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 '아시아'에 실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은 상업적 사고 버려야, 어떤 이데올로기도 생존을 능가할 수 없어,
"세월이 흘러서 나이도 많아지고 건강도 예전만 못하니 세상을 비관하고 절망을 느낄 법도 한데 나는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인생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지난 5일 타계한 《토지》의 작가 박경리(朴景利)의 마지막 산문이 23일 발간된 계간 문예지 《아시아》 여름호에 실렸다. 지난달 4일 병으로 쓰러지기 직전 기고한 〈물질의 위험한 힘〉이란 제목의 이 글에서 작가는 죽음을 예견한 듯 문학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나 모두 물질에 들린 삶을 살아가는 체제"라는 말로 정신적 가치를 지키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최근에 나는 식중독을 두 달간 앓았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이 글은 건강이 악화되고 있는 것에 대해 "아프다는 것, 죽는다는 것은 생명의 본질적인 작용인 일을 못하는 것이기에 절망적"이라고 하면서도 이내 그것을 자연스러운 삶의 한 국면으로 의연히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 문학의 거목으로서 우리 문학이 지켜야 할 도리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상업적인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간혹 상업적인 사고를 가진 문학인들을 볼 수 있는데, 진정한 문학은 결코 상업이 될 수 없습니다." 다소 과격한 표현도 등장한다. 그녀는 "나는 독자를 위해서 글을 쓴다는 말도 우습게 생각한다"며 "독자들 입맛에 맞게 반찬 만들고 상차림을 해야 하니 영락없는 종놈 신세"라고 말했다.
생명에 대한 경외와 감사의 표현도 곡진하다. "나는 평소에 어떤 이데올로기도 생존을 능가할 수 없다고 말해왔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는 가치 있는 일이지만 살아가는 행위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습니다. 요즘에는 그러한 생각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살아있는 것, 생명이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이 요즘처럼 그렇게 소중할 때가 없습니다."
만년의 근황도 밝혔다. "요즘 나는 시를 쓰고 있습니다"라는 말은 그녀가 쓰러지기 직전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 4월호에 시 3편을 실었던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녀는 "예순 편 정도 추려서 시를 내려고 생각한다"며 이 작업이 "생애 마지막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가족사 같은, 내가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린 일들을 담아내려 한다"는 각오를 밝혔다. 고인은 생전 조선일보와 가진 마지막 인터뷰에서도 시를 쓰고 있는 사실을 언급하며 "감각과 감수성은 아직 젊은이들과 똑같다"고 의욕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녀는 "다만 요즘의 내가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운 양식에 더 이끌리고, 물질적이고 인위적인 것의 위험한 힘을 더욱 경계하게 되는 것은 나이를 많이 먹었기 때문인 것 같다"는 말로 글을 맺었다. 조선일보 김태훈 기자 이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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