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생이라면 학창시절 여선생에 대한 ‘로망’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반듯한 흰색 스커트 정장차림으로 또각또각 하이힐을 울리며 수업을 위해 복도를 가로질러 온다. 끝이 살짝 치켜 올라간 안경을 고쳐 쓰고는, 섹시한 목소리로 출석을 부른 뒤 수업을 시작한다. 칠판 쪽으로 돌아선 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드름 군상들은 한숨을 쉰다. 아휴!
시사YBM e4u 유수연 토익대표강사를 마주하니 20여 년 전의 추억이 오롯이 되살아났다. 이런 ‘발칙한 상상’에 빠진 이들이 설마 나 하나뿐일까?
유수연의 강의 포스터에 ‘홀딱’ 반해서 수강등록을 하는 학생들(주로 남학생들일 테지)이 은근히 많다. 그런데 며칠 못 가 우수수 빠져나간다. 왜 그럴까?
“인터뷰할 때하고 강의할 때 많이 달라요 제 강의 들어본 분 주변에 계시면 물어보세요. 무섭다고 안 하던가요? 거의 집어 던지구요. 강의하다 화내고 나가고. ‘너희들 부모님이 불쌍하다’고 막 하고. 하여튼 강하게 나가는 편이에요. 괜히 와서 시간과 돈만 허비하는 학생들 보면 참을 수가 없거든요.”
결국 잿밥 먹으러 들어온 사람들은 ‘확’ 깨서 나간다. 미안하지만 유수연은 그들의 ‘로망’을 채워줄 마음도 여력도 없다. 잿밥그릇을 빼앗아 마당으로 집어던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강단에 서면, 그녀는 대한민국 최고의 토익 여전사가 된다. 자기발전 없는 학생들, 쉬셔야죠, 집에서, 어설픈 고득점들, 수능시험만 보세요
유수연은 1994년 ‘Hi!’ 한 마디조차 입에 제대로 안 붙던 영어 왕초보시절 호주로 무작정 날아가 랭귀지 스쿨 3개월 만에 대학 입학시험에 합격. 한국으로 돌아와 강사 생활을 해 모은 돈 2000만원을 들고 97년 영국으로 가서 MBA석사과정을 밟았다.
2000년 미국 하얏트호텔리어로 일하다 이듬해 귀국, 시사어학원에서 강의를 시작한 이래 8년 만에 국내 톱클래스의 영어강사로 우뚝 섰다.
- 하루 일과가 대충 어떻게 되시나요?
“새벽 4시 30분에 매니저가 집으로 와요. 5시에 방송국에 도착하고, 리허설 하고, 6시부터 1시간 동안 SBS FM 웁스잉글리시를 진행하구요. 학원으로 돌아오면 오전 8시. 오후 2시까지 강의를 하고 좀 쉬었다가 5시부터 10시까지 저녁강의를 하죠.”
그밖에도 동영상 강의 촬영, 출판사 미팅 등 일정이 특급 연예인 수준이다. 일요일에는 마라톤 특강을 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 - 영어에 미친 나라’ 편에 나왔던 바로 그 강의. 한 번에 전국에서 1500명 정도가 모여 장장 9시간 동안 강의를 듣는다.
- 왜 ‘유수연 강의’가 이처럼 인기가 있을까요?
“강의 스킬 자체보다는 학생들과 같이 고민을 많이 나누는 편이에요. 취업이라든지, 유학, 이민 … 주로 영어보다는 진로에 대한 얘기들이죠. 자기관리를 같이 해주는 차원? 2003년에 에세이가 나온 뒤로 나름대로 제 역할이 정해진 것 같아요. 강의, 방송을 하면서도 늘 이런 고민을 하죠.”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고비를 넘어야할 때, 그리고 뭐든지 버텨야 할 때. 석사 하겠다고 영국에 갔을 때가 7월이었거든요. 그런데 학교들 입학허가는 3월에 다 끝난 상황이었어요. 비자는 겨우 한달짜리였고. 일주일동안 자료조사하고, 일주일은 지원서만 썼죠. 다음 일주일은 입학 인터뷰를 하고, 남은 일주일은 기다리는 거였어요. 하루하루 피가 말랐죠. 한국에서는 ‘합격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갔거든요. 안 그랬으면 보내주지 않았을 테니까. 첫 합격서가 날아왔을 때는 비자가 3일 딱 남았을 때였어요. 살았다 싶었어요.”
