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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막힐 땐 ‘에~’ 대신 잠깐 침묵하세요”

물조아 2009. 7. 12. 07:25

말하기 철학, 책으로 펴낸 유정아 전 아나운서.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입에 발린 인사, “오늘 너무 예쁘다”를 좀처럼 못 하는 사람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있다 돌연 둘만 남게 됐을 때의 침묵을 몹시 불편해하고, 여러 말하기 중 일대일로 말하기가 가장 힘들다고 하는 사람. 퍽이나 수줍음 많고, 또 과묵한 사람임에 분명하다. 그런 그가 말하는 직업을 택했고, 말하는 방법을 가르치러 강단에 섰다. 바로 KBS 아나운서 출신 유정아(42)씨다.


그는 서울대 말하기 강좌의 터줏대감이다. 2004년 강좌가 처음 개설됐을 때부터 쭉 강의를 맡았다(그의 강좌는 “수강신청이 10초면 마감되는” 인기 강좌라고 한다). 그리고 그 강의 자료를 모아 최근 『유정아의 서울대 말하기 강의』(문학동네)를 냈다. 말하기의 실전 기술을 알려 주는 실용서라기보다 말하기의 본질과 철학을 전하는 제법 묵직한 책이다.


-‘말하기’가 왜 중요한가.

“말은 자신의 지식과 생각을 정리해 보여 주는 수단이다.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 또 말을 통해 내가 몰랐다는 걸 깨달을 수도 있다. 이렇게 말로 자신을 열어 놓고 해방시켜 줘야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진다.”


-‘의사소통’의 수단이라기보다 ‘자아성찰’의 도구로서 더 가치가 크다는 뜻인가.

“그렇다. 말에는 사고와 성찰의 단계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 전체로 보면, 말은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탁월한 지식과 생각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 그 과정이 왜곡되지 않으려면 ‘잘’ 말해야 한다.”


-어떤 말이 잘하는 말인가.

“표준화된 틀은 없다. 꼭 유창한 말하기가 좋은 것도 아니다. 투박한 말이라도 그 말에 진정이 담겨 있으면 사람들은 귀를 기울인다.”


-잘 말하기 위한 방법은.

“화자인 나와 이야기하려는 주제, 그리고 듣는 사람, 이렇게 세 가지의 긴밀한 연관 관계를 잘 계산해 그에 맞게 이야기하는 것이 잘 말하기의 기본이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이야기해야 듣는 사람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다.”


-퍽 ‘교과서’적이다. 기술적인 노하우는 없나.

“올바른 발성이 중요하다. 소리만으로도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해 줄 수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제대로 된 발성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은 연극배우와 성악가밖에 없다. 나의 경우엔 FM 라디오를 진행할 때 담당 PD가 마침 성악과 출신이어서 발성법을 배울 수 있었다. 목으로 발성하지 말고 단전에 힘을 줘 소리를 내야 한다. 하반신은 누가 쳐도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게, 상반신은 춤을 출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게 한 뒤 척추와 목뼈가 꺾이지 않도록 똑바로 앉거나 선 자세가 올바른 발성의 자세다.”


-대부분의 말은 늘 ‘생방송’이다. 그래서 떨리기도 하고, 갑자기 막히기도 하고, 또 실수도 하는데.

“말하기에 대한 불안은 누구나 있다. 말할 때 ‘청중이 나를 좋아할까’라고 생각하기보다 ‘내가 진심으로 좋은 것을 말하고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그 불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말이 막혔을 때는 공연히 ‘아∼’ ‘에∼’ 등의 군소리를 내는 것보다 잠깐 침묵하는 게 낫다. 잠깐의 공백이 다음 말에 힘을 더해 준다. 그림으로 치자면 여백 같은 효과다.”


-‘저 사람 정말 말 잘한다’ 싶은 사람이 있다면.

“개그맨 유재석씨다. 자신을 낮추며 웃음을 주는, 배려하는 화법이 돋보인다. 손석희 선배는 다른 사람의 진심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있다. 말투가 공격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상대에게 설명할 기회, 변명할 기회를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진행자다.”


-일상적인 대화를 잘 끌어 나가는 비법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 줘야 말을 잘할 수 있다. 약자를 배려하는 ‘여성주의적 말하기’ 기법도 필요하다. 또 말로 100% 소통을 하겠다는 욕심도 버리는 게 좋다. 사람들은 자기가 남에게 이해받지 못할 때 소통이 안 된다고 심통을 부린다. 서로 이해 안 되는 영역을 기어이 말로 소통하겠다는 생각이 사람들을 지치게 한다. 특히 아주 가깝다고 생각하는 가족 사이에서 그런 우를 범하기 쉽다.”


이지영 기자·사진 신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