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뭐냐고? 꿈꿀 시간 있으면 현재에 충실 지금 위치에서 최고 돼야 ‘다음 기회’도 열려” <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45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정리=서일호 기자 최다정 인턴기자
‘스타 토익 강사’ 유수연씨는 최근 펴낸 책 ‘20대, 나만의 무대를 세워라’(위즈덤하우스)를 통해 초라한 들러리였던 자신이 어떻게 연봉 10억원의 골드미스가 될 수 있었는지를 소개했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명문대도 못 나왔고 부자 집안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미모를 가진 것도 아닌 자신이 요즘처럼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루하루 후회 없이 노력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씨의 책 첫 장에 적힌 ‘외로운 사자새끼들에게 벼랑을 기어오르기 위한 발악의 기억들을 넘긴다’라는 구절만 읽어봐도 그녀가 그동안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지난 2월 24일 본사 주필 서재에 들어선 유씨는 피곤해보였다. 그러나 인터뷰가 시작되자 청산유수처럼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가끔씩 웃을 때 보이는 보조개가 매력적이었다.
강천석/ 유수연 선생의 하루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유수연/ 아침 6시 반에 집에서 나와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토익강의를 합니다. 200명씩 다섯 반이니까 1000명을 가르치죠. 강의가 끝나면 오후 2시 반에 제가 만든 ‘유수연 영어연구소’로 출근해요. 그 곳에서 일을 마치면 다시 학원으로 돌아와 오후 5시부터 밤 10시까지 강의를 합니다. 200명씩 세 반이니까 600명을 가르치죠. 밤 11시에 집에 귀가하면 공식적인 하루 일정이 끝납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인터넷으로 수업과 관련된 기사, 글 등을 살펴보죠. 다음으로는 요즘 쓰고 있는 책 작업을 하고 보통 밤 1시 반에 자요. 성인이 된 후 하루에 5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어요. 제 일의 중심은 강의이고 해마다 방송, 출판 등을 병행합니다. 작년까지 SBS라디오에 출연했고, 올해는 책 작업을 하고 있어요.
강천석/ 새벽에 일어나서 6시 반에 집을 나서면, 화장은 안 합니까.
유수연/ 저는 늘 ‘쌩얼(맨 얼굴)’로 강의해요. 화장을 한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다르죠. 수강 신청을 처음 한 학생들은 당황하기도 해요. ‘과연 저 사람이 유수연 맞나?’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제가 강의 첫 날 꼭 하는 말이 있어요. “포스터 보고 온 사람 있나요? 사진과 실물은 다른 거예요. 제 ‘쌩얼’이 예뻐 보이기 시작하면 토익 950점을 넘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죠. 첫 날 웅성거리는 사람이 많다 싶으면 신입생이 많은 거예요.
강천석/ 일요일에는 9시간 마라톤 강의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유수연/ 2003년부터 시작했어요. 당시 사법고시 응시생들에게 토익 점수가 요구되기 시작했거든요. 점수를 확보하지 못하면 그동안 힘들게 준비한 고시를 못 볼 상황에 처하는 거죠. 그래서 제가 이 친구들에게 토익을 빨리 끝내도록 도와주기로 나선 거예요. 일요일에 모여서 9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공부를 했어요. 학생들의 호응도 좋았고 결과도 좋았어요.
강천석/ 원래 서울의 고시생을 대상으로 하던 수업이었는데, 차츰 지방 학생들과 일반인에게도 기회를 준 것이군요.
유수연/ 저는 교육의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타 강사가 서울의 일부 학원에 몰려있으니까 지방 학생들은 불리해요. 그래서 지방 학생들에게 개방을 했죠.
강천석/ 강의료는 얼마인가요.
유수연/ 안 받아요. 일종의 사회 환원이죠. 제가 토익을 통해 성공을 했고 많은 대가를 받았기에, 받은 것을 토익으로 되돌려주는 거죠. 제가 좀 더 큰 인물이 되면 다른 방법을 찾겠지만 아직은 이게 최선인 것 같아요.
강천석/ 요즘도 하고 있죠?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습니까.