- 왜 사람들은 ‘그놈의’ 영어가 안 되는 걸까요?
“영어로 사고를 안 하니까요. 영어는 체화시켜야 하는 거예요. 머리만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오감으로 익혀야 하는 거죠. 지식과 운동을 결합시킨다고 해야 하나? 연수 다녀온 친구들이 영어를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양적으로 많이 알아서 그런 게 아니에요. 환경자체가 영어로 사고하는 시간이 1시간이든 2시간이든 있었다는 거죠. 우리나라에서는 영어로 완전히 숨을 쉬는 시간이 없잖아요. 몸이 적응을 못하는 거죠.”
‘얼짱’ 포스터에 ‘홀딱’… 기센 강의에 ‘우수수’ Life 활달할 것 같지만 사실은 방콕 즐기는 ‘소심녀’ Work 강의는 퍼포먼스…스트레스는 미리 차단하죠 Teach 머리 아닌 오감으로 익혀야 영어로 숨쉬어요
- 영어를 잘 하는 체질이 따로 있는 건 아니구요?
“있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야 해요. 평소 고민이 없고, 공통화제가 없고, 보여주고 싶고, 알고 싶은 게 없으면 당연히 안 늘죠. 요즘 어린 학생들 보면 ‘완전’으로 다 통일해요. ‘완전 이쁘다’, ‘완전 좋다’. 영어로 치면 ‘completely’ 하나로 다 해결하는 거죠. 언어를 국어자체도 풍부하게 안 쓰는데 영어가 되겠어요?
-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시죠?
“강의하면서는 안 받아요. 방송이나 강의는 하나의 퍼포먼스니까, 나 혼자 잘 하고 내려오면 그만이니까.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힘들죠. 감정 기복이 큰 편이라 일단 일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다 차단시켜버리는 편이에요. 드라마 절대 안 보죠. 영화도 잘 안 보고. 사람들하고 감정적으로 얽히는 것도 싫어하고.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비전을 제시하고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도 쉽지 않죠.”
- 아이들 영어 조기유학 열풍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외부로부터 어떤 소리를 들었을 때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나이가 4세 이하라고 하죠. 4세가 지나면 혀와 구강구조가 굳어서 힘들어요. 사실 언어는 2∼5년만 안 쓰면 백지가 돼요. 중학교 가면 기억을 못하는 거죠. 다만 혀가 기억해요. 부모들은 아이들이 단어 뜻은 몰라도 좋으니 발음 하나 잡자는 건데, 굳이 ‘혀’ 하나 때문에 수 천 만원을 쓰시겠다면 … 그럴 바엔 차라리 4세 이전에 원어민을 데려다 과외 시켜도 그만 아닐까요?”
- 강의실에서 미운 학생들이 좀 있죠?
“어제 나갔던 모습 그대로 24시간 후 자기발전 없이 돌아오는 학생들. 들을 땐 진지하게 들어요. 나가면 다 잊어버리죠. 딴 세상 갔다가 복귀하는 거예요. 꼴도 보기 싫어요. 옆 사람한테도 안 좋죠. 동기저하를 시키거든요. ‘저래도 괜찮아’하는 면죄부를 주는 거죠. 또 자기만족을 위해 학원에 오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서로 눈에 안 띄어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해요. 약이 없어요. 쉬셔야죠. 집에서.”
반대로 겸손한 학생들이 예쁘다. 토익 800점대인데도 일단 자기 스타일을 비워내고, 시험 유형에 맞춰 노력하는 사람들. 군더더기 없이 공부하니까 성적도 빨리 오른다. 어설픈 고득점들, 거품이 잔뜩 낀 학생들은 늘지 않는다. 중고시절 배운 영어가 전부로 아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유수연 강사는 단언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영어시험 중 그대들이 볼 수 있는 시험은 수능시험뿐이라고.
