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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에 감동하는가

물조아 2014. 9. 24. 10:20

우리는 무엇에 감동하는가

 

감동(感動)을 국어사전에서는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이라고 푼다. 지난주엔 부산에서 전해진 찡한 사연에 많은 국민이 감동했다. 이름하여 ‘치매 할머니 보따리’ 사건이다. 주인공은 1948년생, 그러니까 만 66세의 여성 A씨다. 사실 요즘 66세는 할머니라 부르기엔 좀 이른 감이 있지만, 그래도 손녀를 보셨으니 할머니가 맞다.

 

 사연을 복기해 보자. 지난 15일 오후 부산 서부경찰서 아미파출소로 신고전화가 들어왔다. 112 신고가 아니라 파출소 일반전화로 한 여성이 제보했다. “부산대학병원 앞길에서 웬 할머니가 보따리를 들고 서성거린다”였다. 경찰이 출동해 순찰차로 파출소에 모셔왔다. 슬리퍼를 신고 계시길래 주변 주민일 것으로 생각하고 경로당 10여 곳과 주민센터·문화센터 등에 수소문했으나 허사였다. 한참 뒤 할머니가 자기 이름과 사는 곳(모라동)을 기억해 내고 경찰에 말해 주었다. 다시 부산하게 움직인 끝에 가족과 겨우 연락이 닿았다.

 

 여기까지는 흔한 사건이다. “부산 서부서 관내에서만 많을 때는 일주일에 3~4건이나 치매 노인 실종 신고가 들어온다”고 아미파출소 박헌중(49·경위) 관리주임은 말했다. 찡한 사연은 할머니가 들고 있던 보따리 두 개에 들어 있었다. 경찰이 가족에게 인계하러 할머니를 모시고 간 곳은 아미동에서 차로 30분 이상 걸리는 개금동의 한 병원. 할머니의 딸(38)이 제왕절개로 딸을 출산하고 입원해 있었다. 그리고 보따리 하나에는 이불, 다른 하나에는 밥과 미역국·반찬이 들어 있었다. 오후 8시 가까워서야 병실에 도착했으니 음식은 이미 다 식어 있었다. 딸의 산후 구완에 쓰려던 밥이요 국이었다. 딸은 말없이 눈물을 흘렸고, 간호사들이 사연을 듣고 기뻐하며 박수를 쳤다. 다음 날 부산경찰청 페이스북에 이 이야기가 실리자 누리꾼들이 다투어 댓글을 달거나 퍼 날랐다. 아미파출소에는 칭찬하는 시민들의 전화가 쏟아졌다. 전화뿐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달걀, 1회용 기저귀, 화장지, 라면, 음료수를 들고 물어물어 파출소까지 찾아왔다.

 

 팍팍한 세상. 비록 당사자에게는 안타깝고 그나마 천만다행인 해프닝이었지만,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위로를 얻었다. 어머니의 지극한 자식 사랑이 있고, 이제 누구에게나 남의 일이 아닌 치매 증세가 있고, 새 생명의 탄생이라는 경사에다 경찰관의 헌신적인 자세까지 겹쳐진 사연이다. 듣고 마음이 녹진녹진, 뭉클해지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다. 사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비슷한 일은 가끔 벌어진다. 지난달 22일에는 서울 남대문경찰서 태평로파출소 경찰관들이 행인의 신고를 받고 길 잃은 열한 살 아이의 집을 찾아주었다. 알고 보니 지적장애 3급이었던 꼬마는 자기 이름만 말할 뿐 부모 연락처와 사는 곳을 대지 못했다. 경찰관이 “짜장면 먹고 싶어”라는 아이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짜장면 배달해주는 중국집 전화번호 아니?”라고 묻자 전화번호 여러 개를 줄줄이 말하더란다. 그중 한 곳이 강서구의 중국식당으로 확인되었고, 덕분에 부모를 찾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서울경찰청 페이스북).

 

 수많은 개인의 감동은 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집단적인 감동이 제도를 바꾸고 사회를 낫게 만드는 위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도처에서 분출되는 감동을 민감하게 파악하고 변화의 그릇에 담아내는 일은 정치와 행정의 몫이다. 과연 우리 정치는 그런 역할을 다하고 있을까. 부산 치매 할머니의 경우 남편과 사별한 후 작은 주공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인지(認知) 장애를 안고 홀로 생활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식들이 있지만 가정마다 곡절이 있을 테니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 내가 따지고 싶은 것은 이름표나 실종 방지장치(배회 감지기) 같은 서비스가 왜 할머니에게는 제공되지 않았으며, 노인요양보험의 간병서비스도 받지 못하고 있었는지, 구청·시청은 그동안 무얼 했는지 하는 의문이다. 정치인과 관료에게는 감동의 이면에 깔린 문제점을 갈무리해 사회를 변화시킬 의무가 있지 않은가.

 

 이건 아파트 관리비(난방비) 비리 의혹을 폭로하다 폭행사건에까지 휘말린 배우 김부선씨 사례에도 해당된다. 한 여성이 외롭게 싸우는 동안 구청·시청, 지방의회, 경찰·검찰과 국회의원은 손 놓고 있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대마초 합법화 주장을 다시 꺼내지만 않는다면, 김부선씨를 지방의회 의원으로라도 추천하고 싶다. 다수의 잔잔한 감동을 잘 담아내 큰 변화를 이끌어내면 우리 국회도 감동을 넘어 환호와 환희를 불러일으킬 텐데,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짜증과 혐오만 자아내니 큰일이다. 제발 아미파출소 직원들만큼이라도 일을 해보라.

 

노재현 중앙북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