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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인생>평균수명 100세 코앞…“22세기를 즐긴다”

물조아 2009. 2. 25. 22:56

#...2018년 12월. 세간의 이목은 A씨(90ㆍ 남)로 쏠렸다. 서울 강남 H 의료원은 “A씨의 수술 성공 여부에 따라 인간의 인생 패러다임 자체가 바뀔 것”이라며 “몇 시간 후면 오늘을 역사적인 날로 기억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수술을 앞둔 A씨는 담담했다. 그는 “펄떡 펄떡 뛰는 내 심장이 돼지의 그것이 될 줄 상상도 못했다”며 “두렵고, 한편으로는 설렌다”고 소감을 밝혔다. 몇년 전 S대학교 생명공학연구팀은 세상을 놀라게 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여론은 “마침내 동물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할 수 있게 됐다”며 “심장의 기능을 상실한 심부전증 환자들이 돼지의 심장을 이식받아 새 삶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환호성을 보냈다. 심장 뿐 아니었다.수년에 걸친 임상실험의 성공은 더욱 가속도를 붙였다. 콩팥, 허파, 골수, 췌장, 간 등 오장육부의 장기는 물론 피부세포까지 “어쩌면 신이 주신 모든 장기의 교체가 가능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사람들은 들떴다.

 

연구팀은 “바야흐로 평균 수명 100세 시대가 도래했다”며 “10년 내 인간배아줄기세포로 만든 장기 이식까지 가능할 것이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았다. 이제 그 첫번째 수혜자가 결정된 것이다. A씨는 수 천 명의 신청자 중 그 첫번째 대상자였다. 자신이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한 A씨의 가슴은 둥둥 뛰었다. “건강한 심장을 얻고 다음엔 탱탱한 피부로 바꿔야지” “내년 생일에는 예쁜 아가씨와 데이트를...”


‘2001년에 태어난 21세기 소년’은 과연 22세기의 시간을 즐길 수 있을까. 꼬박 100년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맞볼 수 있는 경험. 2015년의 A씨처럼 100세 가까운 나이에 데이트를 꿈꾸는 삶이 불가능만은 아니다. 과거 ‘100세 시대’는 허황한 한편의 꿈이었지만 상상의 영역에서 현실로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가장 가깝게 체감하고 있는 부문은 평균 수명의 연장이다. 고령화사회가 코 앞에 와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고령화 진행 속도는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세계보건통계 2008’에 따르면 한국인 2006년 기준 평균 수명은 78.5세. 매년 평균 1.5세가량 평균 수명이 높아지고 있다. 단순 수치 계산을 해도 2021년이면 평균 수명은 100세가 된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수치를 따르더라도 고령화의 속도는 가파르다.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18년 14.3%을 넘어 2026년이면 20.8%, 2030년 24.3%에 이른다. 2026년이 되면 10명 중 2명이 65세 이상의 노인이라는 얘기다. ‘65세 이상 = 노인(老人)’의 등식은 무의미해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평균 수명 100세, 65세 젊은이’의 시대가 오기까지는 고작 10여년의 시간이 남은 셈이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가 몰고 올 변화상은 전면적이다. 직업과 직장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하나의 직업으로 평생을 산다는 자체가 무의미해져 평생 직장 개념은 무너지게 될 전망이다. 대신 문화 및 자기계발에 대한 노년층의 욕구 증가는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될 것이다. 국회 시사포럼이 지난 2007년 ‘매력 있는 한국’ 보고서를 통해 “직업훈련을 단순히 실업자 구제나 취업대책으로 간주할 게 아니라 생애교육 차원으로 격상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고령화 사회를 염두에 둔 지적이다. 60세 이상의 노인도 적당한 시기에 수십년을 살아가야하는 데 따른 별도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또한 평생 교육의 직업관은 놀이와 밀접하게 연관될 가능성도 크다. 현재 20세에서 55세 정도의 평생 노동 시간은 100세 시대에는 최소 80년 가까이로 대폭 증가하기 때문이다. 60세 가까운 나이에 또 다른 직업을 선택할 때는 취미 겸 직업에 도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60세 생일에 비행기 조종사에 도전하겠다고 말하고, 80,90세에는 세계 일주 여행가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히는게 낯선 일이 아니다.


이와 함께 가족의 의미는 점점 줄어들게 돼 1인 가구가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2070년이 되면 60세는 제2의 청춘이 되며, 결혼과 가족 개념이 바뀌어 두 번 이상의 결혼이 보편화될 것”(미래학자 파비엔 구보디망)이라는 지적처럼 가족과 결혼의 개념도 변화될 것이다. 주거 공간의 변화 역시 필연적이다. 거주와 휴식 공간의 분리로 인해 도심과 전원의 소형 1가구 2주택자가 늘어나고, 노인 맞춤형 거주 공간의 탄생도 예상된다.


고도화된 디지털 기술은 건강한 100세 삶의 지킴이 역할을 톡톡이 해줄 것으로 보인다. 건강상태를 점검해 알려주는 침대와 간단한 터치로 작동이 가능한 TVㆍ컴퓨터, PDA 등은 노인들의 일상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 또 불편한 노인을 위해 집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일일이 알려주는 사회복지 시스템들도 현실화돼가는 추세다. 로봇공학의 발달도 고령자들에게는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미쓰비시 연구소는 2020년엔 가정용과 개인용 로봇시장 규모는 4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서적 건강에 도움을 주는 애완로봇들이 다양해지고 가정일을 돕는 로봇들도 본격적으로 도입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100세 시대를 가능케해주는 과학기술, 생명공학의 기술이다. 특히 나노기술에 대한 기대감은 매우 크다. 지난해 유엔이 발표한 ‘유엔미래보고서’는 2015년 무렵 나노기술(nano technology)이 보편화된다는 구체적인 전망까지 내놓았다. 2020년에는 나노가 생산공정에서 주류가 되고 ‘제2의 산업혁명’이 이뤄진다는 장밋빛 청사진이다. 이에 따라 인체의 퇴화를 막기 위한 세포치료와 수명을 다한 인체의 장기를 새롭게 교체하는 일이 현실화된다. 의학 전문가들은 “2030년 무렵이면 주요 사망 원인으로 꼽히는 암ㆍ살인 등 상위 20개의 원인이 사라진다”고 말하고 있다. 덧붙여 생명공학 발전에 힘입어 장기 이식 등 일종의 ‘회춘 수술’이 가능하다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는 현재 70대에 맞춰져 있는 인생 청사진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행복한 노년을 즐기기 위한 인생 단계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일과 놀이, 성문화까지 전반적이고 세세한 조정작업을 거치지 않은 채 맞이하는 100세의 삶은 연장된 고통에 불과하다. 개인적으로는 직업에 대한 준비와 기업에선 노동인력의 감소에 따른 고령의 우수인력활용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는 단순히 수명 연장, 장수 시대의 서막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늘어난 생명 연장의 현실을 행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그 반대가 될 수 있다.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지금 당신이 30대라면 30년 후 다가올 평균 수명 100세 시대는 당신의 얘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헤럴드경제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