- 보여지는 모습과 보여지지 않는 모습이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다르죠. 굉장히 소심한 편이구요. 사람들 눈치도 많이 보고, 낯을 가려요. 사람들이 그래요. 자기들이 아는 영어강사 중 낯을 제일 심하게 가리는 사람이라고. 대인관계도 좁은 편이죠. 강의할 때 모습과 정반대라고 보시면 돼요. 2, 3일 정도 쉬게 되면 방에서 거의 안 나오죠. 방콕을 제일 좋아해요.”
- 앞으로 꿈이 뭔가요? 에세이집을 보면 ‘하버드’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그건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였구요. 글쎄요… 현모양처 되기? 하하!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람들이 잘 안 믿어요. 구체적인 계획을 잡는 편이 아니에요. 지금 활동의 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죠. 책을 썼는데 방송을 하게 됐고, 강의를 했는데 교수(울산대학교 영문학과 겸임교수)도 됐고 …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보게 될지 모르지만, 더 높이 올라가서, 더 넓게 보게 되면 그때 비로소 꿈을 찾을 수 있게 되겠죠. 그 느낌에 솔직하고 싶어요.”
영어에 미친 나라에서 영어에 미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살고 있는 유수연 강사. ‘저녁이라도 드시고 가라’는 권유를 뒤로 한 채 돌아오는 길은 기분이 묘했다. 아주 긍정적인 의미에서, 기자 역시 ‘확’ 깬 인터뷰였다.
Clip!…유수연의 ‘당장 실천하는 영어’ 영화 좋아하세요?
만화영화는 쉬울거다? 아이들 말인 ‘베이비톡’이 들어있어서 안 좋아요. 전쟁영화는 총소리뿐. 프리즌브레이크? 갱하고 감옥나오는 얘기들 배워서 어디다 쓰시려구요? 일상이 많이 다뤄진, 잔잔한 영화가 좋아요. 최고의 선택은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죠. 감정이입도 잘 되고, 여러 번 봐도 지루한 줄 모르거든요. ‘노팅힐’같은 영화를 추천합니다.
하루 단어 20개, 표현 20개
회화교재 끌어안고 절절매지 마시고 포스트잇을 활용하세요. 평소 쓰고 싶은 단어 20개를 포스트잇에 써서 문장을 만든 뒤 문에도 냉장고에도 눈에 보이는 곳이라면 사방팔방 어디든지 막 붙여두세요. 영어는 입과 귀로만 하는 게 아니거든요. 시각적 노출이 필요해요. 유학시절 제가 효과를 톡톡히 본 방법이죠.
전화영어도 좋아요
전화영어 전문업체가 많이 있죠? 과대광고에 속지 마시구요. 주의하실 점은 통화 상대인 외국인에게만 맡기다가는 매일 ‘하와 유? 아임 파인’만 하다가 끝날 수 있다는 거죠. 외국인에게 미리 이메일로 ‘오늘 내가 쓰고 싶은 말은 이거고, 이런 것을 얘기해보고 싶다’라고 보내세요. 준비를 먼저 하고 들으시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세요
가정주부들은 영어공부를 하고 싶어도 환경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죠. 그럴 땐 아이의 영어 프로그램을 먼저 완전히 습득하고,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생각을 해보세요. 아이가 느는 만큼 스스로도 느는 거죠. 요즘은 중학교 1, 2학년 수준만 떼도 생활영어 하는 데 지장이 없어요. 자녀가 성장해서 중학생이 되면, 어머니들도 자연히 영어가 되시겠죠? 동아일보 양형모 기자 사진 = 김민성 기자
'숨을 쉴 수 있어 (感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수다' 캐서린 베일리 "사랑해요 코리안 맘" (0) | 2008.05.05 |
---|---|
“세계는 反美주의 넘어 美패권 이후의 시대로” (0) | 2008.05.05 |
[세상읽기] 말라는 것을 하고 싶은 심리 / 곽금주 (0) | 2008.05.01 |
돌아서면 자꾸 까먹는다고요? 자기만의 기억 습관 만드세요 (0) | 2008.04.30 |
내 이름으로 책을 내고 싶다면 이 글을 보세요! (0) | 2008.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