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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다' 캐서린 베일리 "사랑해요 코리안 맘"

물조아 2008. 5. 5. 07:16

'가정의 달 5월' 외국인이 본 한국의 어머니, 내게는 어머니가 두 분이다. 나를 낳아주신 영국 어머니와 나를 살려주신 한국 어머니. 한국을 베트남쯤으로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한국식 '사랑'과 '정'을 깨우치게 하고, 낯선 이곳에서 영원히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 것은 한국의 소주도 노래방도 한류스타도 장학금도 아닌 한국의 어머니다.


2003년 한국에 유학와서 홈스테이를 통해 처음 인연을 맺은 한국 어머니. 괄괄한 대구사투리에 넉넉한 인심을 가진 전형적인 경상도 아줌마였다. 1년여 함께 생활하면서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가끔 충돌도 있었다. 생활 전반에 대한 아줌마의 지나친 간섭이 문제였다. 한국가정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자식에 대한 관심이었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지나친 참견과 잔소리로만 느껴졌다. 생활패턴에 전혀 변화가 없던 나에게 어느날 심하게 화를 내며 질책했던 아줌마의 모습을 도저히 참지 못하고 급기야 홈스테이를 중단하기에 이르렀고 그때부터 혼자 자취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더 큰 사건은 후에 일어났다. 집세, 세금이며 생활비를 직접 벌어가며 공부해야했던 내 몸이 무리로 서서히 고장 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병원을 찾은 나는 신장에 물이 찼으며 2주 이상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치료하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의료보험 혜택이 없는 나로서는 200만원이라는 입원치료비는 도저히 감당해 낼 수가 없었다. 그냥 이를 악물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아르바이트 도중에 쓰러진 나는 그길로 의식불명이 되었다. 무의식중에 "방치하면 정말 큰일이 날 수 있으니 서둘러 입원하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자취방에 누워 있었고 내 팔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측은한 얼굴로 나를 지켜보는 홈스테이 한국 아줌마가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어떤 감정을 경험하게 됐다.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나왔고 그런 나를 안아주던 아줌마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아줌마는 의사인 남동생에게 부탁해 나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주었다. 병원에 진료가 없는 시간을 틈타 의사와 간호사가 수시로 내가 있는 자취방으로 찾아와 투약과 치료를 해 주었으며 아줌마는 밤낮으로 내곁에서 간병해주는 수고를 기꺼이 감당해주었다. 건강한 몸을 되찾는 동안 아줌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나를 질타하고 꾸중했던 아줌마의 무서운 얼굴 뒤에는 자식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한국 어머니의 깊은 사랑이 담겨 있었다. 머나먼 타국에서 온 노란머리 외국학생을 타인이 아닌 자신의 친자식으로 생각했음을 뒤늦게 깨닫고 다시금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과연 내 또래 서양학생들은 몇 명이나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해 볼 수 있을까? 그때부터 내게는 한국어머니가 생겼고 대구가 내 고향이 된 것이다.


한국친구들에게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외국아빠들은 자녀들이 잠 들때까지 침대에서 책을 읽어주냐고, 어떻게 그렇게 자상할 수 있는지 너무 부럽다며.' 나는 그렇게 부러워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실제로 외국아빠들이 자녀들을 그렇게 키우기는 하지만 그런 행동 뒤에는 '아이들을 빨리 재워야 부모님들만의 오붓한 시간을 더 많이 즐길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숨어있다. 자식들의 인생보다는 자신의 인생을 더 중요시하는 서양의 부모님들. 중학생 이상이 되면 경제적인 지원도 과감하게 중단해 버리는 서양 부모님들의 교육방법이나 문화를 일방적 비난하자는 것은 아니다. 나도 그런 개인주의적이고 자유로운 문화 속에서 자랐고 그것이 전부인줄 알았지만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한국의 부모님들을 보며 또 다른 형태의 자식 사랑법도 있다는 것을 배웠으며 그 과정에서 영어로는 좀체로 이해하기 힘든 '정(情)'이라는 따뜻한 감정도 경험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자녀를 양육하는 보편적인 지침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양과 서양 어디가 맞고 어디가 잘못되었다고 잘라 말할 수 없다. 문화가 상이하듯 자식을 양육하는 방법은 국가마다 다를 수 있고 각각의 장단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한 가지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기본적인 마음은 세상 어디나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어머니가 나에게 준 선물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매일신문 캐서린 베일리(Catherine Baillie) 계명대학원 디지털영상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