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책(冊)

니체 최후의 고백(나의 누이와 나)

물조아 2010. 4. 27. 11:21

니체 최후의 고백(나의 누이와 나)/프리드리히 니체 지음/이덕희 옮김/작가정신 ‘99.8.5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니체의 이 너무나도 유니크하고 난삽한 저작을 우리말로 완벽하게 옮긴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 그러나 그 당시 니체의 절규가 내겐 대지진과 같았고 내 속에서 세계가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주었다는 진실은 결코 소멸되지 않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니체를 ‘시인 철학자’ 또는 ‘삶의 철학가’라고 부르고 있는 것처럼~ 고트프리트 벤은 “중략~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니체는 가난하게, 오점 없이 순수했고, 위대한 수난자이며 대장부였다. 더욱 부언한다면 우리의 세대에서 니체는 시대의 지진이며 루터 이후 독일말의 가장 탁월한 천재였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일곱 살이라는 거짓말 같은 어린 나이에 나는 이미 어떠한 사람의 말도 내게 도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는 니체의 고백을 읽었을 때 나를 사로잡은 감격이 어떠했던가를 표현할 말을 나는 모른다.

 

오오, 나의 신(神)루여!

그녀의 엄격한 훈련이 없었던들 내가 처음으로 하나님은 죽었고 그래서 우리는 존재의 무의미한 혼돈인 현기증 나는 ‘공허’속에 갇히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의 천재는 틀림없이 일찌감치 시들어버렸으리라. ~ 내겐 신성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비록 나의 어머니와 누이라 할지라도!……

 

‘사랑’은 우주의 심장 가운데 존재하는 것이라는 톨스토이의 견해는 언제나 내 속에서 요란한 폭소를 터뜨리게 했다. 이제 그 폭소는 바로 내 위에 떨어진다.

 

나는 정녕코 나의 자랑스런 고독을 소중히 여긴 것은 아니었다. - 나는 내가 신의 죽음을 목격한 이 세계의 공포로부터 나를 구제해줄 수 있는 여성의 사랑을 열렬히 갈구했다. ~ 그러나 나는 하나님도 가지지 않았거니와 하물며 단 한 사람의 벗도 없다! 사랑이 태풍과 더불어 불어와 루 살로메는 온갖 구름을 깡그리 휩쓸어 날려버렸다.

 

내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삶을 위해 투쟁했던 것처럼 지금 나는 생존이라는 바로 그 생각에 벌벌 떨면서, 그러나 ‘낮’의 밝음 속으로 뛰쳐나가려는 갈망에 아직도 몸부림치며, 그때와 꼭 같은 눈먼 공포를 가지고 삶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사람은 취해 있는 동안은 살아갈 수가 있다. - 술에, 여자에, 또는 이상이나 메시아적 열정에 취해 있는 한, 그리하여 나의 디오니소스적인 갈증 속에서 나는 온갖 것에 도취되었었다. - 다윈의 원숭이 세계와 그 밖의 실증론자들에게조차도,

 

그러나 내가 불교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라. 그리고 죽음에 취하지 않도록, 무(無) 속으로 빠지는 관념은 나를 소름끼치게 한다. 영원성의 얼어붙는 공포로써 나를 압도한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억만 년 동안을 잠자면서 산 위로 떠오르는 새벽을 결코 다시는 볼 수도 없다니…… 다시는 결코……

 

어머니의 수절은 누이와 나의 불행이었다.

그대 주위를 둘러보라. 만물은 그의 존속을 위해 투쟁하고 있지만, 그러나 생명과 성장의 능력을 부단히 향락하고 있는 것이다. 오로지 인간만이 의식적으로 악의를 증진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는 유일한 조직적 현상이 아니냐.

 

부에 대한 사랑과 지식에 대한 사랑은 지상을 움직이는 두 개의 힘이다. 그리고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은 언제나 반드시 다른 사람으로부터 빼앗은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생애엔 네 사람의 여성이.

내가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 대부분 친지이지만 - 나보다 오래 살 것이라 기대했는데 - 죽어간 걸 보면 하나님은 한 그루 시들어가는 월계수를 돌보는 편이 더 나은 모양이다.

 

아아, 오레스테스여.

아아, 이피게네아여, 이피게네아여, 신들을 두려워 말라, 왜냐하면 신들은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것이므로 - 우리는 우리가 무서워하는 신들이니, 바로 자기 공포로부터 광기가 솟아나는 것이다. 이 비극적인 불화란 우리 자신에 거역해서 분리되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데 있다. ~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운명을 지키는 수호신이니, 나는 너의 운명이요. 너는 또한 나의 운명인 것이다.

