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책(冊)

히로히토 신화의 뒤편

물조아 2007. 7. 15. 07:52

요즘의 우리들과 과거의 우리들은 수천만의 서양인과 동양인들을 살상한 제2차 세계대전의 책임 일부분을 히로히토(1926~1986)도 져야 한다는 암시조차 찾아볼 수 없다. 1945년 9월 27일은 일본이 자랑하던 2,600년의 무패 역사의 종지부를 찍는 날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의 나치즘 히틀러, 이탈리아의 파시즘 뭇솔리니,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 히로히토는 그 당시 가장 악인 중에 악인이었다.

 

특히 프랑스의 에드워드 베르는 아시아 약탈, 대동아 전쟁, 태평양전쟁의 원인 제공자인 히로히토가 전후 일본 군부의 희생양으로 조작된 현실에 저자는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었다고 했다.


맥아더의 월권 또한 결코 지나쳐 버릴 일만은 아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꿈꾸었던 그는 공산주의의 위협을 내세워 히로히토의 면죄부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인물이었다.


과거 1923년 9월 1일 정오는 일본 역사상 최악의 자연 재앙인 대규모 지진이 도쿄와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한 관동 지역을 덮쳤다. 그러자 대 지진이 일어나자마자 미신이 날개를 달고 춤을 추는 듯했다. 그리하여 이때 직업이 없이 ‘무산 대 중층’을 형성하고 있던 조선인들은 일본 사회에서 저주스럽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삽시간에 증오스런 조선인들과 좌경 분자들이 일본 조상들의 얼이 숨쉬는 신사를 오염시켜 지진을 유발했다는 소문이 도쿄와 요코하마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도쿄의 피난민들은 이들이 약탈과 지진의 주범이라고 욕하고 나섰고, 경찰과 군대가 지켜보는 가운데 수천 명이 학살당했다.

 

일본의 장군들은 소국이라 하더라도 과감하고 효율적인 조직 기강을 가지고 있다면 대국도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실천하였다. 그리고 북한의 김정일도 그러한 개념을 가지고서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정치이념을 가지고서 정치력 유지에 역점을 두었다.

 

치적 동기에 의한 살해는 법정의 관대함인 정상을 참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히로히토하마구치 오사치의 폭력정당을 만들고 ‘악의 뿌리와 악의 화신’인 내무성대신을 아다치 겐조를 임명하고, 악당 두목 아다치 겐조는 놀랄만한 범죄를 저지른 전과자다.


일본의 침략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 흑룡회 극단주의자들이 지원하고, 일본 정보 당국이 고의적으로 촉발시킨 ‘한국의 국모인 명성황후’를 시해 시킨 주범이다.


이탈리아의 뭇솔리니는 “전쟁은 창조의 아버지이고, 문화는 어머니이다.”라고 말하였다. 히로히토는 “나를 가장 鼓舞(고무)시키는 일은 일본이 자력으로 전쟁의 폐허에서 소생했다는 사실이다.”  히로히토는 “우리는 지금 매우 어려운 입장에 있다. 전쟁에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호랑이 새끼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위험 없이 소득 없다.”라고 생각하였다. 되돌아보면 히로히토가 취한 어정쩡한 일련의 조치가 ‘국난의 화근’이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어날 수 있었다. 쇼와, 히로히토 그 이름은 일본 역사에서 극명한 부침과 부활을 뜻함과 동시에 한 사람의 기적 같은 생존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리고 혈연관계라는 신념이 유지되는 한 일본의 정체성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끝.

 

사진출처: 히로히토(1926~1986)  '10.1.14  / '11.7.1  /  2012.11.12 

'집을 나간 책(冊)'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성 남자 금성 여자의 사랑의 완성  (0) 2007.07.17
화술 123의 법칙  (0) 2007.07.16
CEO 히딩크 게임의 지배  (0) 2007.07.14
SAMSUNG RISING  (0) 2007.07.13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하라  (0) 2007.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