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사실 허상이다. 현실 세계의 그림자, 또는 바늘구멍이 만들어내는 일루전(illision), 환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상으로 만들어낸 이미지로 사람을 변화시킨다.
아름다운 사진 한 장에 즐거워지고, 세상의 그늘진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 눈물 흘리며, 활짝 웃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마음을 열기도 한다.
이처럼 허상을 가지고 실체인 세상과 사람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사진은 예술로서의 덕목을 지녔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진의 가치이자, 내가 사진을 하는 이유다.
빛을 통해 사람을 움직이는 길이 사진에 있고 나는 그런 점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즉 인문학의 해답을 찾는 길이 사진에 있는 것이다.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게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우리 주의의 익숙함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자기 주변에 있는 아름다움을 찾는 도구로 카메라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제1장 오래 보아야 아름답다
- 타인을 위한 사진에서 나를 위한 사진으로
사진은 자신이 본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좋은 도구다. 하지만 꼭 다른 누군가와 나누지 않아도 괜찮다.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한 도구, 인성을 개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런 목적에서 나는 사람들이 사진에 발을 들여놓을 때 자기 자신이 행복해지는 데서 출발하면 좋겠다.
구태여 사진으로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단계를 넘어 사진 그 자체로 내가 감동하고 바뀌는 단계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사진을 처음 배울 때는 사진가, 곧 셔터를 누르는 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진은 온전히 사람의 의도를 담아낸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의도한 것 너머의 것이 사진에 담길 때, 그 사진은 숨겨진 진짜 능력을 발휘한다.
우리 세상은 빛의 알갱이로 덮여 있다. 빛의 알갱이들이 모여서 우리 눈을 즐겁게도 하고 슬프게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사람은 모든 걸 볼 수 없다. 그러면서도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착각해버린다.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간혹 나타난다. 위대한 발견과 발명을 한 사람들, 세계를 위기에서 구하고 미래로 인도한 이들이 바로 그렇다.
사진을 찍는 사람 역시, 적어도 눈에 보이는 것 뒤에 숨어 있는 어떤 것을 궁금하게 여기는 호기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남들이 쳐다보지 않는 빛의 알갱이도 빨아들여야 한다.
- 꽃이 되었다.
아내의 꽃을 한두 번 카메라에 담으면서 나는 다른 세상을 발견했다. 별로 관심을 두지 않던 꽃을 찍기 시작하면서 자세히 관찰하게 되었다.
아내가 꽃을 집에 들여놓지 않았다면, 내가 사진을 하지 않았다면, 꽃을 찬찬히 관찰할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꽃을 보면서 감동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사진에 그렇게 꽃의 색이 스며들었다.
박완서의 소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오만가지 화초 중에서 으뜸가는 화초는 인화초(人花草)라던가?’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사람보다 아름아울 수 없다는 말이다.
최근에는 나도 종종 꽃을 산다. 빚 갚는 마음으로 열심히 사고 있다. 아내가 평생 꽃을 산 것은 꽃을 사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스스로에게 선물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아내 역할, 며느리 역할, 엄마 역할을 잘 해내는 자신이 기특해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주고 싶었단다.
관심을 갖고 본 적이 없으니 그 아름다움을 잘 담아낼 리 없다. 무지한 사진가인 나는 이렇게 사물과의 만남을 계기로 하나하나 배우고 바뀐다.
한 장의 사진으로 세상을 바꾸는 천재 사진가도 있지만, 나처럼 사진을 찍다 눈이 열리고 귀가 커지면서 내가 바뀐 결과, 나를 둘러싼 세상이 바뀔 수도 있다.
제2장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롭다.
- 물을 만난 꽃, 바람을 만난 물
의도를 넘어 우연이 아름다움을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것도 내 노력보다 더 아름다운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면,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 과정을 되풀이할 필요가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평생, 되도록 오랫동안 의미와 감미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아주 마지막에 열 줄의 성공한 시행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라 경험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듯이 말이다.
장소가 어디든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내용의 핵심과 구조를 보기 위해서는 겉모양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겉을 싸고 있는 껍데기가 얇고 가볍게 보일지라도 가장 무겁게 사물의 내부를 누르고 있다. 사진을 잘 찍으려면 대상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렌즈의 각도를 달리하며 오래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빛이 뻗어가고 확장해서 그 속에 숨겨져 있던 핵심과 구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 사진은 커뮤니케이션이다.
내게 인물 작업을 의뢰한 사람들은 증명사진을 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을 소재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라는 의도가 담겨있다.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주체가 제삼자인 사진가에게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찾아내달라는 것이다.
