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책(冊)

탈무드 / 마빈 토케이어 지음 / 박인식 편역

물조아 2011. 6. 4. 22:15

탈무드 / 마빈 토케이어 지음 / 박인식 편역 / 육문사 1988.7

 

유태인들은 《탈무드》를 바다라고 부른다. 거기에는 인간의 모든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B.C. 200년 경부터 A.D. 500년 경까지 약 7백 년에 걸쳐 팔레스타인 및 바빌로니아의 학자들과 랍비들 사이에 연구와 토론을 거듭한 끝에 종합 정리되어 이루어진 책이다.

 

탈무드안의 일화나 격언은 읽기만 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머리를 써서 생각할 때에 비로소 탈무드의 가르침은 살아난다.

 

랍비는 유태교의 승려다. 그뿐 아니라 랍비는 유태인들에게 있어서는 때로는 교사이고, 때로는 재판관이며, 또 때로는 어버이가 되기도 한다. 탈무드는 읽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배우기 위한 것이다.

 

인생의 최고의 목적은,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추구하고, 평화를 오게 하는 일이다.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지식은 언제나 누구에게도 빼앗기는 일 없이 지니고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이때부터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육체와 정신, 어떤 일에 있어서나 둘의 힘은 하나의 힘보다 위대하다. 사람도 육체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으며, 정신만 가지고도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다. 육체와 정신이 힘을 합쳐야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할 수가 있는 것이다.

 

10이라는 숫자, 유태교의 예배당에서 기도할 때에는 열 명 이상의 사람이 있지 않으면 기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홉 명 이하의 수는 개인이다. 열 명 이란 수가 차야 비로소 집단이 되는 것이다.

 

공로자, 왕이 병이 들었다. 세상에서도 보기 드문 괴상한 병으로, 의사는 왕이 사자의 젖을 마셔야 낫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자의 젖을 어떻게 구하느냐가 문제였다. 그런데 머리 좋은 사나이가 있어, 사자가 살고 있는 동굴 가까이 가서 새끼사자를 한 마리씩 어미사자에게 주었다. 열흘쯤 지나자, 그는 어미 사자와 아주 친하게 되었다. 그래서 왕의 병을 고칠 사자의 젖을 조금 짜낼 수가 있었다. 돌아오는 도중, 그는 자기 몸의 각 부분이 서로 다투고 있는 백일몽을 꾸었다.

 

그것은 신체 중에서 어느 부분이 가장 중요하느냐에 대한 논쟁이었다. 발은, 자기가 아니었다면 사자가 있는 동굴까지 도저히 가지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눈은, 자기가 아니었다면 볼 수가 없어서 그곳까지 가지 못했을 거라고 주장하고, 심장은, 자기가 아니었다면 대담하게 사자에게 가까이 가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이말을 듣고 있던 혀가 주장했다. “아무리 그래야 내가 아니었다면 너희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을 거야.” 그러자 신체의 각 부분은 일제히 나서서 “뼈도 없고 쓸모도 없는 조그만 것이 까불고 나서지 마!”하고 욱박지르는 바람에, 혀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러던 중에 그 사나이가 궁궐에 도착할 무렵, 혀는 이렇게 말했다. “누가 제일 중요한지 너희들에게 알려주마.” 사나이가 왕 앞에 나아가자, 왕이 물었다. “이것은 무슨 젖이냐?” 그러자 사나이는 느닷없이 “네, 이것은 개의 젖이옵니다.”라고 대답했다. 조금 전까지 그처럼 혀를 몰아세우던 신체의 각 부분들은 그제서야 혀의 힘이 얼마나 강하다는 것을 깨닫고, 모두 혀에게 사과했다. 그러자 혀는 말했다.

 

“아니옵니다. 제가 말씀을 잘못 드렸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자의 젖이옵니다.” 이야기는 중요한 부분일수록 자제력을 잃으면 엉뚱한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바탕이 나쁜 사람은, 이웃 사람의 수입에는 신경을 쓰면서 자기의 낭비는 마음에 두지 않는다. 

친구가 화났을 때에 달래려 하지 말고, 슬퍼하고 있을 때에 위로하지 말라.

 

자식들이 어릴 때에는 엄하게 꾸짖고, 자란 후엔 꾸짖지 마라. 자식들은 엄하게 가르쳐야 하지만, 두려워하게 해서는 안 된다. 자식을 꾸짖을 때에는 한 번만 따끔하게 꾸짖으라, 질질 끌면서 꾸짖어서는 안 된다.

 

자녀는 아버지가 다른 사람과 논쟁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의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 자녀가 아버지를 존경하고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것은, 아버지가 그들을 위하여 먹을 것을 구해 오고, 그들에게 의복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어린이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백지에 무엇을 쓰는 것과 같다. 노인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이미 글자가 가득히 씌어 있는 종이에 여백을 찾아 써 넣으려는 것과 같다.

