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직장인들은 왜,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나?
(읽고 또 읽었더니 어느 날 이야기가 쓰고 싶어지더라는 전아리씨. 그는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얼굴에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면서 그것들을 소설로 쓰는 건 즐거운 일"이라고 말했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책에 미쳤던 시기가 꼭 두 번 있다. 물론 거의 언제나 책을 끼고 살았지만 그 때만큼은 책에 완전히 파묻혀 다른 일은 잊고 지내다시피 했다.
첫 번째는 독주(毒酒)와 방황의 시절을 막 마감한 대학 4학년 시절이었다. 고시 공부 하듯 새벽부터 심야까지 책을 붙잡고 지냈다. 책의 종류도 각양각색이었다. 시사 잡지에서부터 고전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비싼 등록금 값 한 번 못 하고 대학을 떠난다는 것이 아쉬워서 시작했던 일이었다. 당시로서는 고시 공부도 왠지 남 눈치 보이는 일이어서 딱히 독서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독서는 내게 그저 그런 소일거리가 아니라 대단한 위안 꺼리였다. 책에 빠져 있노라면 교정의 숨 막힐 듯한 라일락꽃 향기나 최루탄 냄새쯤은 쉽게 잊을 수가 있었다. 80년대 초반 대학가, 그 고단한 삶의 유일한 돌파구가 바로 책이었던 셈이다. 그 당시 독서에 빠져들지 않았더라면 삶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서 나는 요즘도 가끔씩 몸서리를 치곤 한다.
두 번째 시기는 사회에 나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던 시기였다. 당시는 습관처럼 사표를 내던지고 전직(轉職)을 감행하고 있었다. 내 먼 미래는커녕 한치 앞도 보이지 않고 깜깜할 때였다. 혹시 답이 있을까 해서, 최소한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책에 매달렸다. 다행히 당시는 대학 시절처럼 중구난방으로 독서를 하지는 않았다. 독서의 영역이나 소재에 나름의 체계를 세워두고 있었다. 어떤 일을 본업으로 삼을지는 망설이고 있었지만 지향하는 분야는 확고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경제와 경영 관련 서적을 주로 읽었다. 미국과 일본이라는 관심 지역도 따로 정해 독서의 집중력을 높였다. 물론 역사서나 고고학, 그리고 물리학 서적을 즐겨 읽기도 했다. 말하자면 대상이 되는 책의 종류에 따라, 독서는 자기 계발의 수단이 되기도 했고 현실 도피의 도구가 되기도 했다. 어떤 경우든 과거의 독서 경험은 내 본업의 든든한 밑천이 돼 주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 인생 두 시기의 대식가형 독서와 미식가형 독서야말로, 내가 감히 경제?경영 현상을 대중들에게 말과 글로,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일로 나설 수 있게 해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역시 독서를 하다가, 내 개인적 경험이 인류의 독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라는 책을 읽으면서였다. 그는 서점 직원으로 일하던 어린 시절, 노년에 눈이 먼 세계적인 대문호 루이스 보르헤스에게 책을 대신 읽어주는 일이 잦았다. 그 때의 일로 영감을 얻어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대표작인 이 책에서 망구엘은 개인적인 독서 경험과 인류의 독서사를 절묘하게 엮어 놓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독서가 망구엘 자신과 인류에게 고통스런 현실의 돌파구가 돼 준 예와 전반적인 수준을 높여준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쿠바의 시가 공장 노동자들 가운데는 책 읽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 글을 깨치고 음색이 풍부한 사람이 선택돼 그 임무를 맡았다. 그는 궐련을 마는 동료 노동자들에게 귀가 솔깃할 만한 책을 대신 읽어주고는 했다. 이 때의 독서는 분명 단조롭고 고된 노동에서 벗어날 돌파구이자 위안 꺼리임에 틀림없었다. 반면 2천년 이상 동아시아를 지배해온 유교 사회에서 최상위 계층인 관료의 선발 기준은 오래도록 신언서판(身言書判)이었다. 이 때의 서(書)는 유교의 핵심 경전에 대한 독서를 뜻한다. 그것도 완전히 암기하는 식의 책 읽기여서, 오락이라기보다는 노동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예를 보자면 독서는 언제든, 누구에게든 한 마디로 ‘즐거운 노동’이었던 셈이다.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고 나면, 디지털 시대의 젊은 독자들은 당연히 의문을 품을 것이다. ‘독서에 비해 훨씬 더 즐거워 노동이라고 할 수도 없는 방법이 있는데, 왜 전통적인 방법에 의존해 지식과 정보를 얻어야 하는가?’ 물론 인터넷 얘기다. 각종 검색 사이트와 인터넷 미디어, 그리고 블로그 등의 새로운 지식?정보 채널이 더 낫지 않느냐는 항변이다. 실제로 우리의 독서량은 선진국에서 최저 수준이고, 최근 들어 더욱 낮아지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그 원인을 우리의 높은 정보화 수준에서 찾는다. 왜냐 하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하지 않는 이유로, 인터넷에서 원하는 지식이나 정보를 다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꼽기 때문이다.