나아가 본인조차 모르고 있는 숨은 매력을 찾아내 감동시키라는 것이 인물 사진을 의뢰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인물사진은 어떻게 작업해야 좋은 사진이 나올까? 여기에 대한 해답을 나는 한 건축가의 인터뷰에서 찾이냈다.
캐나다 태생의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중에 건축이란 무엇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건물을 지으려는 고객들은 일종의 판타지를 갖고 있으며, 건축가는 그들의 의도와 기대를 알아내고 그 꿈을 실현시켜 주기 위해 열성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고, 그들의 기대를 120퍼센트 채워주는 것, 그래서 그들이 모든 과정을 즐길 수 있게 함으로써 그들과 함께 해내는 작업이다.
의뢰인을 감동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방법은 오직 하나다. 그들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방법밖에 없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오랫동안 지켜봄으로써 표면만이 아니라 내면까지 보일 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는 너무나 바쁜 나머지 사람의 내면은커녕 표면적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산다.
그러니 그 사람을 잘 안다고 하지만, 그 사람의 어디가 아름다운지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막상 인물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어떻게 찍어야 잘 나올지 감을 잡지 못하는 것이다.
인물사진은 사람이 무엇보다 귀한 걸 알게 되어야 완성된다. 그 사람의 장점과 매력을 점쟁이처럼 찾아내는 수준에 이르게 되면 그런 순간을 필름에도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예술로서 인물 사진의 완성이 아닐까 싶다.
제3장 작은 힘으로 세상을 흔들다
- 사진의 위험성과 사진의 진짜 힘
참혹한 전쟁 사진 한 장이 오래된 싸움을 끝낼 수 있도록 사람들의 뜻을 모으며, 아프리카의 가난을 생생하게 전달한 사진 한 장이 전 세계로부터 도움의 손길을 끌어낼 수 있다.
1994년에 아프리카에서 지속되는 기아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독수리와 소녀’ 사진은 퓰리처 상을 수상하며 세계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정작 그 사진을 찍은 작가는 소녀를 구하지 않았다는 비난과 함께, 그 자신이 아프리카의 끔찍한 현실을 기억에서 지우지 못해 자살을 택했다.
사진 한 장 한 장의 힘을 깨닫고 무엇을 찍어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지 진정 고민하게 되는 대목이다.
나는 사진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된 사람으로서 사진 영상의 역할을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팬이 무기보다 강하다고 했지만, 이제 펜과 무기를 아우르는 카메라를 다루는 사진가의 기준이 세워져야 할 때다.
- 사진으로 누군가의 가난을 훔치지 마라
나 개인적으로 몽골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으로, 가난한 그들의 모습보다 더 가난한 나를 발견했다는 점을 꼽겠다.
한 양로원을 방문했을 때 노인들이 찌그러진 그릇에 담긴 수프만을 한 끼를 때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식사하는 그들의 얼굴엔 신비로운 당당함이 엿보였다.
그 까닭을 나중에야 알았다. 국가에서 양로원에 지원하는 식비를 그들이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받는 이 혜택을 우리 아이들에게 베풀어주세요. 우리는 얼마 살지 못합니다. 그저 살던 대로 살다가 죽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살아갈 우리 아이들은 우리와 달아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우리의 식비를 써주세요.”
그렇게 그들은 가난한 한 끼를 선택했고 그들이 거부한 돈은 유치원을 짓는데 쓰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가난하지 않았다.
그 후 나의 시선은 바뀌었다. 함부로 누군가의 가난을 훔쳐선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들의 가난은 그들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방식이었고, 그들의 당당함이 돋보이도록 하기 위한 하늘의 배려였음을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저자 함철훈은 한 마디로 사진은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매체라고 했다.
빛을 통해서 사람을 움직이는 길이 사진에 있고 나는 그런 점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사진을 찍는 사람 역시, 적어도 눈에 보이는 것 뒤에 숨어 있는 어떤 것을 궁금하게 여기는 호기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장소가 어디든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내용의 핵심과 구조를 보기 위해서는 겉모양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겉을 싸고 있는 껍데기가 얇고 가볍게 보일지라도 가장 무겁게 사물의 내부를 누르고 있다. 사진을 잘 찍으려면 대상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사진은 자신이 본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좋은 도구다. 하지만 꼭 다른 누군가와 누주지 않아도 괜찮다.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한 도구, 인성을 개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우리 주변의 익숙함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자기 주변에 있는 아름다움을 찾는 도구로 카메라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사진을 찍는 건 쉽다. 하지만 좋은 사진을 만들기는 어렵다. 그러나 인문학의 해답을 찾는 길이 사진에 있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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