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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남… 섬세·낭만·자아도취형 신종족 女心 끌어당기다

물조아 2009. 5. 8. 06:43

최근 인터넷에선 젊은 여성들을 위주로 작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프로젝트 그룹 토이의 가수 유희열(38)이 KBS 2TV의 음악방송 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 진행자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혈'(유희열에 대한 애칭) 마니아들은 "'원조 토이남'이 라디오에 이어 TV도 점령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혹 '토이남'을 알고 있는지. 아니 들어는 봤는지. 요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소리 없이 매력 있는 남자로, 새로운 남성상을 대변하는 문화 코드로 떠오르는 이 신종족이 정녕 금시초문인가.


그렇다면 당신, '소맥'을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는 일용할 양식으로 여기는 범상한 아저씨일 확률 90%, 지하철 탈 때마다 빈 자리를 향해 눈에 불을 켜고 질주하는 아줌마일 가능성이 매우 짙다.


■ 취향 뚜렷한 나르시스트


바야흐로 토이남의 시대다. 토이남은 문화 칼럼니스트 김현진씨가 2007년 웹진 매거진T의 칼럼을 통해 공식화하면서 인터넷을 빠져 나와 세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어원은 그룹 토이에서 비롯됐다. 토이의 노래에서나 나올 것 같은 낭만적 삶을 사는, 감수성 예민하고 자기애가 유난히 강한 대한민국의 20대 후반 30대 초반 남성을 가리킨다. 가끔은 30대 중후반 남성 중에서도 토이남 기질이 포착된다.


이들의 삶은 흑백보다 총천연색을 지향한다. 남이 해주는 음식보다 자신이 직접 조리한 요리를 즐긴다. 술 한 잔을 마셔도 소주나 생맥주는 사절이다. 이들에게 폭탄주를 권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카페에서 한 병에 7,000원가량 하는 벨기에의 프리미엄 맥주 호가든이나 독일의 벡스 다크를 즐기기 때문이다.


패션에도 남다른 취향과 감수성을 발휘한다. 여자들 못지않게 최신 유행에 민감하고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 직장인 김혜인(가명ㆍ32)씨는 "내가 아는 토이남은 안경테만 50개 정도로 그날그날 옷에 맞춰 사용한다. 토이남은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토이남의 장래 희망? 사장이니 이사니 하는 세속적인 꿈은 달나라 일이다. 대신 근사한 외모의 은발 신사가 되고 싶어한다. 이들은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나 제레미 아이언스의 성숙한 은빛 외모에서 포근하고 안락한 미래를 엿본다.


문화나 소비 취향을 넘어 토이남을 일반적인 남성들과 구별 짓는 요소는 나르시시즘이다. 이들은 의류 광고에 나올 법한 자전거의 앞 짐칸에 먹지도 않을 바케트 빵을 싣고 양 옆으로 가로수가 우거진 길을 달리고 싶어한다. 자신의 허리를 감싼 연인이 두 발을 한쪽 방향으로 다소곳이 모은 채 뒷자리에 앉아 있다면 금상첨화다.


지독한 사랑에 빠져도 나르시스트의 면모를 버리지 않는다. 아무리 뜨겁게 사랑하는 여자일지언정 마음을 다 바치지 않는다. 열애에 빠진 자신을 사랑스럽게 지켜볼 수 있는 감정적 여유와 낭만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 게이? 된장남? 초식남?


누군가는 되물을지 모른다. '이 놈 결국 게이 아냐?' 하지만 토이남은 게이와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패션과 문화 소비 취향에서 여성성을 드러낸다지만 성적 취향까지 여성을 따라가지 않는다.


혹자는 '유지비'가 꽤 나올 듯한 토이남의 소비 행태를 두고 '된장남(과소비 성향이 유난히 강한 남자)과 다를 바 없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토이남이 혐오하는 남자 유형 중 하나가 된장남.


떡볶이 하나에도 마음을 쉬 열지 않고 이리저리 따져보는 게 이들이 자랑하는 습성 중 하나. 미국 여행 중 벼룩시장에서 알뜰하게 구매한 재킷과 구제 가방 등을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일단 특정 상품에 '필'이 꽂히면 지갑 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토이남은 최근 일본에서 등장한 '초식남'과도 곧잘 비교된다. 토이남과 초식남은 '남자다움에 구애받지 않는 온후한 남성'이라는 면에서 겹친다. 그러나 초식남은 이성 교제에 관심이 없다는 점에서 토이남과 다르다.


토이남이 최근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남의 새로운 표본으로 부상한 이유는 섬세한 배려심 덕분이다. 여자친구 선물을 사기 위해 몇 시간을 돌아다녀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요리 실력도 남다른 이 남성 유형, 처음부터 굳이 멀리할 여성이 있을까.


직장인 김미연(가명ㆍ32)씨는 "상대를 배려하기에 데이트할 때 마음이 편하다. 토이남의 성향이 단점보다 장점으로 승화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직장인 최여숙(가명ㆍ32)씨는 "남편이 토이남인데 각자의 시간과 취미를 중요하게 여겨 좋다"고 말했다.


최씨는 "고가의 카메라 수집 등 '장난감' 모으기가 단점이지만 아내의 여성스러운 취향을 잘 맞춰져 만족한다"고 덧붙였다.


토이남의 등장은 변화하는 사회의 문화적 소산이라는 시각이 있다. 문화 칼럼니스트 김홍기씨는 "1990년대 다양한 문화적 혜택을 받은 남자들은 가부장적이고 마초적인 전통적인 남성상을 멀리 한다"며 "공일오비와 토이, 인디 뮤직 등이 토이남의 감수성을 형성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일보 라제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