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간 책(冊)

오바마 이야기(열등감을 희망으로 바꾼)

물조아 2009. 1. 2. 14:32

헤더레이 와그너 지음/유수경 옮김/명진출판 2008.10.24


○ 모두 가능합니다! 오바마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게 하는 것입니다!


○ 미국을 넘어 세계인들에게 ‘희망을 상징하는 리더’로 떠오른 버락 오바마! 그는 1961년 8월 4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아프리카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미국 캔자스 출신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불안정한 성장과정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과 환경적 열등감에 방황하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자신의 상처 속에서 희망의 씨앗을 발견했고, 그리고 마침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이루었다.


○ ‘버락’은 ‘신의 축복을 받은’이라는 뜻이다. 첫 번째 자서전은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이다. 두 번째 자서전은 《담대한 희망》이다.


○ 사실 오바마에게는 친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아프리카 케냐 출신의 흑인이고 오바마가 두 살 때 어머니와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어른들에게 들었을 뿐 만난 적도 없었다.


가족 중 여동생 마야는 “어머니와 오빠는 항상 오빠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거라고 농담했어요. 결국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된 일인지도 몰라요”


오바마와 친했던 친구들도 그를 활발한 성격에 리더십 있는 친구로 기억했다. “오바마는 매우 활동적이었어요. 항상 갈 곳이 있었죠. 그리고 매우 도전적이었고, 시대를 앞선 생각들을 많이 했어요.”


푸나호우학교의 몇 되지 않는 흑인 학생들은 비공식적인 모임을 만들어 인권과 인종관련 문제들에 대해 논했고, 다른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함께 미군부대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하곤 했다.


이 모임에 함께 했던 동창들은 오바마가 특별히 흑인들과 어울렸다기보다는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오바마의 친구들은 그가 단 한 번도 인종문제에 대한 속마음을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오바마는 자신이 보통의 흑인친구들과 처지가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혼란과 고민을 친구들에게 드러내지 않았고, 허심탄회하게 인종과 관련된 고뇌를 털어놓지 못한 것이다.


오바마는 기로에 섰다. 불량 청소년이 되어 혼돈의 나락으로 빠지느냐. 세상을 상대로 자신을 단련하며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벗어나느냐. 선택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선택했다.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가기 위해 스스로의 판단을 믿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싸워나가기로 말이다.


지역사회 운동가가 되기로 결심한 오바마는 우선 자신이 아는 모든 민권운동단체와 접촉을 시도했다. 오바마는 자기가 하려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가 마음에 걸렸을 뿐이다.


지역사회운동의 가장 큰 의미는 특정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단결시켜서 하나 된 목소리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정치가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지난번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주장하는 바를 명확하게 정리하고 할 말까지 미리 짜두었다. 2주간 철저한 준비 끝에 드디어 MET 총책임자와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집회 당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이 일로 중요한 것 하나를 깨달았다. 모두의 가슴에 희망을 심어주고,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한 사람의 작지만 정직한 한 걸음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말이다.


미셜 로빈슨이라는 젊은 여자 변호사, 그녀는 오바마보다 세 살 어렸지만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1996년 오바마의 인생에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측근들이 일리노이주 의회의 공석에 출마할 것을 권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지역사회 운동가의 면모를 가진 민권변호사이자 법률학자 오바마는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선거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2004년 7월27일 전국 시청자들은 민주당 기조연설 때문에 버락 오바마라는 새로운 인물에 주목하게 되었다. 비록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후보를 뒤받침하는 연설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마치 오바마가 대통령 후보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좀더 현실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희망’입니다. ~ 이러한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 믿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갈 것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미합중국만 있을 뿐입니다. 지식인 계층들은 우리의 조국을 조각조각 분해해서 ‘빨간 주’와 ‘파란 주’로 양분하기를 좋아하며 빨간 주는 공화당으로, 파란 주는 민주당으로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 우리 모두 성조기 아래서 서약한 미합중국을 지키려 합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2007년 2월10일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의 옛 주의회 의사당에 섰다. 그리고 그 앞에서 대선에 출마할 것을 공식발표하고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다.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이 나라의 가능성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단결된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며, 더욱 완벽하게 단결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여기서!’라고 말하는 세대가 됩시다.”


사람들은 그가 이야기하는 더 좋은 삶과 더 좋은 미국에 대한 믿음, 새로운 세대의 정치인에 대한 갈망 때문에 그곳에 모인 것이었다. 그를 통해 희망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군중들은 그의 메시지에 열광했다. 이를 통해 오바마는 사람들이 뭔가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있으며, 좀 더 광범위한 것들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판단했다.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든 안 되든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바마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태우고 힘차게 달리고 있는 이 꿈의 열차가 쉽게 멈추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오바마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기회의 땅에서 ‘미국의 약속’을 다시 외쳤고, 잊고 있던 ‘미국의 정신’을 다시 흔들어 깨웠습니다.


○ ~ 정부가 TV를 끄게 하고 아이들이 숙제를 하도록 만들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좀더 책임감을 갖고 자녀들이 필요로 하는 사랑을 베풀며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 우리에게는 과거의 생각을 고수하는 대통령이 아닌, 미래의 위협에 직면할 수 있는 대통령이 필요합니다. ~ 지금은 너무나 심각한 때입니다. 당파성 짙은 각본에 무조건 따르다가는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큽니다. 그러니 애국심은 당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뜻을 모읍시다.


~ 우리의 힘만으로는, 이러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분열되어 있는 한, 우리는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끝. 사진 중앙일보 '12.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