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문
작가인 Robert Levine은 “시간의 백만장자는 어떤 사람일까?” 라고 의문을 가졌다. 그는 “ 일하는 중에도 영화를 보러 가거나, 6개월의 유급 휴가 기간 동안 가족들을 데리고 남태평양으로 가는 그런 집단의 사람들이다.”라고 글을 적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시간을 쓰고 있는가? 이러한 시간 사용이 우리의 도시에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의 관계에는? 그리고 우리의 신체와 정신에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선택하지 않은 결정들은 있는가? 우리가 선호할 수 있는 대안적 시간이라는 것은 있는가? 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Ⅱ. 시간 속에 사는 사람들
중세 영어 단어인 〈clock〉는 중세 화란어와 독일어의 종〈bell〉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재는 기계 장치의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변화는 갈릴레오가 진자 운동을 발견한 16세기말에 일어났다. 최근의 경제학 이론을 빌려 존슨은 산업화가 〈기간 잉여〉에서 〈기간 풍요〉,〈시간 궁핍〉의 사회로 진행해 간다고 주장했고, 그 주장에 따라 산업화된 대부분 국가들의 성격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많은 생산과 소비의 결과로 시간이 점점 더 희소해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그것은 이렇게 진행된다. 생산에 있어 효율성의 증가는 각 개인이 시간당 좀더 많은 물건을 생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생산성의 증가는……, 그 체제가 계속 유지되기 위해 우리들이 좀더 많은 물건들을 소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생산과 소비에 쓰이지 않는 시간은 점점 낭비되는 시간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자유시간은 소비 시간으로 전환된다. 시간의 가치 증가는(증가는 거의 없지만) 템포나 페이스의 증가처럼 주관적으로 감지된다. 우리는 항상 생산라인을 지연시키거나 직장에 지각할 위험 속에 있으며, 여가 시간을 즐길 때에는 시간을 낭비할 위험에 처해 있다.’
우리가 종사하고 있는 일의 종류와 그 일이 필요로 하는 기술의 본질 역시 지속 시간의 인식에 굉장히 영향을 끼친다. 캘리포니아대학 기술 연구소의 생물 심리학자 조저 스페리와 그의 동료들은 우리 두뇌의 두 반구가 각각 다른 유형의 정보에 초점을 두고 각각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한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노벨상을 받았다. 좌뇌의 학습 방식은 언어적, 분석적 사고가 특징이다. 논리와 정해진 시간에 기초하여 분류하고, 셈하고, 단계적으로 계획을 짜고, 합리적으로 진술하는 것들을 요구하는 일들에는 좌뇌가 나선다. 우뇌의 학습 방식은 비언어적이다. 우뇌는 직관적, 상관적, 전체적이고 시간과 무관하다. 대충 우리는 두 유형의 의식을 갖고 있는데, 각각 좌뇌 의식과 우뇌 의식으로 명명될 수 있다.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이 모노크로닉(monochronic) 또는 M-타임 계획자들이라 부르는 사람들과 거의 같다. M-타임 계획자란 한번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기를 원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반면에 사건 시간 문화의 사람들은 한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폴리크로닉(polychronic) 또는 P-타임 계획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M-타임과 시계 시간적 사고는 성취 지향적인 산업 사회에 주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P-타임과 사건 시간은 제3세계 경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대체로 P-타임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적어도 서구의 경제적 기준으로 볼 때 M-타임 사람들보다는 생산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폴리크로닉한 특성이 좀더 인간 지향적이고 생산적일 수도 있다. 또한 모노크로닉한 체제들은 조직원들의 인간성을 과소평가하기 쉽다. 폴리크로닉한 체제들은 비생산적 혼돈에 빠지기 십상이다.
Ⅲ. 서로 다른 시간 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
문화를 서로 비교하고 자신의 삶과 다른 문화 속에 사는 이들의 삶을 비교하게 만드는 해외 여행은 무언가 말할 것을 만들어 준다. 브라질에서는 시간 연구를 하면서 동료들과 나는 브라질 사람들의 시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뿐만 아니라, 시간을 지키려는 시늉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브라질에서는 놀랍게도 항상 약속 시간에 늦는 사람을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한 반면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은 성공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사람으로 평가했다.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부자들은 대개 보석금을 장만하여, 집에서 자유롭게 재판을 기다린다. 가난한 사람들은 주로 감옥에서 기다려야 한다. 투옥된 경우에도 있는 자들은 없는 자들보다 안락한 시설에서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훨씬 높다.
