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책(冊)

디지로그 선언/ 이어령/ 생각의 나무

물조아 2010. 2. 4. 13:13

이 책에서 사용되는 디지로그라는 용어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합쳐 새롭게 만든 말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라는 말은 전자공학에서 쓰는 기술용어보다 좀더 넓은 IT전반의 문명현상을 담고 있는 키워드이다.


○ 한국인은 무엇이든지 먹는다. 제상은 파라볼라 안테나 홍동백서와 어동육서의 방향으로 진설된 제상의 음식들은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기호이며 산 자와 죽은 자의 벽을 넘나드는 영혼의 문법이다.


도라지 같은 흰 뿌리 나물은 조상님을 뜻하고 고사리 같은 검은 줄기 나물들은 현세(現世)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나타낸다. 그리고 미나리 같은 푸른 이파리 나물은 앞으로 태어날 후손을 상징한다. 제상은 과거 현재 미래로 흘러가는 시간의 강물인 것이다.


파라볼라^안테나(parabola antenna): 전파의 반사면에 포물면을 사용한 지향성 안테나. 전파를 일정 방향으로 집중하여 송수신할 수 있으며 마이크로파 중계나 위성 방송의 수신 따위에 쓴다.


○ 초고속 인터넷 광케이블이 깔려 있는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벽 하나 사이를 둔 이웃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른다.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일인가. 천리 밖 소식을 TV와 인터넷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우편물이 쌓인 것을 보고서야 독거노인의 사망을 아는 것이 현대인의 아파트 문화이다.


“한인(韓人)은 한 손으로 먹고 양인(洋人)은 양손으로 먹는다.”는 농담이 있다. 중략~ 그래서 한때 쇠젓가락으로 콩알을 집어먹는 한국인의 손재주가 줄기세포를 만드는 원천기술이라고 자랑한 적이 있었다. 젓가락이 상호의존성과 관계를 중시하는 배려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면 포크와 나이프는 개체의 분리를 기본으로 하는 독립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 할 수 있다.


○ 정보의 최종가치는 정보 자체의 품질보다는 그것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로 결판이 난다. 물질로 된 제품은 품질로 승부를 한다면, 정보통신은 믿음으로 승패가 결정 난다.


정보가 누설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정보를 물로 생각하는 사람이고, 정보를 캐오라고 하는 사람들은 정보를 노다지와 같은 광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정보가 깜깜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보를 빛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보는 물도 광석도 빛도 아니다. 그것은 정이며 믿음인 것이다.


○ 선택할 수밖에 없다. 둘이 있으면 하나를 버리고 셋이 있으면 둘을 버릴 수밖에 없다. 아날로그인가 디지털인가. 인간 문명은 선택에 따라서 좌우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러기로 상징되는 디지로그형 새로운 정보사회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 196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필리핀을 방문하여 마르코스 대통령을 만났을 때 한국이 귀하의 나라처럼 잘 살게 되는 것이 우리의 꿈이라고 말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시골 토담에 필리핀 신부를 소개하는 벽보가 어디를 가도 붙어 있지 않은 곳이 없다.


미국과 북한이 전쟁을 하면 누구 편에서 싸우겠느냐는 앙케트에는 북한편에 서서 싸우겠다고 하면서, 북한에 가서 살겠느냐는 물음에는 한 사람도 그러겠다고 입을 열지 않는 젊은이들의 나라.


○ 겨울은 귀로 듣고 봄은 눈으로 본다. 겨우내 방 안에서 문풍지 소리만 듣다가 창을 열고나서면 일제히 들판은 초록색으로 변하고 검은 나뭇가지에는 현란한 꽃들이 핀다. ○ 인간은 책을 만들고, 책은 인간을 만든다.


○ 살린스는 인간이 풍요에 이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증대하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생산성을 계속 향상 시키는 것과 반대로 욕구 자체를 최소화해 적은 물질을 가지고도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 마주보고 달려오는 두 열차, 한국인들의 행동양식은 언제나 극단으로 치닫는 것같이 보인다. 머리띠를 두르고 결사반대를 외치는 여당과 야당의 싸움을 보고 있는 외국인들은 양쪽에서 마주보고 달려오는 열차를 보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부딪치기 직전 그 열차들은 서로 교차하면서 빠져나간다. 그 선로는 단선이 아니라 복선이었던 것이다.


