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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대해 알고 싶은가? 도스토옙스키를 읽으라

물조아 2009. 1. 18. 11:53

장정일이 만난 작가-러시아 문학 연구자 석영중 중앙SUNDAY


‘도스토옙스키’는 종잡을 수 없다. 어느 날 새벽, 혼자 막걸리 병을 기울이게 만들었던 헤르만 핑케의 『카토 본트여스 판 베이크』(바이북스, 2007)에서는 ‘도스토옙스키’고, 친애하는 페르난도 아라발의 희곡집 『도스토예브스키란 이름의 거북이』(고글, 1998)에서는 방금 여러분도 보았다시피 ‘도스토예브스키’다. 그런가 하면 요즘 새로 뒤적이고 있는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범우사, 1997)에서는 ‘도스또옙스끼’고, 국내 러시아문학 전공자들이 합심했던 2000년도판 열린책들 전집에서는 ‘도스또예프스끼’가 된다. 한글 맞춤법 외래어 표기 원칙에 따르면 ‘도스토옙스키’다.


시와 소설을 비롯해 20여 권 넘는 러시아 작품을 두루 번역했던 고려대 석영중 교수가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예담, 2008)를 낸 건 지난해다. 나는 책이 나온 직후 저자를 만나고 싶었으나 초대 손님이 밀려 있어 때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일정이 잡혔을 때는 저자가 여름방학을 맞아 미국으로 떠난 뒤였다.


러시아문학 교수라고 굳이 러시아로 달려가란 법은 없지만 저자가 방학을 틈타 미국으로 날아간 것 자체가 어쩌면 냉전의 유산 아닐까. 저자가 러시아문학을 막 공부하려던 당시에는 우리나라와 소련 간에 외교 관계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미국에서 러시아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청춘도, 추억도, 학연도 모두 거기 있는 것이다.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러시아어를 제2외국어로 공부했습니다. 그때 들은 러시아어는 무척이나 이국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고 난 후 그를 더 알고 싶은 마음에서 전공을 노어노문과로 정했습니다. 그의 소설을 다 읽고 나자 다른 유럽 문학 작품들은 눈에 안 들어오더군요.


전 세계 독자들이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매료되는 비밀은 자족성인 것 같습니다. 요컨대 그의 소설에는 모든 게 다 있어요. 당대의 정치·사회·경제를 비롯하여 문화·예술·인간 등등이 매우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죠.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어느 틈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시대와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합니다. 그의 소설은 19세기 러시아 소설인 동시에 지상의 모든 것을 묘사하는 소설이자 천상의 비전을 보여 주는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최상의 예찬은 그를 좋아하는 독자도 많지만, 그를 좋아하는 작가와 철학자가 무수히 많다는 사실일 것이다. 또 그를 좋아하건 말건, 예를 들어 신과 인간이성(합리주의)의 대결이 작품의 주제가 되었을 때는 그 어떤 작가도『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가운데 나오는 ‘대심문관 일화’를 피해 가지 못한다는 데에 그의 위력이 감지된다. 이문열의 출세작 『사람의 아들』은 도스토옙스키가 작중 삽입해 놓은 그 일화에 대한 부연이거나 오마주(hommage)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말의 외국 인명 표기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기도 하거니와, 앞서 본 것처럼 그의 이름이 하나의 기표로 안착되지 못하고 변화무쌍하게 떠도는 이 예화적 은유야말로, 그의 소설이 얼마만큼 다성적인가를 암시해 준다. 이 때문에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연구 역시 뚜렷한 지배적 해석이 있기보다 철학·미학·종교·정신분석학·기호학·구조주의·형식주의·언어학·심리학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무수히 많은 전문가가 각개약진해 왔다. 그렇다면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는 어떨까?


“기존 연구자도 대부분 돈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미학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는 알고 있었을 겁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돈을 위해 펜을 들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거든요. 그러나 그것을 일관된 논리로 풀어서 쓴 연구서는 제가 알기로는 없었습니다. 저는 돈이란 코드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전 작품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기존 연구와 달리 일반 대중과 도스토예프스키의 메시지를 공유하고자 했습니다. 다시 말해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심오하게 보이는’ 고전 작가에 대한 해설을 쉽게 풀어 써 보고자 했습니다.”


이 책은 『가난한 사람들』 『미성년』 『도박꾼』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같은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들을 오로지 ‘돈’이라는 열쇳말을 통해 들여다보고, 풀이한다. 러시아 혁명을 예언하고, 인간 지성의 한계를 예언했으며, 첨단 과학과 물질문명이 극에 이르면 인류는 자멸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던 사람! 그러면서 그토록 암담한 미래에 대한 해독제로 그리스도교를 제시했다던 그가, “돈 때문에 글을 썼고, 돈에 관해 글을 썼던 사람”이기도 하다면 믿어지는지? 이 책을 읽으면 그게 즐겁게 납득될 뿐 아니라 부자가 되는 명료한 비법과 돈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의 한계까지 알게 되니 일석삼조다.


러시아문학을 생각할 때마다 ‘왜 우리에겐 시베리아가 없는가?’라는 우문을 하게 된다. 톨스토이의 『부활』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시베리아 유형을 떠나지만 그들의 미래는 절망보다 항상 희망의 신비한 후광에 감싸여 있다. 한국인은 고작 도피하거나 위안받기 위해 각자의 ‘내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어째서 러시아인은 그 혹독한 시베리아를 어머니의 대지로 여기며, 거기서 부활을 준비하는가?


“시베리아엔 하늘과 땅이라는 단조로운 풍경밖에 없습니다. 유형자들은 노동 이외의 여가가 없고, 또 거기서 읽을 수 있는 책은 성서밖에 없죠. 그렇게 몇 년을 지내면 마음이 달라지고,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아마 이런 점들이 시베리아를 부활의 땅으로 만드는 거겠죠.”


오래 궁금했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됐지만, 이 협소한 한반도에 ‘내 고향’을 뛰어넘는 민족의 ‘성지’가 없다는 사실이 달라지진 않는다. 그렇다면 시베리아와 같은 연단의 공간 대신, 한국인에겐 주기적 환난의 시간이 주어졌다는 말인가? 그게 맞다면 우리는 2009년을 시베리아처럼 지내야 한다. 마음속으로 ‘얼지 마, 죽지 마, 부활할 거야!’라고 다짐하면서.

 

‘장 작가’란 줄임말로 불리는 장정일씨는 시인·소설가·희곡작가·책 평론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