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책(冊)

탁월한 사유의 시선 / 최진석 지음 / 21세기북스

물조아 2017. 6. 6. 20:47


 

- 최진석 저자에 대하여~

 

최진석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북경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현재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건명원의 초대 원장. 개인과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관한 깊은 고뇌를 안고 산다. 저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나는 누구인가] [장자철학] 사유: 어떤 일을 그렇게 하게 된 이유나 까닭

 

- 무엇인가를 느껴 마음속에 새겨놓고 싶어서 붉은색 볼펜으로 밑줄을 긋고 노트북에 메모를~

 

세계의 주도권이 신에서 인간으로, 믿음에서 생각으로, 신화의 시대에서 철학의 시대로 넘어왔습니다.

 

선진화란 사유의 상승이 기본 조건인바, 사유의 상승에 대한 해답은 바로 철학에 있다. 이러한 철학을 토대로 할 때 새로운 장르의 창조가 가능해짐으로써 선도력을 갖게 되고 결국 이것이 국가 발전의 기초가 된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왜 지금 인문학일까요? 바로 전술적 차원에서의 삶을 끝까지 가본 다음에 한 단계 더 높은 전략적 차원으로 상승하려는 필요와 욕구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진보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가장 시급한 일은 이 극단적인 이념 대립에 빠지는 지적 단순함에서 빠져나와 각자 자신의 벽을 넘어서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철학은 믿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앞선 철학자들이 읽어낸 생각을 수용하여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읽을 줄 아는 힘을 가지는 독립적인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의 결과를 배우는 것이 철학이 아니라,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철학인 것입니다. 정해진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진리를 대하는 태도일 수 없습니다. 자기만의 진리를 구성해보려는 능동적 활동성이 진정 진리를 대하는 태도일 것입니다.

 

언어의 구체적인 사용이나 삶의 다양한 형태들을 훌쩍 뛰어넘어 삶이나 언어 자체를 들여다보는 높이로 시선이 상승하는 것을 철학적이라고 말합니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결국 각자 높은 차원의 생각 혹은 사유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앞선 철학자들이 읽어낸 생각을 숙지한 내용들을 계속 퍼뜨리고 또 그들이 남긴 철학적인 내용 그대로 따라 살아보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가 자기 삶의 격을 철학적인 시선의 높이에서 결정하고 행위 하는 것, 그 실천적 영역을 의미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것을 읽을 수 있는 능력, 이것 때문에 인간은 특별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탁월함을 잉태하는 능력입니다. 사실상 철학은 아주 높은 차원에서 탁월하게 이루어지는 고도의 지적활동입니다. 한층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다는 뜻입니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우선 자신을 지성적으로 튼튼하게 하는 일입니다. 모든 철학적 자산은 독립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철학을 통해 자신이 튼튼해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소득은 높은 시선입니다. 높은 차원의 활동성입니다.

 

이론은 사유가 아니라 사유의 결과물입니다. 철학적 사유는 자신이 직접 세계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철학적 사유는 기본적으로 세계를 사유하는 것이지 사유의 결과를 사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레고는 원래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할까?’라는 질문을 붙들고 있었는데, 철학적 질문으로 바꾼다면 아이들에게 놀이의 역할은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놀이란 무엇인가?’ 어떻습니까? 질문이 철학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겠죠?

 

학생 한명이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해서 [장자]를 추천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 학생은 두어 달 후에 장자를 읽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장자처럼 살아보려고 합니다.”라고 하였는데,

 

장자에 감명을 받고 나서 기껏 한다는 생각이 장자처럼 살아보는 일인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장자는 절대 누구처럼 산 사람이 아니네.” 철학자들은 누구도 다른 누군가를 닮기 위해서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시선으로 자기처럼 산 사람들입니다. 모두 자기처럼산 사람들일 뿐입니다. 장자는 기존 관념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새로운 관념을 생산하는 사람입니다. 관념의 지배를 받지 않고 관념을 지배합니다. 그래서 장자는 자신의 주인으로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慈悲)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그러나 행복, 인의, 자유, 사랑과 같은 덕목이 제대로 기능하는 사회의 높이가 바로 문화적이고 예술적이며 철학적인 단계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사유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한 사유의 결과들로 자신을 채우면, 그것은 노예적 삶이다. 철학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노예적 삶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독립을 이루는 여정에 나선다는 뜻이다.

