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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말라는 것을 하고 싶은 심리 / 곽금주

물조아 2008. 5. 1. 23:42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 한겨레 / ‘만지지 마시오’라는 푯말을 보면 그 전시물을 더 만지고 싶어진다.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이 있을수록 더 많은 이들이 그 잔디밭에 들어간다. 하지 말라고 하면 이상하게 더 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런가 하면 힘들지만 출근해야 하고, 귀찮지만 보고서를 마무리해야 한다. 우리 일상은 무수히 많은 ‘하고 싶지만 금지된 일’과 ‘하기 싫지만 꼭 해야만 할 일’들의 연속이다. 그리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어나는, 외부적 금지와 지시에 대한 심리적인 반발을 다스리느라 수시로 노력한다. 금지된 것은 왜 더 하고 싶어지는 걸까? 그리고 외부로부터의 강압적 지시는 왜 어기고 싶은 걸까?


심리학자 펜베이커와 샌더즈는 한 대학의 화장실에 낙서를 금지하는 경고문을 붙였다. 하나는 대학본부의 명의로 된 “낙서엄금!”이라는 강력한 경고문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낙서를 하지 마세요”라는 부드러운 어조의 경고문이었다. 두 경우를 비교했더니 강력한 금지 문구 밑에 오히려 더 많은 낙서가 적혀 있었다. 이처럼 사람들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압력이 강력할수록 금지된 행동을 도리어 더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자신과 주변세계를 통제하려는 통제감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외부에서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려 할 때 강력히 반발하면서 자신이 지닌 통제감을 회복하려 한다. 금지문이 적혀 있을수록, 그 금지문이 강력할수록, 반발심은 더욱 커진다. 경고문이 없다면 낙서를 하지 않을 사람들의 반발심까지 결국 부추기는 것이다.

 

이런 심리는 어릴 때부터 나타난다. 발달심리학자 코찬스카는 아이와 엄마들을 실험실로 데려와 ‘하고 싶은데 금지된 것’(금지 상황)과 ‘하고 싶지는 않지만 꼭 해야만 하는 것’(요청 상황)을 제시하였다.


전자는 아이들이 만져 보고 싶어 하는 재미있는 장난감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는 그것을 만지지 못하게 하고 아이를 혼자 두는 상황이다. 후자는 아이 혼자 어질러진 장난감을 깨끗이 치우라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엄마가 지시했는데 그 지시가 얼마나 강압적인지를 평가하였다. 그 결과 엄마의 지시가 강압적일수록 아이는 금지된 장난감을 더 많이 만졌으며, 장난감을 정리하는 지루한 작업을 더 빨리 포기하였다. 반면 규칙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줄 때, 그리고 깨끗하게 청소된 방이 얼마나 쾌적할지와 같은 긍정적인 결과를 많이 이야기해 줄수록, 아이는 자신을 더 잘 통제하였다.


인간에겐 ‘하지 말라’는 금지는 너무나 매력적인 것이다. 자유롭게 내버려 두면 하지 않을 일도 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이런 심리적 반발 때문에 인간관계뿐 아니라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사소한 규칙 위반을 넘어선 마약 복용 같은 것은, 금지로부터의 반발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한 극단적인 경우다. 꼭 지켜야 할 규칙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중요하다면, 하지 말라는 무조건적인 강압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일방적인 강요보다는 규칙 자체의 필요성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어 이해시켜야 한다. 이해가 되면 자발적으로 규칙을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하지 말라는 것만 강요하는 사회, 지나치게 억압적인 사회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사회 도처에서 규칙 위반이 빈번하고, 규칙 준수에 자발성이 결여됐다고 느껴진다면, 우리 사회에 지나치게 강압적인 금지와 규제들만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