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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 전조등을 켭니까?

물조아 2007. 8. 17. 21:10

당신은 언제 전조등을 켭니까? [박상원의 해외 통신]

  • 금년 초 프랑스 파리에서 겪은 일이다. 마주 달려오던 차량이 내가 탄 차량에 상향등(일명 하이빔)을 갑자기 켜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뭘 잘못했는지 확인하며 당황스러워했다. 그러나 상향등을 켜고 멈춰 있는 운전자들을 이후로도 계속 보게 됐고, 이것이 다른 차를 위한 양보의 의미임을 알게 됐다. 프랑스에서는 상향등이 상대 운전자에게 양보해 준다는 의사전달 수단으로 운전자들 사이에 자리 잡은 것이다. 이처럼 자동차 설계자의 원래 의도와 달리 운전자들이 전조등을 상호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다른 나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화창한 대낮에도 전조등을 일상적으로 작동시키고 주행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야간에만 전조등을 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 상황과 다르다. 그러나 전조등을 낮에 사용하면 상대 차량이나 보행자의 움직임을 쉽게 알 수 있어 교통사고 예방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시험 결과다. 이에 따라 미국·유럽에서는 일찍부터 낮에 전조등 켜기를 권장 혹은 의무화하고 있다. 또 GM을 비롯, 도요타, 혼다의 고급브랜드인 아큐라 등 많은 메이커들이 전조등 보조등을 대낮에도 자동으로 작동되도록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외부등과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이 관찰된다. 외국에서는 철저하게 비상시에만 사용하는 비상등(좌우 방향지시등을 동시에 작동시키는 것)을 자주 사용한다는 점이다. 갑자기 차선을 바꿀 때 상대 차에 양해를 구하는 경우나 감사 표시로도 비상등이 사용되며, 갓길을 이용할 때에도 사용한다. 또 앞차를 볼 수 없을 정도의 악천후 상황에서 안전을 위해 다른 차량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수단으로 사용하며, 고속도로에서 급감속을 할 때 뒤에 오는 차량들에게 경고 신호로도 비상등을 사용한다. 비상등을 운전자간의 의사소통 방식으로 인정, 우리나라의 한 자동차 회사에서는 비상등 버튼을 운전대 중앙에 위치시키기도 했다.

    2년 전 메르세데스벤츠는 미국 고속도로 교통안전국(NHTSA)에 급정차와 같이 갑자기 속도를 줄여야 할 때, 뒤에서 오는 차량과의 안전거리 유지를 위해 비상등처럼 후방 정지등을 모두 점멸하도록 하는 아이디어를 제출했다. 비록 받아 들여지지 않아 벤츠 제품에 장착되지는 않았지만, 이보다 앞서 비상등을 ‘실용화’시킨 한국 운전자들의 혜안을 떠올리게 된다.

    이처럼 자동차 외부등의 용도가 각 지역 사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동차 제품 개발에 있어서 해당지역 사용자들의 문화나 사용습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