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쉴 수 있어 (感謝)

여자 야구월드컵 첫 2승 주역 최수정씨

물조아 2008. 9. 10. 03:23

[중앙일보] 평일엔 IT우먼 주말엔 감독 겸 선수 야구와 18년째 열애 빠진 ‘홈런인생’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는다.’ 열광적인 부산 야구팬들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는 여성 야구인 최수정씨(34·사진)에게도 적용된다. 다른 것은 보는 것보다 직접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점이다.


최 씨는 최근 일본에서 끝난 국제야구연맹(IBAF) 주최 제3회 여자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국제대회에서 처음 올린 승리(2승)의 숨은 주역이다. 그는 국가대표 여자야구팀의 홍일점 코치다. 뿐만 아니라 영어 통역에 매니저, 맏언니까지 1인4역을 소화하며 선수들을 뒷바라지해 왔다.


주중에는 대기업인 SK C&C에서 정보산업(IT)관련 컨설턴트 일을 하고, 주말에만 여자야구팀 ‘나인빅스’의 감독 겸 선수(중견수)로 뛴다. 주중에는 밤샘 근무도 마다하지 않지만 주말에는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야구를 하러 나간다. 이번 월드컵에도 회사에 휴가를 내고 출전했다.


최 씨가 야구에 푹 빠진 것은 1990년 충남여고 1학년. 라디오에서 야구 중계를 듣다 흥미가 생겨 대전 구장을 찾으면서 야구와의 기나긴 연애가 시작됐다.


“푸른 잔디를 보는 순간 가슴이 탁 틔었습니다. 그때부터 혼자 야구를 공부했죠.” 이론은 물론 그 어렵다는 야구 기록법도 터득했다. 지난해에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주최한 심판학교도 수료했다.


서울대 물리학과(94학번)와 대학원에 다닐 때인 90년대 중후반에는 한국에 여자 야구팀이 없어 혼자 연습장에서 방망이를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2005년 ‘나인빅스’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주저 없이 합류해 그라운드에서 치고, 받고, 달리게 됐다. 2006년에는 타구에 맞아 코뼈가 부러지기도 했지만, 야구 사랑엔 변함이 없다. 지난해에는 22명 멤버의 투표로 감독에 선임됐다.


최씨가 야구에 푹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타격·수비·주루 등 야구는 기술적인 부분이 아주 많죠. 그런 것을 끊임없이 배워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야구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축구부터 골프·포켓볼 등 공으로 하는 운동은 모두 잘 하지만 축구는 싫어한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여자 야구는 보통 초등학교 운동장을 빌려서 연습하는데, 주말에는 조기 축구회가 운동장을 선점하는 바람에 야구 경기를 할 곳이 없어요.”


그의 가장 큰 소망은 국내에 야구장이 많아지는 것이다. “인프라가 구축되면 마음 놓고 야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가 다른 팀에 비해서 약했던 주루나 수비 부분이 많이 좋아져 국제 경쟁력이 향상될 것입니다.”


최씨는 5일 귀국 인사차 KBO에 들러 하일성 사무총장에게 이 같은 애로사항을 전달했고, 하총장은 “개선하겠다”라고 답했다. 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