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책(冊)

‘가진 자들의 법’으로 법을 비웃다!

물조아 2008. 1. 12. 04:16

〈법률사무소 김앤장〉 임종인 장화식 지음/후마니타스·1만2000원 재벌들과 국제투기자본 위해 복무하는 국내 최대 로펌, 합법이란 이름의 수많은 편법들과 반공익성 파헤쳐


민주화란 결국 무엇이었던가? 권위주의 군사독재의 규제와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란 누구를 위한 자유였던가? <법률사무소 김앤장>(후마니타스)을 읽노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의문이다. 책은 답한다. 결국 국내외 투기자본, 그들의 이익에 복무하고 이익을 나눠 갖는 법률기술자들, 그리고 정부관료들로 짜인 ‘철의 삼각동맹’을 위한 민주화요 자유화였다고. 수많은 사람들의 피눈물로 쟁취한 민주화·자유화는 결국 그들 소수 ‘21세기 신흥귀족’들이 절대다수 대중들이 생산한 부와 권리를 합법이란 연막 속에 약탈해갈 수 있도록 해방시켜 준 데 지나지 않은 꼴이 돼버렸다고. 저자들은 이를 미국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즈의 <파워 엘리트>가 그리는 자본과 군부, 정부관료 삼각동맹에 빗댔지만, 그들이 갈취해 나눠먹은 부는 그래도 미국 내에 남았다. 막대한 부의 국외유출을 구조화한 한국 삼각동맹이 상징하는 지난 10여년 간의 신자유주의 파행은 지난 대선에서 왜 다수의 유권자가 현체제에 대해 ‘노(NO)’라는 빨간 딱지를 붙였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 파행의 중심에 종합법률사무소라는 간판을 단 ‘김앤장’이 있고, 기회주의적인 21세기 신흥귀족들은 거기를 중심으로 종횡으로 연결돼 특권의 철옹성을 짓고 있다. 책은 그 실체를 하나하나 추적해 들어간다. “죄수의 눈에 보이지 않은 간수의 권력을 민주화하는 방법은 주권자인 시민들이 간수를 볼 수 있게 만드는 데 있다. 이 책에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방법도 바로 이것이다.” 한국 최대의 법률사무소(로펌)이면서도 세무조사 한번 받은 적 없이 베일에 가려져 있는 김앤장에 관한 첫 종합보고서라고 할까. 이제까지 나온 김앤장 관련 문서 중에서 “가장 풍부한 경험분석”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뒤틀린) 법 현실을 진지하게 살펴보고, 이를 민주주의와 사법정의 차원에서 (고발하고 대안을) 논의하는” 장으로 설정했다.


조세회피지역인 모나코에 근거지를 둔 별볼일 없던 투기자본 소버린이 2003년 경영권 분쟁이라는 ‘선진 금융기법(?)’을 구사해 1768억원을 투자해 SK(주) 주식을 매집한 지 2년 4개월 만에 되팔아 1조원의 순수익을 올렸다. 뉴질랜드 경제전문 주간지 <내셔널 비즈니스 리뷰>는 매년 발표하는 갑부 명단에 한번도 오른 적 없었던 소버린의 실질적 소유주 챈들러 형제가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로또’식으로 한국에서 일확천금한 그 일로 뉴질랜드 최고갑부 자리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론스타가 자산규모 62조6033억 원의 외환은행을 단돈 1조3833억원에 사들여 수조 원(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는 건 다 아는 얘기. 그리고 제일은행을 인수한 뒤 되팔아 1조1000억 원을 남긴 뉴브릿지캐피탈,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해 SK텔레콤에 넘기면서 5000억원의 차익을 낸 뉴브릿지캐피탈과 AIG의 ‘먹튀’ 얘기. 진로소주 채권장사로 1조원이 넘는 사세차익을 낸 골드만삭스와 한미은행 인수로 7000억원을 남긴 칼라일 얘기.