유수연/ 네, 지금도 해요. 학생 중 가장 인상에 남는 분은 한 교수님이에요. 은퇴 후 유명 강의를 찾아다니며 듣는 분이셨는데 제 강의를 듣고는 ‘최상’이라고 코멘트를 해주시더라고요. 굉장히 기분이 좋았어요. 중학교, 고등학교 영어선생님들도 많이 오세요. 영어교육시장의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새로운 티칭 기법 개발 속도가 빠르거든요. 그래서 제 강의 스킬을 공유하려는 분들이 많죠.
강천석/ 모든 일과가 업무와 잠으로 구분되는 것을 보면 집안일은 주로 어머니가 해주시나요.
유수연/ 그렇죠. 집안일은 어머니가 챙겨주시고 집밖에 나오면 저를 도와주는 실장이 따로 있어요. 3남매 중 장녀인데 저만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요. 여동생은 결혼했고 남동생은 독립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죠.
강천석/ 유 선생을 보면 ‘약점을 강점으로 또 상품으로 잘 만들 줄 아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난 학벌도 좋지 않고, 얼굴이 뛰어나게 예쁜 것도 아니고’ 등을 강조하기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유 선생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잖아요.
유수연/ 지나치게 제 상황을 비하시켰다고 비판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모자란 부분을 부각시키는 것이지 저를 비하하는 게 아니에요. 제 약점을 부각시키는 것은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저를 자신들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니까 모든 것을 터놓고 공유하게 되거든요. 제 약점이 서로의 마음 공유를 위한 열쇠가 되는 거죠.
강천석/ 우리 사회는 사실 학벌, 영어 실력, 외모 등 수많은 기준으로 구성원들에게 줄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 선생은 줄 밖으로 뛰쳐나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학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유수연/ 저는 학생들에게 허황된 꿈을 꾸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은 젊은이들을 힘들게 해요. 물론 제가 대안을 제시해 주기에는 부족함이 너무 많습니다. 학생들에게 ‘어차피 줄을 서봐야 상위권을 위한 들러리가 될 테니까 절대로 줄을 서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도전정신과 능력이 되는 사람은 줄을 서지 않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소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차피 줄을 설 수밖에 없는 학생들을 도와줘야 합니다. 토익을 꼭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높은 점수를 받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선이겠죠.
강천석/ 하지만 유 선생은 일반적인 줄을 서지 않았다고 회자되는데요.
유수연/ 모두가 저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요즘 학생들은 저보다도 귀하게 자랐습니다. 부모님들이 매니저가 돼서 공부에 전념하도록 도와줬습니다. 그 속에서 편안하게 살던 학생들에게 갑자기 ‘줄 서지 말고 네 살길 찾아가라’고 하면 우왕좌왕 하면서 불안해 할 거예요. 요즘은 심지어 ‘좁은 한국에서 줄 서지 말고 넓은 세계로 나가라’라고 외치는데 그게 쉽나요. 취업을 앞둔 학생들에게는 괴리감만 느껴지는 이야기일 뿐이죠. 저는 학생들이 ‘나더러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건가’라고 고민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현장에서 바닥부터 굴러봤어야 하는데 이를 부모가 모두 대신해줬기에 학생들이 갑자기 그걸 하긴 힘든 거죠. 물론 일반적인 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지 못하는 학생들이라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느낀 그 순간부터라도 천천히 바닥을 구르며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겠죠. 저 역시 그랬고요.
강천석/ 유 선생은 ‘꿈은 무슨 얼어 죽을 꿈이냐, 그릇을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요.
유수연/ 저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나는 꿈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해요. 그만큼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거죠. 기회는 어느 날 갑자기 문을 열고 방 안에 있는 나를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를 거듭하며 그릇을 키우려고 노력했던 사람이 어쩌다 발견할 수 있는 거죠.
강천석/ 유 선생 스스로가 그릇을 키워서 성공했다고 느낀 적은 언제입니까.
