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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노인은 누워만 지낼 것 같죠? 그 양반들, 쉼 없이 움직이며 살아요

물조아 2009. 5. 9. 06:19

《100세인 이야기》 쓴 서울대 의대 박상철 교수

서울대 의대 생화학교실의 박상철(60)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백세(百歲)인을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이다. 전국 곳곳을 다니며 95세 이상 노인 220명을 찾아냈고 그중 최고령은 1896년생인 서울의 최애기·대전의 엄옥군 할머니였다. 장수 노인이 그렇게 많을 줄 모르고 시작한 조사가 10년째. 《100세인 이야기》(샘터)는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19, 20, 21세기를 걸쳐 살았으니 백세인들은 누워 죽을 날만 세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요? 그렇지 않아요. 그 양반들, 한시도 몸을 가만히 두질 않아요. 방바닥이라도 닦고 있지. 열심히 산다는 말이에요."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79.1세·사람들이 그에게 가장 많이 묻는 것은 '장수의 비결'이다. 선천적인 요인은 20~30% 정도, 생활습관과 환경 등 후천적인 요인이 수명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백세인 중에는 스트레스 내성이 강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웬만한 일에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 거죠. 또 대부분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좋았습니다. 가족이 없는 분들은 이웃과 잘 어울려 살았어요."


대표적인 예가 소록도였다. 2007년 한센인들이 모여 사는 이곳에 85세 이상 노인은 70여명(전체의 10%), 100세 이상은 4명이나 됐다.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들에도 한센인들이 한곳에 모여 살지만, 소록도 주민들처럼 오래 살지는 못한다고 했다. "정부 지원 덕에 의료나 먹고사는 문제가 일단 해결됩니다. 대부분 나병을 일찍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종교에 의지해왔지요. 가족도 없이 비슷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인 탓에 오가는 정도 두터웠습니다."


백세인 중 부자는 드물었고, 손바닥만한 텃밭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조사 대상 중 배우자가 있는 경우는 3%로, 남성은 삼혼까지도 많았지만 여성은 사별 후 평균 30~40년을 홀로 살았다. 박 교수는 "혼자 사는 남성 노인은 생활이 비참해서, 가족들의 권유로 재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강원도는 이례적으로 남성 장수인이 강세를 보인 지역이다. 이들은 다 큰 손자·손녀에게 용돈을 주고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보고받아 결정하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엄격한 가부장제 아래 살아온 남성들은 어른으로서의 위상이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백세인을 조사하면서 아쉬운 점도 많았다. 사회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점이 그중 하나다. "일본 백세인 중에는 지식인도 있고, 경영인도 많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거의 대부분 가족 안에서만 자신을 드러냈어요. 도시의 백세인들은 면담도 거부할 만큼 폐쇄적이었죠."


그러나 앞으로는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사회가 급속히 노령화 사회로 가면서 높은 교육수준으로 무장한 노인층이 왕성한 사회 활동을 자랑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제2의 국민 의무 교육이 필요한 때입니다. 만 60세 넘은 사람들이 생애 완성 교육을 받아야 해요."


그는 작년 차를 없애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고 있다며 장수 5원칙을 공개했다. ▲쉼 없이 몸과 마음을 움직일 것 ▲변화하는 세상에 스스로를 적응시킬 것 ▲무엇인가를 배울 것 ▲느끼고 솔직하게 표현할 것 ▲절제하고 규칙적인 삶을 살 것.


"책을 통해 백세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란 걸 알리고 싶었어요. 우리 모두 노년과 노화를 긍정해야 합니다. 우리 몸은 노화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도록 설계돼 있거든요."


조선일보 김남인 기자 사진: ▲ 서울대 박상철 교수는“앞으로는 다양한 계층에서 기존과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많은 수의 100세인이 등장할 것이다. 이들을 위한 사회적인 준비가 시급하다”라고 말했다./정경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