 

 

독립적 주체는 불안을 편안함으로 바꾸려 하지 않고 불안 그대로를 감당합니다. 그대로 품어버립니다. 탁월한 높이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불안을 자초하거나 감당합니다.

 

자기가 선택한 길이 맞는 길인지 맞지 않는 길인지를 고민하기보다는 자기가 선택한 길을 스스로 맞는 길이라고 확신하고 견지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희망과 꿈을 실현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면 되는 것이지, 그것의 성공 여부에 대한 관심을 지나치게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은 결국 질문할 때에만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 고유한 존재가 자신의 욕망을 발휘하는 형태가 바로 질문입니다. 그래서 질문은 미래적이고 개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답은 우리를 과거에 갇히게 하고, 질문은 미래로 열리게 합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 가운데 가장 탁월한 능력은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서 유사성을 발견할 줄 아는 것입니다. 전혀 다른 것으로 간주되던 이질적인 것들에서 유사성을 파악한 후, 그 유사성을 근거로 상호 개발시켜 접속해보는 일이 연결입니다.

 

이런 활동을 총괄하여 은유라고 합니다. 연결은유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세계를 전략적으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다양한 방면에서의 승패는 자신을 이 몰입의 단계까지 집요하게 끌고 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좌우 합니다.

 

꿈을 꾸거나 꿈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우선 무모해야 합니다. 무모함을 감당할 배짱도 없이 꿈을 꾸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결국은 용기입니다. 꿈이라는 것은 우리의 뒤가 아니라 앞에 있는 것입니다.

 

능동적 주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기만이 자신의 주인이 된 주체를 말합니다. 자신이 하는 모든 판단과 행위가 모두 자기의 결정으로부터 나와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는 주체, 이 사람이 능동적 주체입니다.

 

태연자약(泰然自若)’에서 태연은 아주 크고 넓고 여유로운 모습입니다. 그리고 자약은 자기가 자기로만 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즉 외부의 어떤 자극에도 자신만의 흐름이나 결에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1994년에 성수대교 다리 상판이 붕괴되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 1995년에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져서 500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 2003년에는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때도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엉터리 타당성 조사 결과를 제출했던 전문가들은 지금도 어디선가 또 다른 타당성 조사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물론 비판과 비난은 풍성해도 성숙한 자발성과 책임성은 매우 빈약합니다.

 

카리스마는 발휘하는 게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드러나는 것입니다. 카리스마가 없다는 것은 내면의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구태여 카리스마를 가지려고 애쓰지 말고, 우선 자신이 이 지구라는 별에서 죽기 전에 하고 가야 하는 자신만의 사명을 발견하고 거기에 몰두하십시오. 그러면 월등한 내면이 갖춰지고, 그것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향기가 우러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카리스마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가족과의 조화보다는 나의 욕망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보다는 자신의 꿈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 가족과의 조화를 의식하면서 자신의 일을 시작한 인물이 있던가요? 그분들은 그분들의 지성의 높이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이지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려부터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지식과 경험이 증가함에 따라서 정말 자유로워졌는가? 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식과 경험이 주는 무게보다 나의 무게감이 작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지식과 경험의 무게보다 나의 무게를 더 크게 하는 것, 더 커진 자신의 내면을 가지고 지식과 경험을 밟고 서서 지배하는 것, 이것이 결국은 주체의 독립이자 성숙이라는 것입니다.

 

- 날씨가 갑자기 무척 더워지더니 어느덧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는 것을 느끼며~ 책 읽기를 마치고~

 

나만의 이야기만이 힘을 가진다!

 

첫째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 할 수 있어야 만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 내 삶에서 구체화될 수 없다면 그것은 가짜다. 거짓말이라는 이야기다.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나 책에서 읽은 많은 좋은 글들도 내 일상생활에 활용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둘째 이제 그만 배우고 나를 표현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해놓은 것을 배우는 데 나의 삶 전체를 바친다면 나의 삶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셋째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그 답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해답은 스스로 찾는 것이다. 그런데 남에게 답을 달라고 하는 순간 자신의 삶은 없어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