○ 대체 어느 나라가, 그것도 반쪽 난 민족이 불과 한 세대 동안에 농경, 산업 그리고 정보의 세 문명을 한꺼번에 뛰어넘은 적이 있었던가. 중략~ 한국인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한국의 아날로그 문화가 디지털과 만나면서 날개를 달고 로컬의 벽을 뛰어넘는 힘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무엇인가 얻기 위해 반드시 자기 것을 내줘야 하는 것이 ‘트레이드 오프’의 법칙이다.


○ 《뉴욕타임스》의 칼럼리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의 최근 저서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에 따르면 글로벌리제이션은 3단계로 이루어진다. 서구의 경우, 제1단계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1492년에 시작하여 1800년대까지 국가나 민족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리제이션이 이루어진 시대이고,

 

제2단계는 2000년까지 경제통합이나 다국적기업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리제이션이 이루어진 시대이다. 그리고 마지막 제3단계는 2000년 이후 개인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리제이션으로, 인터넷의 디지털 파워로 세계가 좁아지고 개인이 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 시대이다.


○ 초고속망만 깔았다고 해서, 인터넷 인구가 3천만 명을 넘었다고 해서 지식정보사회가 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식정보의 신 개념은 독점보다는 나눔이, 경쟁보다는 협력이, 그리고 폐쇄보다는 개방이 우선해야 한다는 데서 생겨난다. 그리고 그것은 시장의 가격이 아니라 마음의 가치를 먼저 생각하는 시스템의 인식이다.


○ 어려운 문제는 뒤에 풀어라, 정보시대의 아이들은 클릭 하나로 삶의 문제를 씹지 않고 삼켜버린다. 특히 OX식 시험문제를 풀 때 어려운 것은 뒤로 미루고 쉬운 문제부터 풀어야 점수가 잘 나온다. 그런 요령을 잘 터득한 학생일수록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되고 훗날 사회에 나와서도 국가의 요직을 차지하게 된다.


○ 아날로그인가, 디지털인가, 아니면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융합한 디지로그의 길인가. 선택인 아닌 창조로~ ○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기술과 그 문화적 차이가 무엇인지 정의부터 하려 들지 말자. 디지로그의 뉴파워가 무엇인지 성급하게 물으려 하지도 말자. 인생은 무엇인가라고 정의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중략~


무엇인가를 능률화하고 효율화하기 위해 둘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하여 그것을 극단화한 것이 지난 20세기의 정책이었다. 이러한 배제의 관념 속에 살아온 우리는 아이를 보아도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 라는 양자택일적 질문을 해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선택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 둘이 동시에 있을 때 완전한 삶을 이루는 존재이다. 그것을 비교하고 선별하고 그중 하나를 배제하려고 한 것이 지난 세기의 이항 대립적 패러다임이었고, 그것이 확대된 것이 20세기의 전쟁이요 냉전이었다.


○ 왜 아침은 이렇게도 아름다운가. 아직 그 빛 속에 어둠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저녁노을은 왜 이렇게도 아름다운가. 다가오는 어둠 속에 아직 빛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이 엇비슷하게 존재하는 아름다운 세상. 그것이 한국인이 오랫동안 참고 기다렸던 그 공간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만나는 기분 좋은 시간, 한국인의 시간이다.


○ 이 지상에는 우리보다 잘사는 사람들이 많지만 “남의 나라 가슴에 못 박지 않고서도 이만큼 사는 나라가 있는가. 디지털 강국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길은 첨단기술과 한국 문화를 융합하는 디지로그의 동력에서 나온다.”


디지로그(digilog)는 디지털(digital)과 아날로그(analog)의 합성어로 둘을 합쳐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 새로운 트렌드를 이루는 현상을 말한다. 기본적으로는 아날로그 시스템이지만 디지털의 장점을 살려 구성된다.

 

IT산업의 발전과 함께 나타난 대립구조들을 신 개념으로 다시 구축하려는 시도들이 많은데, 전자펜으로 화면에 직접 문서를 쓸 수 있는 PC, 휴대전화에 들어있는 강아지 기르기 프로그램 등이 이에 해당한다.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이 더욱 발전할수록 아날로그적 행태가 디지털 사회를 더욱 풍부하게 해 준다는 인식이 생겨나고, 첨단 외양에 인간적인 느낌이 담긴 상품에 관심과 수요가 증가하게 되어 디지로그 제품이나 서비스, 시스템은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10.12.19  '12.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