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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피할 수 없다면 현명하게

물조아 2008. 3. 14. 09:11

좋은 빚, 나쁜 빚, '부자는 빚을 내서 더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빚으로 더욱 더 가난해진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로버트 기요사키가 레버리지 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 얘기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레버리지를 활용해 더 큰 부자가 되기보다 빚의 올가미에 걸려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빚은 양날의 검과 같다. 기요사키가 주장하는 것처럼 손에 쥔 자본이 작아도 빚이 갖는 지렛대 효과를 통해 더 큰 자산을 형성할 수 있는가 하면 가난의 늪으로 더 깊이 빠져들게 하는 독이 될 수도 있다.


빚을 청산하는 것이 재테크의 가장 기본이라고 하지만 완전히 자기자본만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세 가지 기본 생활요소 중 하나인 집을 마련하는 것부터 창업까지 살아가면서 타인의 자본에 기대야 하는 일이 적지 않다.


부채를 일으켜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현명하게 활용해야 적어도 빚 때문에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을 피할 수 있다.


◆ 이로운 빚 vs 해로운 빚


부채에도 '착한' 것과 '나쁜' 것이 있다. 모두 똑같은 빚이 아니라 생산적으로 활용돼 재산 형성에 도움이 되는 빚과 새로운 가치를 전혀 창출하지 못한 채 소모적인 빚으로 구분된다.


수익형 자산에 투자하거나 비즈니스에 필요한 대출은 생산적인 활동에 사용되는 '이로운' 빚으로 구분된다. 물론 사업을 시작하기 앞서 아이템의 타당성과 시장조사를 철저히 거쳤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주택을 포함한 자산에 투자하기 위한 부채 역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수익형 자산에 대한 투자는 가격 변동성이 낮을 경우에 한해 레버리지를 활용해야 한다. 주식이나 파생상품과 같이 가격이 시시각각 큰 폭으로 등락하는 자산에 대출을 이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적립식펀드가 높은 인기를 끌면서 마이너스통장에서 펀드로 자동이체하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마이너스통장 금리보다 펀드의 예상수익률이 높을 것이라는 확신에서다. 하지만 주식은 가격 변동이 큰 자산이며 누구도 미래 수익률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빚을 내서 적립식펀드에 투자했는데 주식시장이 강하게 조정을 받아 손실이 발생할 경우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소비형 부채는 '해로운' 빚에 속한다. 아파트를 구입할 때나 자동차를 살 때나 대출을 일으키는 것이 자연스러운 절차로 받아들여지지만 자동차의 경우 소비재로 분류되기 때문에 부채를 최소화해야 한다.


술값을 마련하기 위해 별 생각 없이 편의점에서 이용하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역시 '해로운' 빚에 해당한다. 이자가 높을 뿐 아니라 신용 관리에도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는 빚을 갚기 위한 빚이다. 김영호 재정전략연구원장은 "은행 대출금이 연체되면 독촉에 시달리다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와 대부업체에 손을 벌리는 것이 수순"이라며 "빚을 갚으려고 또 다른 빚을 내는 것이 가장 지양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송승용 희망재무설계 컨설턴트는 "목적이 같은 대출도 경기 상황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며 "지금처럼 인플레이션 위험이 높아지면서 성장에 빨간불이 켜질 때는 공격적으로 레버리지를 일으켜 자산을 늘릴 시기가 아니라 보수적으로 가진 자산을 지켜야 할 때"라고 말했다.


◆ 부채 상환에 수입을 올인? 'No'


어떤 목적에서든 일단 부채가 발생하면 가급적 빨리 갚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얼른 빚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 당연하지만 모든 수입을 부채를 상환하는 데만 쏟아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금리가 지나치게 높은 경우라면 수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최대한 빨리 부채를 상환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부채 상환과 투자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


첫 번째 이유는 좋은 투자 기회를 놓치는 실수를 피하는 것이며 유동성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 두 번째 이유다.


송승용 컨설턴트는 "대출금리보다 낮은 적금을 붓는 것보다는 대출금을 상환하는 편이 낫지만 국내외 주식시장이나 상품시장에 투자 기회가 있다면 부채 상환과 투자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투자기회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유동성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후 실직하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모든 수입을 빚을 갚는데만 투입했다면 부채 상환과 펀드 투자를 병행한 경우보다 더 큰 재정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일부 여윳돈을 펀드에 투자했다면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인해 닥치게 되는 유동성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


실직과 같은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가족이 수술을 받게 되거나 사고를 당하는 등 유동성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변수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모든 수입을 부채를 갚는 데만 집중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판단이다.


◆ 빚 갚는 데도 순서가 있다


부채의 목록을 한 번 작성해보자. 빚이 여러가지인 경우 어떤 금융기관에 얼마의 금리로 대출을 사용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빚을 갚는데도 순서가 있다. 무엇보다 이자가 높은 대출을 먼저 갚아 전체적인 금융비용 부담을 줄여야 한다. 은행보다는 보험사, 이보다는 카드론과 할부금융, 대금업체로 갈수록 이자 부담이 커진다.


만기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만기가 도래한 것을 잊고 있다가 연체가 발생하면 금융비용이 늘어날 뿐 아니라 신용등급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또 여유 자금이 있으면 소액의 대출을 빨리 갚아 대출을 받은 금융회사 수를 줄이도록 하자.


최성우 포도에셋 팀장은 "부채 비율이 과도한 경우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와 같이 금리가 높고 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출부터 상환한되 중장기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자녀 학자금과 노후자금 등은 대출 상환과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 사전 유동성 관리에 만전


소 잃고 외양간 고쳐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평소 '해로운' 빚을 일으키지 않도록 유동성 관리에 힘쓰는 것이 부채를 사후관리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재무설계 전문가는 항상 3개월치의 생활자금을 입출금식 통장에 확보할 것을 권한다. 뜻하지 않게 급전이 필요한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소비를 위해 각종 할부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하루 이틀 정도 소비를 늦춰보는 것이 불필요한 빚을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주택 마련을 포함해 '이로운' 빚이라고 해도 자신의 상환 능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 부채의 적정 수준은 개인의 경제적인 상황에 따라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일률적인 선을 긋는 것은 힘들지만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거나 미래를 위한 투자 기회를 상실할 정도로 과도한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것은 현명한 '빚테크'라고 보기 힘들다. 머니투데이 머니위크 황숙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