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책(冊)

사랑을 배우며 삶을 배우며 / 신달자

물조아 2010. 2. 28. 02:01

사랑을 배우며 삶을 배우며/신달자('45.12.25)/문성당 ‘91.8.25


글은 혼자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작은 몸짓입니다.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혹은 ‘너와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를 만들기 위한 작은 몸짓입니다. ~ 글이란 바로 마주 보는 것이며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끄덕이는 작은 몸짓입니다.


1. 시작하는 사랑, 끝없는 사랑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말을 아끼며 살아왔습니다. 이 날을 위해 이 말을 아껴 왔습니다. 사랑합니다. 한 인간의 육체와 영혼이 살아 있음을 깨우쳐 준 단 한 분인 당신에게 이 말 외에 더 좋은 말을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한마디 보다 더 좋은 말을 생각해 낼 수가 없습니다. 나는 당신 이외의 다른 이에게 미움의 감정까지 줄 시간이 없습니다. 나는 바쁩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일에 나는 열중합니다. 이보다 더 소중한 일이 아무 곳에도 없음을 나는 잘 압니다.


사랑이 그대에게 손짓하거든 따라가셔요. 그 길이 비록 험하고 괴로울지라도 사랑의 날개가 그대를 품을 때는 안기셔요. 날개 속에 숨긴 칼이 그대를 상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그대에게 말할 때는 믿어 주셔요. 비록 그의 음성이 뜰 안을 황폐케 하는 폭풍처럼 그대의 꿈을 휩쓸어 버릴지라도. 칼릴 지브란 선지자 중에서~


‘가지기 위해서 버리는 것’ ‘더 오래 보기 위해서 지금 안 보는 것’의 역설적인 모순을 다시 생각합니다. 불이 흔하지만 언제나 춥고 물이 군데군데 넘치지만 언제나 목마른 시대가 바로 현대가 아닐는지요.


2. 젊음에게 띄우는 편지

나는 내 마음에게 무엇을 먹여야 할지 몰라 당황할 때도 많다. 분명히 굶주리고 있는 것을 알면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땀을 흘린 뒤의 상쾌감 같은 일을 완수한 다음의 개운한 기분은 마치 땀투성이의 몸을 차가운 바다 속에 뛰어들었을 때와도 같은 기분을 가져다준다.

 


젊음-- 그것은 이상과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것이다. 어느 날 나는 ‘스무 살’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세 가지의 문제를 두고 고뇌했습니다. 누구를 사랑할 것이냐. 무엇이 될 것이냐, 아름다움을 지키며 찾는 방법은 무엇이냐, 하는 문제로 밤잠을 설치곤 했습니다.


○ 나는 시간표를 잘 짜는 성미였다. 시간표를 작성한 것이 아마 오백 번은 넘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때마다 취침 시간과 휴식 시간은 하루에 5시간도 못되었다. 꽉꽉 들어박혀 잘 익어 터진 석류 알보다도 더 알찬 나의 시간표는 그야말로 장래의 천재를 낳고도 남음이 있었다. 아주 훌륭한 시간표였다.


자신의 능력을 모두 쏟아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노력보다 더 빛나는 게 있을까? 우리에게 내일이 존재하므로 결코 오늘을 허술하게 혹은 아무렇게나 살 수가 없었습니다. 잘 지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이루게 하듯이 오늘을 실수 없이 보내는 일만이 내일의 행복을 허락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 행복이란 누구나가 자유롭게 금 그어 소유할 수 있는 임자 없는 땅입니다. 자신이 손바닥만큼 행복하다면 그만큼만 행복합니다. 자신이 하늘만큼 행복하다고 하면 하늘만큼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따라서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할 때 행복은 그곳에 없는 것입니다. 행복은 자신이 결정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한 부분을 조금씩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 작은 행복의 한 부분을 어떻게 지키느냐가 우리의 큰 과제입니다. 행복에는 날개가 있습니다. 자칫 소홀하고 게으르면 그것은 어느새 날아가 버립니다. 그것을 얼마나 건실하고 유능하게 붙들어 두느냐에 따라 행복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대문밖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마음 밖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오직 대문 안에, 마음 그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그 생활은 즐거울 것이며, 내일이 있다고 믿게 될 것이며, 곧 자신의 삶을 승리로운 삶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 6월이다. 미친 듯이 녹음은 푸르러 마치 세상은 잠시 진한 바다 속에 잠긴 듯도 하다. 하늘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하늘 아래 젊은이들은 더욱 아름답다. 그러나 젊음이 들이여~ 6월의 하늘을 바라보며 한 번쯤 기억하라.


