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책(冊)

"아버지도 사람이다" '영원한 청년 작가' 박범신의 외침

물조아 2013. 4. 25. 15:35

 

'영원한 청년 작가' 박범신의 외침, "아버지도 사람이다"

 

[독서신문 윤빛나 기자] ‘영원한 청년 작가’ 박범신이 40번째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등단 40년이 되는 해에 펴낸 작품이자, 『은교』 이후 홀연히 고향 논산으로 내려가 2년 만에 발표한 반가운 작품이다.

 

이번 작품 『소금』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아버지’다. ‘붙박이 유랑인’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그래서 ‘가출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라는 책 소개는 이 시대의 아버지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설명이다. 저자 역시 한국의 아버지이기에, 자전적 소설 아닐까 하는 궁금증을 지울 수 없다.

 

저자는 이 이야기가 특정한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온 ‘아버지1’, ‘아버지2’, 혹은 ‘아버지10’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소비의 ‘단맛’을 허겁지겁 쫓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 늙어가는 아버지들의 돌아누운 굽은 등을 한번이라도 웅숭깊게 들여다본 적이 있느냐”고 꼬집는다.

 

고향으로 돌아와 강의를 하는 시인인 ‘나’는 배롱나무가 있는 폐교에서 우연히 ‘시우’를 처음 만난다. 시우는 10년 전 자신의 스무 살 생일날 뒷모습을 보이며 사라진 아버지 ‘명우’를 찾아다닌다고 했다. 소설은 시우의 아버지가 왜 가족과 집을 버리고 나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시우의 아버지 ‘선명우’는 세 딸과 아내를 둔 대기업 상무다. 갈수록 씀씀이가 커지는 가족들이 힘에 부치던 찰나, 췌장암 선고까지 받는다. 그는 결국 가출해 혈연과 무관한 사람들과 가족을 이루며 새로운 행복을 찾는다. 책에는 월남전에서 다리를 잃은 아버지,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 아버지 등 다양한 우리 시대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가족들의 희망과 미래가 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과 떨어져야 했던 선명우, 그런 그의 가슴속에 언제나 있었던 세희 누나, 자식의 성공을 위해 염전을 하다가 소금 더께 위로 쓰러진 그의 아버지,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특별한 가족이 되는 함열댁과 신애와 지애, 그리고 아버지가 사라지고 세상의 무서움을 알게 된 시우, 아버지의 희생 덕에 컸지만 아버지가 되긴 두려운 나까지, 모두 ‘소금’을 통해 만나고 헤어지고 바뀌면서 인생을 알게 된다.

 

“아버지가 아버지이기 이전에, 선명우 씨로서, 그냥 사람이었다는 거 너무 늦게 알아차려 죄송하다”는 시우의 말처럼, 이 책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사람이며, 처음부터 부모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젊었을 적엔 사랑과 꿈과 추억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상 끝에 혼자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에 괴로워하는 아버지들의 희생을, 저자의 바람처럼 젊은이들이 『소금』을 통해 따스하게 곱씹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소금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사 펴냄 | 368쪽 |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