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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 사형 판결 이끈 일(日) '피해가족 9년 투쟁'

물조아 2008. 4. 23. 15:37

모토무라 히로시(本村洋·32·사진) / 아내·딸 살해·성폭행범 미성년자라 '무기' 판결그쳐, '피해자 권리 알리기' 온힘 마침내 사형선고 이끌어내 조선일보 도쿄=선우정 특파원


22일 일본 국민의 눈은 일제히 히로시마(廣島) 고등법원에서 열린 모녀(母女) 살인사건 파기환송심 법정에 쏠렸다. 선고 공판이 진행된 오전 9시부터 법원 앞에서 생방송을 실시한 일본 TV들은 판결문 내용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방청 신청자만 4000명이 넘는 이례적인 재판이었다.


"사형을 피할 수 있는 특단의 사정을 인정할 수 없다." 재판장이 원심인 무기징역을 파기하고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순간 법원 앞에 있던 시민 수백 명이 박수를 쳤다.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보였다. 카메라는 일제히 피해자 가족인 모토무라 히로시(本村洋·32·사진)씨에게 쏠렸다. "올바른 판결을 내린 법원에 감사합니다. 9년간의 노력을 통해 피해자의 권리를 비로소 인정받게 됐습니다."


모토무라씨의 아내(당시 23세)와 딸(당시 11개월)은 1999년 야마구치(山口)현 히카리(光)시 자택에서 목숨을 잃었다. 용의자는 그의 아내를 성폭행하려다 피해자가 반항하자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성욕을 채웠다. 울던 딸까지 바닥에 수 차례 내리친 뒤 목을 졸라 살해하고 돈을 훔쳐 달아났다가 나흘 뒤 체포됐다.


극단적인 반인륜 흉악범이었지만 2000년과 2002년 온정주의를 앞세운 1심과 2심 법원은 검찰이 구형한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범행 당시 용의자가 미성년자였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용의자는 법적으로 사형 판결이 가능한 만 18세에서 30일이 지난 시점에 범행을 저질렀지만 미성년자(만 20세 미만) 신분이었다. 모토무라씨는 "법원이 가해자를 사형에 처하지 않으면 내가 사형에 처하겠다. 나의 살인을 막기 위해서라도 법원은 사형을 언도하라"며 법정에서 거칠게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평범한 회사원이던 그는 가족을 잃은 직후 '범죄 피해자의 모임'을 만들었다. 수사에도, 재판에도 관여할 수 없고 재판 방청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피해자의 처지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전국을 돌면서 "가해자 인권을 지키는 법은 수두룩하지만 피해자의 권리를 지키는 법은 일본 어디에도 없다"고 절규했다.


그의 절규는 사회 일각을 서서히 변화시켰다. 2004년 일본 국회는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국가가 지원하고 형사 절차에 피해자가 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한 '범죄 피해자 등(等) 기본법'을 통과시켰다. 법원도 달라졌다. 2006년 최고재판소는 모녀 살인사건에 대해 2심의 무기징역 판결을 깨고 사건을 하급심으로 되돌려 보냈다.


이날 파기환송심의 사형 판결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미성년자에 대해 사형을 판결할 수 있다는 일명 '나가야마(永山) 기준'을 파기했다는 점에서 일본 사법사에 기록될 전망이다. 나가야마 기준은 피살자의 수를 '4명 이상'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이번 사건은 2명이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일본 사법부가 미성년자 사형 기준을 '예외 사형(특별한 이유가 있어야만 사형)'에서 '원칙 사형(정상을 참작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만 무기)'으로 전환한 것이라고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 정부 역시 지난 5개월 동안 10명을 사형 집행함으로써 사회 전반에 강한 긴장감을 주고 있다.