그대들 부모가 형제가 이웃이, 지난 한 젊음을 총탄과 굴욕과 피바다의 잡초 속에서, 기진하여 뼈가 아리게 고독하고 굶주렸음을 기억하라. 6월의 바람 속에서 6월의 햇살 속에서 한때 이 나라가 사랑이 없는 총칼로서 짓밟혔음을, 그래서 자유와 민주가 무엇인지 한 번쯤 기억하고 침묵한다면…… 그래 그러한 아픈 역사가 바로 그대들의 오늘을 뒷받침해준 정신적인 배턴인 것을 인정할 수 있었으면 한다.


○ 게을러서 불행한 사람은 많은 사람의 본보기가 된다. 부지런해서 행복한 사람도 많은 사람의 본보기가 된다. 따라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의 본보기라고 말할 수 있다. ~ 행복이란 언제나 자신이 치르는 고통보다는 작은 덩어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 작은 덩어리가 타인의 것일 때 커 보이는 것이 우리들의 불행의 원인이었다.


3. 추운 마음, 아픈 마음

우리는 두 개의 눈으로, 열 개의 눈을 가진 사람처럼 냉철히 그들의 과오를 지적하지 맙시다.


릴케의 시구처럼 위대한 여름이 풍성한 가을을 가져다준다. 여름을 낭비하는 사람에겐 결코 탐스러운 가을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여름에게 패배한 사람, 여름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에겐 가을이 오지 않는다. 오더라고 그것은 결실의 가을이 아니라 병들고 무가치한 가을을 맞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알고야 만다. 인간에게 있어 육체가 정신의 뿌리였음을 경험하고 마는 것이다. 몸의 건강을 불러들이고 정신의 건강은 그 원초적인 몸의 건강에서 기본이 되는 것을 알게 된다. 육체는 그 살이 온전함으로써 정신의 길과 힘이 뚫리는 법인가. 육체는 정신을 능가하는 삶의 목적이 되어 주었다. 육체는 정신의 기본이며 생명의 첫째 준비이다.


4. 저 하늘의 구름이 말하듯

“너는 아니야, 너는 저런 불행과 관계없는 사람이야, 너는 행복하다, 너는 평화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행운아다.”


우리의 삶이 우리가 소망했던 것보다 빈곤하여도,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허약하고 구차하여도, 아끼며 사랑합시다. 현재 살고 있는 이 생활에 감사할 줄 아는 깨우침의 불을 질러놓아야 합니다. 이 깊어가는 계절의 아름다움 속에서 사랑의 불을 질러 놓아야 합니다.


불현듯 바다라는 곳이 보고 싶어졌다. 겨울 바다, 그 앞에 서서 무엇인가 나의 뒤를 돌아보고 싶어서였다. 확실한 이유가 손에 잡혀지지 않으면서 오늘도 이대로 가버린다는 생각에 불안과 초조가 밀려들었다.


가슴은 절대로 식어지는 게 아니다. 다만 그 뜨거움에 길들여져 가는 것이라 해도 좋다. 생명이 있는 날까지 그 순간까지 우리의 가슴은 뜨겁다. 언제나 두 손을 벌려 가득히 안겨 옴을 원하고 있다.


생활에서 덕지덕지 붙는 인간의 먼지, 정신의 갈등, 마음 안에 일어나는 오만 가지 상념의 실타래, 그 어두운 덩어리를 아침 산에서 말끔히 씻어 낼 수 있다. 그것도 쾌적한 자세로 쾌적하게 비워내는 청소다.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또한 사회적으로 어느 때보다도 가장 큰 혼란의 소용돌이를 계속 당면해 오면서 인간이 가장 그 마음에 무엇을 풀어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체험해 왔었다. 우리가 실로 이것을 염두에 둔다면 오늘 이 하루를 뜨겁게 보내지 않을 수 없고 뜬구름과 같은 허욕에 그 시선을 줄 시간이 없는 것이다.