물론 단편적인 지식이나 정보를 찾는 데는 인터넷이 훨씬 편리하고 경제적일 때가 많다. 책에서 해당 지식이나 정보를 찾으려면 오히려 더 번거롭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인터넷에서는 바로 즉답을 구할 수 있다. 적어도 당장의 구체적 답변을 구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책이 종합 건강 검진이라면, 인터넷은 특정 부위에 대한 내시경 검사이다. 특정 내장 기관의 질병 여부에 대해서는 후자가 훨씬 더 정밀하다. 그러나 전반적인 건강 상태에 관해서라면 얘기가 다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지혜나 통찰력을 얻는 데 인터넷은 결코 책을 따라가지 못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라는 것도, 실은 책의 편린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한국인의 70% 이상이 감염돼 있다는 헬리코박터균을 발견한 사람이 호주의 의사인 로빈 워렌과 배리 마셜이라는 사실은 인터넷을 통해 금방 알아낼 수 있다. 2005년 그들이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는 것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이 아니고서는 이 균을 둘러싼 의학계의 논쟁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들이 그간 스트레스와 흡연, 그리고 알코올이 일으키는 질병으로 여기던 위궤양의 주범으로 헬리코박터균을 제시했던 것은 지난 1883년. 그 해 말 벨기에에서 열린 질병 학회에서 마셜 박사는 ‘모든 위궤양의 원인은 헬리코박터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가 연단에서 야유를 받으면서 쫓겨나야 했다. 그 후 두 명의 의사는 위장병 학계에서 쫓겨나 오지에서 평범한 시술이나 하며 세월을 보내야 했다.
위장병 학계의 정설은 1990년대 초반에 본격적으로 도전받기 시작했다. 그 후 정설과 소수설이 입장을 바꾸는가 싶더니, 2005년 드디어 호주 출신의 두 의사는 노벨 의학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기성 의학계가 위궤양 치료를 위해 오랜 처방인 제산제를 포기하고 항생제를 사용하는 데에는 20여년 가까이가 걸렸다. 무엇보다도 주류 의학계가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거부함으로써 환자들이 겪은 고통과 소모한 비용을 떠올려보면 끔찍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책은 이런 역사적 맥락과 배경을 충실히 설명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미국의 미래학자인 존 나이스비트는 그의 명저 <마인드 세트>에서 이 예를, 언제나 옳아야만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할 근거로 사용한다. 대중들이 진실을 언제나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나 혹은 우리가 언제나 옳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마음의 족쇄가 될 뿐이다. 이 경우 오히려 다른 쪽의 의견을 듣지 못하고 현실을 제대로 못 볼 수 있다는 것이 나이스비트의 주장이다. 다른 비유를 들자면, 인터넷은 택시를 이용하는 것과 흡사하다. 당장 편하고 경제적인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승용차를 운전하는 것, 즉 독서에 비할 수는 없다.
자, 그렇다면 직장인들은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독서로 일을 뒷받침해야 할 직장인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독서법 노하우 다섯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 자신의 일과 독서를 연관시켜라 전공이었던 탓에 대학 시절 내내 경제학 원론을 몇 차례나 정독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어려운 용어나 수식, 그래프가 이해를 어렵게 한 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구체적으로 피부에 와 닿지가 않았다. 본격적인 경제 활동도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경제 주체들의 경제 활동을 제대로 볼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부 기자 생활을 10여년째 하고 난 어느 날 대학 시절의 경제학 원론을 들춰볼 기회가 있었다. 정독이라기보다는 속독에 가까왔는데도, 한 군데도 막힘이 없었다.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할 수가 있었다. 내 일을 하는 동안 기본적인 경제 원리를 모두 몸으로 깨우치게 돼서였다. 인생이라는 대학에서 경제학 원론을 성공적으로 이수한 셈이었다. 이는 독서와 체험, 즉 일이 결부됐을 때 독서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것을 뜻한다.