19세기 후반기에 미국에서는 노동 시간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고, 20세기 초반부 20년 동안 10시간에서 8시간이라는 극적인 단축이 이뤄졌다. 그런 다음 주당 평균 근로 일수가 6일에서 5일로 줄어들어 주당 40시간 노동이 일반화됐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주당 노동 시간이 미국보다 짧고, 일본은 미국보다도 길다. 즉 일본에서는 주 5일, 40시간 근무하는 노동 인력이 전체의 27%밖에 안 되지만, 미국은 85.1%, 프랑스는 91.7%이다.
그리고 미국에서의 경의를 표하는 형식은 윗사람이 먼저 자리를 뜰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통째로 한다. 밀리센트 펜위크는 에티켓에 관한 저서에서 ‘백악관 예절 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어떤 손님도 늦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대통령과 영부인이 위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자리를 떠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삶의 페이스는 세계에서 가장 숨 가쁜 것 중의 하나다. 일본인들은 일을 빨리, 그리고 많이 한다. 그들은 휴가를 기피하고 은퇴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이(적게 일하고, 많이 놀기)운동을 시작한 1987년 여름에는 삿포르 의과대학에서 일하고 있었다. 또한 1988년의 경제 5개년 계획에서 정부는 1992년까지 연 근로 시간을 20% 감축하여 1,800시간으로 끌어내리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주당 노동 시간은 48시간에서 40시간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새로운 법안을 통과됐다. 그리고 노동부 관리들은 노동자들에게 (여유 있는 사회에서 일하고 쉬는 법), (우리 회사의 편안한 일 주일)과 같은 주제로 강연을 하기 위한 47개 도시 순회 강연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노력들은 거의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추후 조사에 의하면 근로 시간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일본의 최대 일간지 중의 하나인 아사이 신문사에는 험악한 표정을 한 사장이 전화기에 대고 (일하러 나오면, 너는 해고야)라고 외치는 내용을 담은 포스터를 벽마다 여기저기 붙여놨다. 그러나 이 운동을 시작한 이래로 휴가 사용률에는 변화가 거의 없었다. (1986년의 50%에서 1992년 53%)
전통적인 일본의 노동윤리인 (고생을 먼저하고 나중에 즐기자)는 일본의 집단주의 체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즉 일본인들은 산출이 없으면 분명히 노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해법은 열심히, 그리고 빨리 일하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근면이 무엇을 이뤄낼지를 알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25년 동안 그들은 일본이 전쟁의 잿더미로부터 지금의 세계적 경제 강국이 된 것을 봤다. 그들은 (경제적 기적)을 요술로 이룬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이것은 노력과 개인적 희생의 결과이다. 일본인들은 열심히 일하면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알렌 밀러는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미국에서 한 노동자가 아파서 출근을 못하겠다고 회사에 전화를 하니, 이해심 많은 사장이 “걱정 마, 잘 쉬기나 해, 네가 없어도 잘할 수 있어”라고 대답을 했을 때, 사장의 말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를 학생들에게 이해시킬 수 없었다. 학생들은 진짜 이해를 못했다.
일본에서는 “네가 없지만 최선을 다 해볼게. 그렇지만 정말 어려울 거야”같은 대답을 했을 것이다. 최근에 서구의 기업인들은 이제는 일본으로부터 생산 기법을 배울 차례라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들은 일본인들로부터 시간을 다스리는 법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Ⅳ. 시간을 잡은 사람들
(원천적 원인 발견 오류)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설명할 때, 상황의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성품을 과대평가하는 일반적인 경향을 지칭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을 보고는 그 사람이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내가 화가 나면 다른 사람이 나를 화나게 했다거나 상황이 참을 수 없는 것이라고 외부 환경을 탓한다. (나는 여간해서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나를 화나게 한 어떤 특별한 사연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아름다운 여자와는 두 시간 동안 같이 앉아 있어도 2분처럼 느껴지고, 뜨거운 화덕 위에는 2분만 앉아 있어도 두 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껴진다. 이것이 상대성이다.’ -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이러한 상대성 이론의 기초는 시간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것보다는 상당히 더 자신들의 삶의 속도를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우리의 시간이 우리의 삶 자체라는 또 다른 기본적인 진실을 깨닫게 됐다. 또한 시간은 한번 가면 결코 돌아오지 않기에 시간보다 중요한 지배의 상징물은 없다.
재즈 음악가 마일스 데이비스가 말했듯이, “시간은 중요한 것이라기보다는 유일한 것이다.” 결국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시간을 잘 쪼개서 선용하는가가 우리 존재의 짜임새와 질을 결정한다. 끝.
사진출처: '10.3.27 '11.10.25 2013.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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