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쉴 수 있어 (感謝)

[장명수 칼럼/1월 14일] 폭언의 계절

물조아 2011. 1. 14. 06:46

8일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에서 20대 청년이 총기를 난사해 민주당 하원의원이 중상을 입고 연방 판사 등 6명이 사망했다. 그 충격적인 사건으로 미국이 발칵 뒤집힌 가운데 '독설의 정치'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최근 건강보험 개혁 등을 놓고 극단적으로 대립해 온 진보와 보수의 싸움, 특히 일부 공화당 의원들의 원색적인 공격이 이 같은 참사를 불렀다는 주장이 논란의 불씨가 됐다. 미국에서 현역의원이 총격을 받은 것은 1968년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 사망 사건 이후 40여 년 만의 일이다.

 

머리에 총알이 관통하는 중상을 입은 가브리엘 기퍼즈 연방 하원의원은 민주당의 차세대 유망주로 꼽히는 3선의 여성의원인데, 작년 3월 건보법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진 후 사무실 유리창이 박살 나는 등 반대자들의 공격을 받아왔다. 그리고 공화당의 세라 페일린은 기퍼즈 의원의 지역구를 지도에 과녁 모양으로 표시하면서 "퇴각하지 말고 재장전하라"고 소리치는 대표적인 공격수였다.

 

NYT와 WSJ의 대리전

 

진보 측 소리를 대변하는 뉴욕타임스(NYT)는 9일자 사설에서 "나라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여 이런 종류의 분노를 야기한 공화당과 극성 지지자들은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했고, 이 신문의 고정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진보 논객들도 공화당을 공격하지만 일부 보수 논객들처럼 정부 인사들을 총으로 쏴야 한다는 식의 농담을 하지는 않는다"고 썼다. 보수지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자 사설에서 "이번 사건은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어떤 정치적 동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문제가 있는 자의 소행일 뿐이다. 이런 미치광이들이 정치인에게 총을 쏠 때마다 우리가 정치문화를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격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두 신문이 진보와 보수의 대리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애리조나 사건의 범인에 맞는 말인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정치인들의 독설과 폭언이 어떤 사람들을 자극하여 폭력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은 맞는 주장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TV의 '스타 독설가'들의 자성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지만, 자극적인 논평을 좋아하는 당파적인 시청자들이 있는 한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더 위험하다. 우리나라가 만일 총기 소지가 자유로웠다면 극단적인 지지자들이 정치인들의 독설에 자극 받아 어떤 사고가 일어났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폭언 수준은 '독설'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아까울 정도로 저질인 경우가 많다. 최근의 폭언들만 해도 밥맛이 떨어진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얼굴 표정, 입이나 눈까지 보기 싫어진다.

 

정치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유머를 구사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폭언을 유머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여야가 서로 비난과 공격을 주고받더라도 그것을 보는 국민들이 때로는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폭언은 폭력을 부른다

 

유머라면 영국의 예를 많이 드는데, 최근 토니 블레어에 관한 책을 읽으며 웃음이 터진 구절이 있다. 블레어의 정치 선배인 로이 젠킨스 하원의원이 쓴 정치평론에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한다. "토니 블레어는 옥스퍼드 출신이지만 두뇌는 2급이고, 성질 고약한 걸로는 1급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머리가 2급이라는 것만 기억한다." 또 이런 논평도 있다. "블레어는 영국 푸딩과 같아서 처음 먹을 땐 달지만 곧 메스꺼워 진다." 이라크 전 참전 결정으로 얻은 '부시의 푸들'이란 별명과 푸들 만화 시리즈도 재미있다. 아마 블레어 자신도 웃음이 날 것이다.

 

정치인들, 특히 국회의원들은 우선 영국 정치인들의 유머집을 구해서 읽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폭언이 얼마나 국민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지 알아야 한다. 폭언은 국민을 등돌리게 하는 특효약이다.

 

장명수 본사 고문 /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