■ 관심 분야와 관심 지역에서 출발하라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선 책에 흥미를 느끼는 것이 선결 과제다. 이를 위해서 처음에는 관심 분야와 지역을 한정하는 것이 좋다. 두서없이 읽다 보면 쌓이는 느낌도 덜하고, 지혜와 통찰력의 체계도 허술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요즘 유행하는 것처럼, 경제와 경영 분야로만 좁힐 필요는 없다. 관심 분야를 와인으로 정해도 좋고, 지역을 카리브해의 섬 나라들로 놔도 무방하다. 관련 도서들을 섭렵하다보면 점점 더 범위와 지역을 넓히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다. 또한 도는 통한다는 말이 있듯, 다른 관심 분야와 지역에서 출발해도 지혜와 통찰력 면에서 같은 결론에 도달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관심 분야는 경제?경영, 관심 지역은 미국과 일본으로 정한 나는 1980년대와 90년대 미국의 금융시장을 다룬 <라이어스 포커>(마이클 루이스)와 <천재들의 실패>(로저 로웬스타인), 그리고 <머니사이언스>(윌리엄 파운드스톤)라는 책을 잇달아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이 독서를 통해 대학에서 들은 재무이론과 사회에서 배운 금융시장 현실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만일 대학과 사회에서 이 책을 미리 접할 수 있었더라면 시행착오를 훨씬 더 줄일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 독서 지도를 받는 것도 한 방법이다 독서는 미로 찾기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처음에는 막막하기만 하던 것이 독서의 양이나 질이 늘고 높아질수록 그림이 명확해진다. 길 사이의 맥락도 또렷해지고 출구의 방향도 확실해지기 시작한다. 이 때 미로를 위에서 들여다보는 누군가가 길에 대해서 조언을 해준다고 하자. 미로에서 길 찾기가 훨씬 더 쉬워진다. 그것이 바로 독서 지도의 역할이다. 주변의 노련한 다독가가 그런 역을 해줄 수도 있고, 각종 미디어의 서평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다. 어떤 분야의 어떤 책을 더 읽어야 할지, 서슴없이 물어보고, 또 서평을 참조하라.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다. 지극히 경제적인 선택이다.
■ 그래도 책은 책일 뿐이다 독서를 중시한다고 해서 책을 신주단지 모시듯 할 일은 아니다. 독서광들 중에는 이사 갈 때 책 한 권 제대로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들 가운데는 책을 떼이는 것은 물론 빌려주는 일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책에 낙서나 구김 한 줄도 용납 못한다. 그래봐야 책은 책일 뿐이다. 책은 지혜와 통찰력을 쌓는 수단일 뿐 목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책은 실용적으로 활용하면 된다. 필요하다면 대여와 낙서는 물론 실용 서적이라면 필요한 부분만 뜯어내서 보관하고 나머지는 버려도 무방하다. 요는 당신에게 두고두고 필요한 내용을 언제든 찾아볼 수 있느냐이다.
■ 인터넷과 책의 쓰임새를 구분하라 소소한 지식과 정보는 대부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단순히 지식과 정보만 추려 놓은 책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이유가 없다. 그보다 책은 다양한 지식과 정보의 배후에 있는 맥락을 이해하는 방편이 돼야 한다. 가능하면 역사적 배경과 그것의 의미, 그리고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나 견해들이 많이 제시된 책을 고르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의 생애를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다룬 책보다는
이 책은 자기 계발을 위해 효과적으로 독서를 하려는 직장인들을 위한 책이다. 말하자면 위의 다섯 가지 조언을 적용한 독서 지도용 책이라는 뜻이다. 보통 직장인이 자신의 일과 관련해 반드시 읽어야 할 대표적인 경제?경영 서적 17권을 골랐다. 그리고 그 책들에 대해 해박한 명사들의 서평을 덧붙였다. 말하자면 이들이 독서 지도를 하는 셈이다. 이들의 글을 읽고 나면 아마도 여러분들은 원전이 읽고 싶어질 것이고, 또 다른 많은 책들을 갈구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직장인 독서 경영의 첫 걸음이라고 할 만하다.
김방희(생활경제연구소장, KBS 1라디오 <김방희, 조수빈의 시사플러스>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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