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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의지인가 ‘뇌’의 명령인가

물조아 2008. 4. 24. 06:27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한겨레 / 뇌과학·철학계 ‘자유의지 논쟁’ 재연, 생각하는 나, 내겐 정말 순수한 자유의지가 있을까? 순전히 내 의지대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면 그건 내 자유의지의 선택일까? 최근 일부 뇌 과학자들이 ‘자유의지’에 대한 전통적 믿음에 도전하는 실험 결과를 내놓으면서 1980년대 이후 뇌과학·철학계에 일었던 ‘자유의지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존-딜런 헤인스 박사 연구팀은 과학저널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온라인판(13일치)에 사람이 의지에 따라 어떤 행동을 하기로 결정을 내리기 10초 전에 뇌는 이미 그런 결정을 준비하고 있음이 실험에서 확인됐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독일 연구팀 “인간의 결정 10초전 뇌가 먼저 반응” “실험 하나로 자유의지 존재 부정 못해” 반론도 연구팀은 피실험자 14명한테 두 손에 버튼 하나씩을 쥐고서 자기 의지에 따라 버튼 하나를 누르게 하고, 동시에 피실험자들의 뇌에서 일어나는 신경 반응을 뇌기능 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관찰했다. 그랬더니 피실험자들이 ‘내가 어떤 버튼을 누를지 결정했다’고 생각하며 버튼을 누른 순간보다 10초나 먼저 손가락의 움직임을 맡는 뇌 부위에서 신경 반응이 나타났다. 인간의 자유결정 전에 뇌가 이미 그 결정과 관련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으며, 우리가 자유의지에 따라 어떤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는 시점은 이미 뇌에서 많은 반응들이 있고난 다음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인지과학자인 이정모 성균관대 교수는 “이는 ‘자유의지가 과연 무엇이며 존재하는가’라는 오랜 철학적 논쟁을 끄집어내어 다시 생각하게 할 만한 연구 결과”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논문이 발표되자 세계적 과학출판그룹인 네이처의 누리집에선 논문을 다룬 기사의 댓글에 단편적 실험 하나로 복잡한 자유결정 과정의 존재 여부를 논하는 건 위험하다는 등의 반론들이 실렸다.


사실, 이번 실험은 1980대 벤자민 리벳(1916~2007년·당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교수)의 유명한 실험을 일부 고쳐 재현한 것이다. 당시 리벳 교수는 피실험자들한테 자기 의지에 따라 손가락을 까닥거리게 하고 피실험자의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신호 반응을 뇌 전극을 통해 관찰했다. 그는 실험에서 사람이 자유의지에 따라 어떤 결정을 내렸음을 의식하기 0.3~0.5초 전에 이미 뇌 신경은 그 행동을 할 채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자유의지는 없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인지과학·철학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리벳 실험은 인지과학·철학계의 해묵은 논쟁 주제였던 ‘자유의지란 무엇인가’에 관한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우리에겐 무언가를 시작할 자유의지는 없지만 무언가를 그만둘 자유의지는 있다’는 수정된 가설도 제기됐다. 자아는 하나인가, 여럿인가를 둘러싼 논란도 벌여졌다. 또 저명한 인지과학자인 대니얼 데닛 미국 터프츠대학 교수는 자유의지도 다른 인지 능력들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산물’이지만 리벳 실험 자체가 자유의지의 존재를 부정하는 결론이 되진 못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심리철학자인 윤보석 이화여대 교수는 “내가 나의 자유의지를 인식하는 데엔 일종의 ‘시차’가 있을 뿐이지 신경 반응과 자유의지가 따로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된다”며 “이런 여러 반론들이 틀렸음이 입증되지 않는 한 리벳 류의 실험들을 ‘자유의지에 관한 실험’으로 넓혀 해석하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최근 여러 과학 성과들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새로운 의미를 던지는 것들도 있어 많은 철학자들이 뇌과학 연구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모 교수는 “리벳과 헤인스 실험들이 자유의지 논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됐지만, ‘뇌 활동 분석을 통해 정신현상을 좀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 쪽과 ‘복잡한 심리현상을 특정 뇌 부위의 활동으로 환원하려는 태도를 비판’하는 쪽의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뇌영상을 통해 내면의 자유결정도 미리 알 수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뇌과학 성과의 오남용을 우려하는 ‘신경윤리’(뇌윤리)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오철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