 

판사는 반드시 진실과 평화의 두 가지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진실만을 쫓는다면 평화는 깨어진다. 그러므로 진실도 잃지 않고 평화도 지킬 수 있는 길을 발견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타협이라는 것이다.

 

손, 인간은 태어날 때에는 주먹을 쥐고 있지만, 죽을 때에는 주먹을 편다. 왜 그럴까? 태어날 때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움켜쥐려 하기 때문이고, 죽을 때에는 모든 것을 뒤에 남은 사람들에게 주고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기 때문이다.

 

학자, 모든 재산을 팔아서라도 딸을 학자에게 출가시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또 학자의 딸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모든 재산을 잃어도 좋다.

 

거짓말, 어떤 경우에 거짓말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가? 첫째 누가 이미 물건을 산 다음 의견을 묻거든 설사 그것이 좋지 않은 물건일지라도 좋은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라. 둘째 친구가 결혼을 했을 때에는 반드시 “정말 미인이군, 행복하게 살게!”하고 거짓말을 하라.

 

기독교도는 기독교를 믿음으로써 기독교가 되지만, 유태인은 그렇지 않다. 오직 행동만이 유태인을 유태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유태인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므로 유태인에게 있어서 성서는 하나밖에 없다. 유태인에게는 구양성서가 성서인 것이다.

 

유태인들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천주, 그리스도, 마리아 등등의 많은 신성을 띤 신들을 갖고 있는 기독교는 유태인들에게는 다신교에 지나지 않았다. 유태인에게는 하나님만이 유일신인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 걸쳐 살고 있는 유태인은 2천만도 안 된다. 겨우 1,300만이 좀 넘는 정도이다. 이 가운데 280만이 유태 민족의 오래고도 새로운 조국인 이스라엘에 살고 있으며 나머지는 온 세계에 흩어져 산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에게 파는 것은 상술이 아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파는 것이 상술이다.

 

사람들은 랍비가 길가로 나와서 설교를 하는 것보다는 10달러를 주는 쪽을 훨씬 더 좋아한다. 누구나 돈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의 하나는 돈 걱정을 하는 것이다.

 

부자가 되는 방법이 하나 있다. 내일 할 일을 오늘 하고, 오늘 먹을 것을 내일 먹으면 된다.

부자가 굶주리는 것은 어떤 때인가? 그것은 의사가 단식을 명령한 때이다.

 

자신의 결점을 찾는 데에 항상 열중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남들의 결점은 보이지 않으며, 남의 결점을 찾는 데에 열중하고 있는 자는 자신의 결점을 보지 못한다.

 

인간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은 소홀히 하면서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한다.

 

사람은 책으로부터 가장 많은 지식을 얻는다. 사람에 따라서는 공부하는 데에 너무 지나치게 시간을 소비하여 진실을 알 여가가 없다.

 

책을 읽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리 읽어도 나귀(어리석은 자)가 책을 잔뜩 싣고 돌아다니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사람을 빨리 늙게 하는 네 가지 원인은? 공포, 분노, 자녀, 악처.

어리석은 자에게는 노년은 겨울이지만, 현자에게는 노년은 황금기이다.

사람이 바꾸고자 하여도 안 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자기 부모이다.

 

훌륭한 사람이 아랫사람의 말을 듣고, 노인은 젊은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세상은 축복받을 것이다.

 

연애가 아무리 멋지더라도 테니스에는 도움이 안 된다. 사랑은 잼처럼 달지만, 빵이 없이 그것만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다.

 

나귀는 긴 귀로 분별할 수가 있으며, 어리석은 자는 길쭉한 혀로 분별할 수가 있다. 즉 어리석은 자의 혀는 날름거리면 날름거릴수록 길어진다고들 하는데, 아무리 날름거려도 어진 자가 이야기할 때와는 달라서 아무 의미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술집에 간다고 해서 선인이 악하게 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예배당에 간다고 해서 악인이 고쳐질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정해진 날에는 꼬박꼬박 예배당에 다니는 경건한 신자인뎁쇼.” “여보게, 동물원에 매일 간다고 해서 사람이 동물이 되는 건 아니잖은가.”

 

매일, 오늘이 그대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 매일 오늘이 그대의 첫 번째 날이라고 생각하라. 즉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인간은 그 날을 가장 충실하고 풍성한 열매가 맺히는 하루가 되게 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리고 최초의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힘차고 신선한 하루를 보내려고 할 것이다.

 

식사는 자기 기호에 맞추고, 복장은 사회의 풍조에 맞추어라. 즉 누구든 남들과 같은 생활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 강하다.

 

살고 있어도 사는 맛이 없는 인생이 셋 있다. 첫째로 남의 동정으로 살고 있는 인간, 둘째로 아내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는 인간, 셋째로 항상 육신에 고통을 느끼고 있는 인간이 그것이다. 《탈무드》 '1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