유수연/ 영국에서 석사과정을 밟던 중에 부모님께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망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히 귀국한 적이 있어요. 오자마자 저는 그 레스토랑을 호프집으로 개조하고 1년간 술장사를 했어요. 주방, 서빙 일은 물론 호객행위를 하다가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죠. 그때 제가 ‘내가 이런 일이나 할 사람이냐’라는 생각보다는 ‘일단 내가 여기서 인정을 받으면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자유가 생긴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결국 1년 만에 빚을 갚고 다시 석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갔죠. 그런데 논문을 써야 하는데 한동안 공부를 놓고 있었기에 다른 학생들에게 아무래도 뒤처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 제가 경험했던 ‘서비스 마케팅’을 주제로 잡고 한국에서 경험한 실무 케이스를 담은 논문을 썼는데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영국과 한국의 레스토랑 지점장들을 인터뷰 했는데, 제가 호프집을 1년간 운영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깊이 있는 논문이 나올 수 있었던 거죠. 그야말로 그릇이 커진 거죠. 그 논문으로 인해 프랑스 학회에 초대를 받았고, 이를 통해 미국 하얏트호텔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어요.
강천석/ 유 선생의 경우 특별한 것 아닌가요? 모든 학생들이 그렇게 될 수는 없을 텐데요.
유수연/ 저도 학생들에게 지금 당장 판을 흔들 수는 없다고 이야기해요. 가령 꿈을 꾼다고 바로 그 무대로 이동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이동한다고 해도 그 무대에서 영원히 살아남을 수도 없고요. 누구나 고만고만한 패를 들고 시작 하는 거예요. 자신의 패가 마음에 드는 사람은 거의 없죠. 그런데 패가 마음에 안 든다고 넋 넣고 허공만 바라보고 있으면 안 돼요. 현재 위치에서 최고가 되었을 때 다음 무대와 연결되는 징검다리가 하나씩 놓여지는 거예요. 어느 분야든 최고가 된다면 ‘다음 기회’를 만날 수 있죠. 기회를 타고 아주 조금씩 이동하는 것이 성공의 시작입니다.
강천석/ 요즘 직장을 갖지 못하고 방황하는 300만명 이상의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유수연/ 저는 실업의 원인을 세 가지로 봐요. 첫째는 나라 탓, 둘째는 본인 탓, 셋째는 롤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는 부모 세대 탓. 부모 세대는 자식들에게 ‘이제 공부 그만하고 기술이라도 배워서 직업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자식들은 그나마 할 줄 아는 게 공부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이 틀을 바꿔주는 시스템과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주변에서는 꿈, 블루오션 등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해주고 있어요. 또 20대들은 하나같이 인터넷만 쳐다보고 있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인터넷을 접고 당장 현장으로 나가라’는 거예요. 집안의 화초에서 사회의 잡초가 될 각오를 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Burn your bridge(후퇴란 없다. 여기서 뼈를 묻는다)’ 정신을 가져야 해요.
강천석/ 유 선생의 연봉이 10억원이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유수연/ 강의료가 70%, 책 인세 20%, 방송 출연과 대학이나 기업 초청강의 등이 10%입니다.
강천석/ ‘유수연’이라는 기업은 어떻게 이뤄져 있습니까.
유수연/ 스케줄, 강의자료, 강사 관리까지 도와주는 실장님이 한 분 계시고 정직원 4명, 조교 25명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강천석/ 유 선생의 유년시절은 어땠나요.
유수연/ 활자중독이었어요. 책에 미쳐서 만화책, 철학책, 무협지 등 닥치는 대로 다 읽었어요. 그렇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는 아니었죠.
강천석/ 대학교 때 방황을 계속하다 4학년 1학기 때 호주로 유학을 떠났는데 어떻게 가게 됐습니까.
유수연/ 전공 공부를 해봐도 안됐고, 학생운동을 해봐도 안됐고 여러 가지로 복잡했어요. 한국에서 인정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다른 곳으로 가서 제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었어요. 호주를 선택했던 것은 비용이 저렴해서였어요. 3개월 쓸 돈을 먼저 챙겨서 갔죠. 그런데 한 달 반 정도 어학연수를 했는데 영어가 안 늘었어요. 그래서 유학원에 환불 요청을 했어요. 환불은 안 됐고 IELTS(International English Language Testing System)를 보고 랭귀지 스쿨과 같은 재단 소속이었던 로렌 마틴 칼리지에 진학할 수 있었죠.
강천석/ IELTS 시험준비는 어떻게 했나요.
