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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검열이 가장 무서운 족쇄 … 자유롭고 당당한 한국 부러워”

물조아 2009. 2. 2. 08:06

[중앙일보] 이집트 작가 살와 바크르


살와 바크르(Salwa Bakr·60·사진)는 현재 이집트에서 첫 손에 꼽히는 여성작가이자 현대 아랍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통한다. 많은 여성들이 ‘베일’속에 자신을 감추며 살고 있는 그곳에서 지난 30년 동안 자신을 드러내고 꾸준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왔다. 2009년 카이로 국제도서전(1월 21일~2월 5일)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시내 한 갤러리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한국에서 느낀 특별한 감동=자리에 앉자마자 바크르는 “한국은 내게 정말 특별한 감동을 준 나라”라며 한국 얘기부터 꺼냈다. “2007년 제1회 아시아·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위해 전주를 방문했고, 지난해엔 제 소설 『황금마차는 하늘로 오르지 않는다』(김능우 옮김·아시아)가 한국서 번역·출간돼 다시 찾았습니다. 느낀 것은 다 이루 말할 수 없지요. 두 번째 방한을 마치고 돌아와 감동을 억누를 수 없어 신문에 글을 썼습니다. ‘한국, 현대차 뿐만이 아니더라’는 제목으로요.”


그는 “한국이야말로 이집트인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집트 사람들은 한국을 ‘자동차의 나라’로만 아는데 그건 한국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통을 간직하면서도 개방과 변화를 수용한 한국의 모습은 충격에 가까웠다” 고 말했다.


개성을 표현하는데 거리낌없고 당당해보이는 한국 여성들의 모습도 그에게는 남다르게 보였다. “이집트 여성들은 검은 옷과 히잡 안에 자신을 꽁꽁 감춰두는데 익숙합니다. 한국 여성들은 염색도 자유롭게 하지만 이집트 여성은 머리카락 색을 바꾼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하죠. 우리나라 여성들은 새로운 가치와 변화를 동경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두려움 때문이죠. 그렇게 하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해요.”


◆자기검열이 더 무서운 이집트사회=바크르는 이슬람교도지만 다른 이집트 여성과 달리 히잡을 쓰지 않았다. 그는 “히잡을 써야만 이슬람교도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며 “내게 중요한 것은 히잡 자체보다는 삶을 통해 ‘올바른 이슬람교도’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맹률이 45%에 달하는 이집트의 교육문제, 사회에 광범위하고 깊숙이 자리잡은 검열, 아직도 여성이 한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부장적인 문화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검열이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 사회 가치에 대한 주관적인 견해를 밝힐 수 없다는 점에 있다”며 “사회적 제재보다 더 무서운 것이 내면화된 자기 검열”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나는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우리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내 질문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그가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이 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바크르는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내게 가장 많은 것을 가르쳐 준 것은 어떤 한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까지 읽어온 수많은 책, 그것이 바로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것이죠.”


카이로=이은주 기자


◆살와 바크르=1949년생. 이집트 아인샴스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문학비평 전공. 영화비평가로 활동했으며 70년대 중반부터 창작을 시작, 아랍 여성의 소외받은 삶을 그리는 작품을 주로 써왔다. 여죄수 15명의 이야기를 그린 『황금마차는 하늘로 오르지 않는다』(1991)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이밖에『살와 바크르 단편집』『남자들의 속임수』『할머니의 선인장』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