4년 연속 선정됐으며, 벤처기업인으로 종종 빌 게이츠에 비유되기도 한다. 빌 게이츠는 올해부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게이츠&멜린다 재단’을 운영할 예정이다. 그래서 김씨에게 기업가의 사회적 공헌에 대해 물었다.
“제가 다닌 워싱턴대 법대 건물이 바로 빌의 아버지 윌리엄 H 게이츠의 이름을 땄어요. 국경없는의사회나 게이츠재단에서 일하며 우리 형편에 맞는 봉사형 워킹모델을 배워 보고 싶은 생각을 안 했겠어요?” 여기서 안씨가 한마디 거들었다. “지금도 이 사람은 기회를 계속 노리고 있어요.” 대전=이원진 기자 jealivr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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