국제적으로도 화제가 된 이 ‘사건’들을 꿰는 공통요소는 바로 ‘법률사무소 김앤장’. 저자들이 ‘빙산의 일각’이라고 한 외환은행 삼키기 등 외국투기자본의 한국기업 매수·합병 법률컨설팅을 거의 싹쓸이하면서 법지식과 돈과 인맥을 동원해 거침없이 구사한 거래쌍방 대리, 사전공모, 수치조작, 내부기밀유출, 법조문 확대해석 등 눈부신 수법들이 이 책에서 소개된다.


김앤장의 돈벌이가 외국 투기자본에만 국한될 리 없다. 삼성 에버랜드 편법증여 의혹사건과 현대, 두산, 한화 등 주요 재벌회장들 비리사건 대부분에 관여했고 폐암치료제 ‘이레사’의 값 인하를 거부한 다국적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를 위해 일했으며, 태안 앞바다에 기름을 쏟은 홍콩선적 유조선 허베이 스트리트 변호까지 맡는 등 돈많은 ‘고객’을 위해서라면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외환은행-외환카드 합병 때 핸드폰 문자로 해고가 합법이라 조언했고, 단체협약 때 약속한 정리해고 불가원칙을 장래 예상되는 위협을 이유로 깨버려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자문하는 등 힘없고 돈없는 존재들에겐 냉담을 넘어 거의 항상 적대적이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자본주의가 원래 그런 것 아니냐고? 그렇다면 그따위 자본주의에 누가 애달캐달 목매달까?


김앤장이 동원하는 전가의 보도가 막강한 법률전문가와 정부관료 인맥. 주로 정부 고위관료들이 영입되는 김앤장의 고문, 전문위원, 실장 등의 명단에는 이헌재 부총리(이하 전현직 포함), 한덕수 총리, 서영택 국세청장 등 정부 거의 모든 부처 고관들 이름이 즐비하다. 법률회사가 변호사도 아닌 관료들을 포진시킨 이유는 전관예우 등을 이용한 로비스트로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이용훈 대법원장, 이임수 대법관, 강상진 서울지법 판사, 송광수 검찰총장 등 판·검사 수십명도 줄을 섰다. “퇴직일로부터 2년간 재직중 업무와 관련이 있는 영리사기업체에 취업하지 못한다”는 공직자윤리법은 있으나마나다. 거의 모두가 공직에서 물러난 지 3개월 이내에 황금방석으로 자리를 옮겼고, 때가 되면 다시 공직에 나간다. 여러 표들로 꼼꼼히 정리돼 있는 그들이 받는 보수는 최고 월 2억원이 넘는다.


고액을 지불할 이유는 충분하다. 동창과 연수원 동기, 직장 선후배·동료 등 안면과 이해로 똘똘 뭉친 이들은 이른바 ‘회전문 인사’를 통해 관직과 로펌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돈과 지위를 매개로 서로 봐주기에 여념이 없다고 이 책은 지적한다. 투자한 것의 몇 배 이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네트워킹을 토대로 외국 투기자본의 국내기업 인수·합병 때 김앤장이 받은 수임료는 보통 100억원대. 골드만삭스-진로소주 거래 때 따로 챙긴 ‘성공보수’는 300억원.


이 책은 묻는다. 김앤장이란 조직과 영업은 합법적인가? 그리고 합법으로 간주된 영업들은 변호사법 규정이라도 충족시킬 만큼 정의롭고 공정한가? 국민세금으로 막대한 연수비까지 들여 육성한 법률전문가를 고작 공익을 짓밟는 로펌 인력공급원으로 만들어버리는 게 옳은가? 김앤장은 같이 일해보고 싶은 파트너인가, 아니면 법을 활용해 특권을 쌓아올리면서 시민의 권리를 억압하고 내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세력인가?/한겨레/한승동 선임기자  /  201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