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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석 칼럼] '정치인에 의한' '정치인을 위한' 개헌?

물조아 2011. 1. 29. 07:36

"대선·총선 전망 놓고맞춰보는 개헌 퍼즐

애국심은 '헌법에 대한 믿음'이란 말 되새겨봐야"

 

10년 만의 강추위가 분명하다 생각하고 전화를 돌렸더니, 그게 아니란다. 작년 겨울 1월 16일까지의 서울 평균 기온이 섭씨 영하 7.55도, 올해가 영하 6.75도라는 것이다. 올겨울이 작년보다 따뜻했다니 도시 믿기지 않는다. 이게 뒤집힌 건 그 후 열흘간의 바짝추위 동안뿐이라고 한다. 온도계가 거짓말 할 리 없다. 기억이 틀린 것이다. 기억의 원근법(遠近法) 탓이다. 원근법은 가까운 것은 크고 짙게, 먼 것은 작고 옅게 그리는 그림 기법(技法)이다. 기억에도 원근법이 작용한다. 여기 걸리면 작년이 추웠느냐 올해가 추웠느냐를 혼동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 안에서 모두가 함께 겪었던 고통과 기쁨의 강도(强度)와 순서까지 헷갈리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요즘 꿈틀대는 개헌 논의에도 그런 요술의 그림자가 너울댄다.

 

대통령은 개헌을 권력구조에만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다 보면 정략적으로 비칠 수 있으니 더 중요한 기본권 조항도 같이 논의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역할의 재정립, 기후변화, 남녀평등, 남북관계 대비책도 검토 대상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개헌 전령사(傳令使) 이재오 특임장관은 대통령 4년 중임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분권형 대통령제 등 모든 논의가 가능하다고 개헌 마당을 한껏 넓혔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지방단체장·의원의 임기 불일치로 빚어지는 잦은 선거의 폐해도 이참에 걸러내야 한다는 소리도 나왔다. 이만하면 현행 헌법의 문제점은 다 짚은 셈이다.

 

다음 단계는 이런 문제가 당장 개헌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야 할 만큼 절실한지 여부를 가리는 것이다. 절실성(切實性) 테스트는 헌법 때문에 누가 얼마나 고통을 겪고 있으며, 개헌만 하면 그 고통이 해소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일이다. 헌법에 걸려 쩔쩔매고 있는 국민은 없다. 부풀려 얘기해야 불편해하는 정도다. 그것도 대부분 대통령·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 선거판이 해마다 벌어지는 게 국력 낭비라는 걱정이다. 경제 양극화와 인사 편중으로 사회의 골이 더 깊게 파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도 없지 않지만 그걸 헌법과 직접 연관 짓는 건 무리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국민 기질(氣質)에 개헌 요구 시위나 개헌 서명 운동을 벌여도 몇 번은 벌였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개헌 논의는 '정치인에 의한', '정치인을 위한' '정치인의' 개헌 논의라는 혐의를 벗기 힘들다. 정계엔 그럴 법한 요인들이 깔려 있기도 하다. 우선 다음 대선(大選) 전망이 그렇다. 박근혜 전 대표가 30% 후반의 지지도로 혼자 앞서 나간 지 오래다. 야당 주자들 지지도를 모두 합쳐봐야 박 전 대표의 절반에나 턱걸이할 수준이다. 그러나 총선은 사정이 또 다르다. 물론 엄살이 섞였겠지만 한나라당 안에 이러다간 총선에서 서울·경기 중부권은 전멸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도 가끔 오간다고 한다. 에누리하더라도 야당으로선 대선보다는 총선이 해볼 만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대선 전망을 거북스러워하는 여당 내 세력과 총선 흐름에 기대를 거는 야당 내 세력을 묶을 이익의 공약수(公約數)를 더듬어 본다 해서 이상할 건 없다. 국회의 다수 세력이 국무총리를 맡는 이원집정부제나 그와 흡사한 분권형대통령제·의원내각제가 거론되는 데선 뭔가 더듬듯 하는 손길이 느껴지기도 한다. 여당의 개헌 말걸기에 "때가 이미 늦었다"고 답(答)한 야당 일부의 반응도 듣기 따라선 묘한 울림이 있다. 그러나 무슨 이변이 생기지 않는 한 박 전 대표가 대통령 중임제를 덜컥 삼킬 리 없을 테고, 야당 역시 호시탐탐(虎視眈眈)하고 있는 노무현 사단의 눈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라서 운신하기 쉽지 않다. 그럼 개헌 도상(圖上) 연습은 결국 연습으로 끝나고 만다.

 

1994년 미국에서 애국심(patriotism)을 주제로 놓고 학계 대토론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애국심이란 '헌법에 대한 믿음(Constitutional Faith)'이라고 간단명료한 정의(定義)가 내려졌다. 이걸 기준으로 치면 우리 정치인들은 애국심 부족이란 질책을 면하기 어렵다. 헌법을 계절 따라 바꿔 입는 양복 취급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헌법 갈피갈피에는 장기 독재에 맞서 흘렸던 국민의 피와 땀, 혼란스러운 내각제 시절에 내쉬던 한탄과 한숨의 나이테가 오롯이 새겨져 있다. 기억의 원근법에 휘둘려 그 역사를 잊은 채 오늘 당장 불편하다고 걸핏하면 개헌 문제부터 굴리려 드는 건 아닌지 한번 되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강천석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