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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죽음의 공포 겪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물조아 2014. 7. 13. 07:16

[우종민 교수 인간관계 클리닉]

 

죽음은 삶의 종점이지만, 때로는 죽음이 삶을 새로 시작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암에 걸렸다가 잘 회복되어 건강하게 살고 있는 암 생존자가 벌써 백만 명을 넘어섰는데, 암 판정을 받고 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생활 습관이 180도 달라진다.

 

좋아하던 술 담배를 단번에 끊고, 유기농 음식을 찾으며, 소식을 실천한다. 잡곡으로 만든 주먹밥을 들고 다니기도 하고 체중도 착착 줄인다. 평소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변화이다. 이처럼 죽음의 공포는 삶을 아주 건강한 방향으로 바꿔놓기도 한다.

   

 

2009년 1월 미국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서 이륙했던 비행기가 새 두 마리 때문에 허드슨 강으로 추락했다. 탑승객들은 눈앞에 닥쳐오는 강물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며 죽음의 공포에 떨었다. 다행히 탑승객은 모두 무사히 구조되었는데, 앞자리에 타고 있던 릭 엘리아스라는 사업가는 이후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죽음의 가능성 앞에서 그는 몇 가지 일이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온 이민자였다. 성공하기 위해 가정은 뒤로 미루고 앞만 보고 살았다. 포도주 수집이 취미였는데, 주말에 친구가 놀러 왔을 때 공들인 컬렉션이 흐트러질까 봐 좋은 와인을 따지 못하고 창고에 모셔두기만 했다.

 

그 모든 순간이 후회스러웠다. 그는 결심했다. 살아나기만 한다면 더 이상 옳고 그름을 따지느라 행복을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그리고 다시는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않겠다고. 죽음의 공포가 가져온 변화였다.

 

병원에 근무하다 보면 갑자기 눈물이 복받치는 순간이 있다. 중환자실 앞에 모여든 환자들 가족 수십 명을 보면, 사고가 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만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낀다.

 

예전에 소아암 병동에서 근무할 때 머리를 빡빡 깎고 투병하는 어린 암 환자들이 병상에서 수학 숙제를 하고 학교 친구에게 편지 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날 당직실에 들어와 펑펑 울었다. 그래 내일 어찌 될지 몰라도, 오늘은 오늘을 살아야 하는구나. 그게 삶이구나.

 

사람들은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산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건강을 해치면 '아, 나도 담배를 끊어야지' '운동해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그건 잠시뿐 곧 잊어버린다. 죽음의 위기가 닥쳐서야 비로소 소중한 것을 챙기지 못했던 과거를 후회한다.

 

왜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을 미루고 살아가는가. 진짜 살고 싶은 삶을 계속 미룬다면, 살아남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렇게 사는 삶은 과연 내 삶인가 아니면 남의 삶인가.

 

지금 바로 필기구를 들고 종이에 적어보자.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고 가정하고, 오늘 하고 싶은 일을 적어보자. 가지런하게 적을 필요도 없고 예쁘게 적을 필요도 없다. 그림으로 그려도 된다. 그리고 그 목록을 살펴보자.

 

도보 여행, 텃밭 가꾸기, 사막에서 하룻밤 보내기, 커튼 바꾸기,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기 등 아마 거창한 일보다는 소소한 일들이 적혀 있을 것이다.

 

그 누구라도 죽음의 공포가 달갑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소중한 사람과 맺은 관계를 돌아보고 제대로 챙기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때로는 죽음이 삶을 바꿔놓는다. 그게 오늘이다. 끝.

 

우종민 |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