 

열다섯 살 때 나는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썼다. “지식의 영역은 심원하고, 진리의 탐구는 영원하다.”

 

마침내 들켜버린 누이와의 관계

“너는 내가 네게 말해야만 하는 걸 조용히 앉아서 들으려면 있는 용기를 다 짜내야만 할 게다. ~ 프리츠, 왜 그러냐 하면 내가 너한테 말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 너는 가만히 있을 만큼 현명하구나, 프리츠. ~ 나는 아직도 널 사랑한다. 프리츠. 게다가 난 너한테 높은 희망을 걸고 있단다.

 

만약에 그대가 플라톤을 순수한 재미로 읽을 수가 없다면 모든 대화의 행간에서 그대에게 다음과 같이 고함치는 수업을 위해 그를 읽으라. “오로지 하나의 세계만이 존재하는 법이니, 그것은 인간의 경험의 세계로다.”

 

정열은 미래로 가는 수단인 희망의 신분증명서이다. 정열은 우리들의 욕망이 지닌 저 엄청난 덧없음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패이다.

 

지식은 애초엔 생활에서 유래한다. 제2차적으로 지식은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결론의 탐구에서 나온다. 얇은 수의 한 벌만이 우리가 우리와 더불어 최종적으로 무덤 속에 가져가는 전부이다.

 

내 사후 50년 뒤 나는 하나의 신화가 되리라.

나는 주님의 자리에다 나 자신을 대신 앉혔기 때문에 불경스런 자부심광이라고 비난받았다. 그러나 사실상 나의 광적인 자부심은 나 자신의 열등감을 관찰하는 쪽의 역할을 하는 까닭에 나는 자만심을 지닌 극도로 겸손한 사람이다. 

 

아아, 나의 실낙원 루여.

괴테는 “인간은 높은 것을 지향해야 한다. ~ 불가능한 것을 할 수 있는 자는 오로지 인간뿐이다.”

 

민주주의 철학을 루터 자신은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진행은 - 수천 명의 사람들이 떼를 지어 공장과 광산에 몰려들어 기계의 위력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인간의 결속력을 강하게 느끼는 한, 결코 멈추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오, 루, 나의 연인이여, 하프와 하프 줄은 사라졌다. 그러니 대체 누가 나를 위해〈삶의 노래〉를 탄주해주겠는가? 그 누가 저 춤추는 별의 지복까지 춤출 수 있도록 내 발 속에다 천상의 리듬을 일깨워주리오? 오오, 내 잃어버린 가인이여 - 나의 상실된 낙원이여!)

 

“나는 나 자신의 소유예요!”라고 루 살로메는 외쳤다. “나는 남자든 여자든 하나님이나 악마 혹은 국가든, 어떤 것의 명령에도 굴복하지 않겠어요.”라고~ “거리의 여인이나 찾아가세요. 상호 이해와 사랑이란 바탕 위에서가 아니면 당신은 나를 가질 수가 없단 말이에요!”

 

유감이지만 나는 그녀를 너무나 잘 이해한다. 모든 인간은, ~ 나 자신만이 아니라, 누구나 다 신(神)이다.

 

독일 전설에 나오는 유령이나 도깨비 그리고 꼬마귀신들보다 더 질색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이네는 말했다. 루터처럼 내 마음도 일찍이 유년시절부터 이들 때문에 해독을 입었었다. 독일인의 상상력에서 나온 지긋지긋한 악마들이 출몰하는 세계에 갇혀서 나는 우리가 어떤 도덕적 자유도, 정신적 자율성도 갖지 않았다는 루터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루와 더불어 나는 통속에서 살련다.

“하지만 만약에 우리가 함께 살 수 없다면 대체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함께 사는 것은 더불어 사랑하는 것이다. - 이건 ‘존재’의 위대한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이 아닐까?

 

“사물은 현실에서 멀어지면 그럴수록 훨씬 더 순수하며, 보다 아름답고 선하다. 유일한 가능성은 예술 속에서 사는 것이다. 삶이 가능한 것은 오로지 그 심미적 환영 덕택이다.” 우리들의 삶 위에 영원성의 도장을 찍자. 우리가 거듭 살기를 바랄 수 있는 삶을 살자. 이것이야말로 나의 신조인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내일을 뒤따르는 모든 어제들도 역시! 끝. '10.12.20  '12.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