비록 우리들의 양손에 우유와 빵이 주어져 있다 해도 그 마음에 더운 사랑이 없다면 절대로 우리는 배부르지 않을 것이다.


문 밖에서 나를 부른다. 문 밖에 나가면 들이 더 나를 부르고 들로 나가면 세상 끝이 또 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집 밖으로 나오라고, 그래서 세상 끝 어딘가로 달려가 보자고 강한 손짓을 보내고 있는 그것, 영락없는 봄의 손짓이다. 누가 오는데 이처럼 부산한가. 누가 자꾸 나를 불러내는 듯~ / 노천명


죽음처럼 고요했던 마른 나뭇가지에도 초록의 혀가 쬐금 밀려나와 푸른 숨결을 새록새록 흘리고 있었다. 겨우내 버림 받듯 버려 있었던 나무들이 자신의 생명을 보란 듯이 내어 보이고 자신의 강인함을 확인하고 있었으며 새로운 삶의 시작을 분주하게 펴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사랑이란 말을 처음 생각게 한 고향의 하늘과 바람. 이별이란 말도 처음 사용하게 했던 어머니의 눈물. 그리고 두 언니가 지금도 고향을 지키며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들도 파편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하였다.


요즘 들어 고향 생각을 자주하게 되었다. 도저히 내 말과 글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그 두려운 외로움 속에서 기댈 곳 없는 정신의 고아로 헤매일 때 마음의 정처로서 고향을 생각하고 하였다.


5. 마음과 극복의 세월

세밑의 어지럽고 소란스러웠던 분위기는 이제 차분히 가라앉고 새해를 맞는 고요한 마음으로 우리는 모두 출발의 시작에 서 있습니다. 새해에는 더 가지고 얻는 것에 열정을 가지기보다 가진 것 대한 발견과 그것에 수고를 바쳐 사랑하는 일에 길들이게 되기를 소망하기도 합니다.


1985년 을축년, 우리는 모두 삶의 정상을 향해 걸어가는 등산객입니다. 우리들의 배낭 속에는 목마른 자를 위해 준비한 지혜의 샘물이 출렁거리고 있습니다. 새해엔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에서 또 하나를 가지려고 합니다. 가진 하나를 이해하지도, 그것을 사랑하기에 조금도 수고를 들이지도 않으면서 또 다른 무엇을 향해 욕망에 손길을 뻗쳐가려 합니다. 이미 가진 것에 대한 기쁨과 그것으로 갖는 즐거움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더 가지려는 소유육으로 가진 즐거움마저 놏쳐버릴 때가 어찌 한두 번이라고 하겠습니까?


진정 가지는 소유는 가진 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것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의미와 가치 부여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어느 기사의 인터뷰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질문 받았을 때 나는 서슴지 않고 “자기 일에 몰두해 있는 인간의 모습이 제일 아름답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가 땅을 딛지 않고 걸을 수 없듯이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밟지 않고서는 어떠한 삶도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요령과 지혜는 다르지만 적절하게 이용한다는 점에서 같은 줄에 서게 되는 슬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나친 요령은 악이 되지만 적당한 요령은 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


6. 사랑 뒤에 더 큰 사랑이

소망은 역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그 의문의 바다에 던지는 영혼으로 짜여진 그물이어야 한다. 그리고 다만 결과보다는 소망을 갖는 그 자체로서 작은 위안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달래면서. “옷이 다 젖었다.” 치마를 툴툴 털며 유자가 말했다. “그래 옷이 젖었지, 그러나 우리는 젖지 않았어, 사랑의 비 외에는 결코 우리를 젖게 하지는 못하지.”


많은 사건과 사물과 사람을 만나면서 드디어 나는 어느 날 한 순간 하나의 테마에 발을 멈추어 섰다. 나는 무엇이고 되고 싶었다. 관객이 아닌 무대의 한 주인공으로 반드시 그 무엇이 되고 싶었다. ~ 나는 사랑을 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나에겐 필요 없고 다만 이것을 전달할 말과 글이 필요했다. 말보다는 글이……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진출처: 책과 함께 하는 사서 세실~ //blog.aladdin.co.kr/borim  '10.12.19  '12.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