유수연/ 스피킹은 호주 대학생을 랭귀지 파트너로 삼았어요. 대학가 클럽, 식당 등에서 친구를 사귀기 시작했죠. 그들과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수업처럼 영어로 이야기했어요. 하루에 3~4명씩 만나 같은 주제로 떠들었죠. 리스닝은 ‘프리티 우먼’과 같은 영화를 한 편 선택해 2달 동안 반복해서 봤어요. 줄거리를 익힌 후 구간을 반복해서 보고 받아쓰고 따라 해봤어요. 처음에는 엑스트라 그 다음에는 조연배우가 됐다가 나중에는 여주인공의 대사까지 완벽하게 따라할 수 있게 됐어요. 영화와 현실이 잘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봤죠. 문법책은 ‘Grammar in use’ 한 권만 반복해서 봤어요.
강천석/ 지금 가르치고 있는 ‘유수연식 토익’은 어떤 겁니까.
유수연/ ‘영어로 겨우 의사 소통하는 소비자’가 아닌 ‘영어로 업무가 가능한 직원’을 키우는 것입니다. 제 전공이 영문학이 아닌 경영학이라 더욱 가능한 일이죠. 관광객이나 학생으로 돈 쓰면서 하는 ‘갑 잉글리시’는 비교적 잘 통하는 편이에요. 제 돈을 먹길 원하는 외국인들이 억지로라도 알아주니까요. 하지만 직원이 돼서 돈 벌려고 하는 ‘을 잉글리시’는 어림도 없죠. 발음도 안 좋고 의사소통도 안 되는 사람을 누가 직원으로 쓰겠어요.
강천석/ 지금의 ‘유수연 호(號)’는 본래 세웠던 해로를 순항 중인가요? 이제 유수연 호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습니까? 유수연의 5년, 10년 후는 어떤 모습일까요.
유수연/ 특히 한국은 모든 사람에게 꿈을 강요해요. 꿈이 없으면 꿈을 고민해야 하는 나라예요. ‘네 꿈은 뭐니?’라고 물으면 속에 있는 것까지 박박 긁어서 꿈을 만들어 내야 하죠.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긴 어렵지만 많은 사람들과 호흡하며 무언가 만들어 갈 것이라는 것은 확실해요.
강천석/ 현모양처가 될 의향은 없습니까.
유수연/ 많이 부족하죠. 현모(賢母)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양처(良妻)는 힘들 것 같아요. 그냥 처(妻)는 될 수 있겠지만 말이에요.
강천석/ 유 선생 같은 ‘골드미스’를 동경하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골드미스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요.
유수연/ 골드미스는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어떤 남자도 제 앞의 비바람을 막아 서주지는 않아요. 남자를 오히려 제 몸으로 막아줘야 할 수도 있죠. 제가 잔다르크가 돼서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나를 지켜야 해요. 반면 백마 탄 왕자를 만나게 되면 그 남자가 저를 지켜줄진 몰라도 결국은 그에게 의존해 살아가겠죠. 어떤 삶이 더 힘들지는 각자가 고민해봐야 합니다.
강천석/ 유 선생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나요.
유수연/ 일단 잠을 많이 자고 영화, 책 등을 보면서 울고 웃어요. 강의할 때는 감상에 빠질 수 없으니까요.
강천석/ 자신을 혹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유수연/ 주변에서도 걱정을 많이 해주세요. 하지만 저는 과거 존재감이 없었던 저에 대해 한이 너무 많았어요. 지금 그걸 원 없이 풀고 있는 거죠. 사회적으로 제 존재감이 드러날 수 있는 기간이 영원할 것이라고는 생각 안 해요. 그래서 이 기간만이라도 즐기고 싶습니다.
강천석/ 10대는 브론즈로, 20대 실버로, 30대는 골드로 살아가고 있는 유수연씨가 40대는 다이아몬드로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가 되길 기대합니다.
유수연 토익강사 유수연(37)씨는 1972년 경기 김포에서 태어났다. 1995년 강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호주 로렌 마틴 칼리지에서 공부했으며 영국 애스톤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콜로라도주에 있는 하얏트호텔에서 1년간 근무, 2001년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토익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현재 ‘유수연 영어연구소’ 소장이고 시사영어사 토익 대표 강사이며 저서로는 ‘20대, 나만의 무대를 세워라’ ‘톡톡 튀는 유수연의 토익 스타 만들기’ ‘뉴토익 스타 만들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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